엔젤
이시다 이라 지음, 인단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이시다 이라의 작품을 서너편 읽었지만 그의 문체를 한마디로 일축하기는 힘든 것 같다. 서정적으로 파고 들다가도 속도감 있게 달음질 치는가 하면, 어쩔때는 인내심을 요구하듯 느리게 전개 되기 때문이다. 한 작가의 작품이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이 난다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일관된 문체를 선호하는 터라 이시다 이라의 문체는 종잡기 힘든 점이 사실이다. 특히나 이번 작품은 가장 적응하기 힘든 작품이었다. 이시다 이라의 책은 어떤 문체건 속도감에 있어서는 밀리지 않았는데 초반부터 진도가 나가지 않아 조금은 애를 먹은 작품이다. 거기다 소설을 계속 겉도는 느낌은 무어라 말해야 할까. 마치 엔젤의 주인공처럼 이 공간 저 공간을 넘나들며, 책 속으로 흡수되지 못하고 방황하는 느낌. 그런 느낌은 주인공의 현재 상황과 연관이 있는게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주인공 가케이 준이치는 영혼으로 떠돌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왜 죽었는지 왜 이승을 떠돌고 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그 기억을 찾기 위해 자신의 인생의 중요한 시점들을 돌아보고 있지만 별 소득은 없다. 더군다나 플래시 백을 통한 이동의 순간에서 소설이 시작되고 있었기에 준이치나 나나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그런 혼란의 시간이 지나고 자신의 존재를 조금씩 인식하게 되는 준이치는 주변 조사를 해나기가 시작한다. 자신을 구덩이 속에 묻었던 야쿠자의 목소리를 기점으로 자신이 죽기 전 2년 동안의 기억을 되찾으려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순간이동을 하고 잠복을 하며 자신의 특기를 발휘해 인간에게 모습을 드러내므로써 과거의 자신을 찾아가고 있는 준이치. 그 과정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과거를 알아가면 갈수록,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면 낼수록 한 여인이 위험에 처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의 원인에 다가가면서 수 많은 선택의 기로 앞에 홀로 놓인 스스로를 보며 자신의 죽음을 꼭 알아야 하는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우연히 콘서트 홀을 떠돌던 준이치는 다른 영혼인 고구레 씨를 만난다. 준이치가 이것저것 물어 보았을 때 그는 그런 말을 했었다. 몰라도 되는 건 모르는 게 나을 때도 있다고. 그것은 준이치가 자신의 죽음을 파헤쳤을 때 받게 될 또 하나의 상처를 염려한 것이었을 것이다. 기억을 잃어 버린 준이치. 자신의 기억을 찾아 필사적인 노력을 하는 준이치. 그는 결국 자신의 죽음의 끝에서 혼란스러워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죽음 앞에 침묵하려는 자가 있을까. 누구나 다 준이치의 상황이 되면 기억을 되찾으려 어떤 수단이든 동원할 것이다. 더구다나 자신의 아이를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면 더욱 더 노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준이치는 아버지와 인연을 끊은 댓가로 10억엔의 유산을 물려 받았다. 게임세계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우연한 계기로 투자 쪽 일을 하게 된 것인데, 자신의 죽음 캐다보니 미심쩍은 투자 기록이 있었다. 자신이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영화에 대한 고액 투자. 그 부분을 캐 나가다 후미오라는 여자를 알게 된다. 그 여인이 누구인지 몰랐지만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에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을 지닌 여인이었다. 그러다 그 여인과 자신이 연관이 있다는 걸 눈치채고 음성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그 드러남이 자신의 죽음의 의문을 푸는 열쇠가 되는 듯 했지만 후미오에게 위험이 손길이 뻗쳐오고 있었다. 자신의 아이와 후미오를 노리는 손길. 바로 자신을 죽였던 야쿠자의 손길이 또 다시 다가오고 있었다. 준이치는 후미오와 태어날 자신의 아이를 지키는 데 혼신의 힘을 쏟는다. 그러나 자신의 죽음의 의혹을 풀고 났을 때는 후미오도 자신의 아이도 생각할 수 조차 없을 정도로 충격과 허무함 속에서 헤메이게 된다. 그제서야 고구레씨의 말을 이해하게 되지만, 사랑을 통해 또 다른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되는 준이치의 모습은 뻔한 결말일지라도 사랑의 위대함을 믿게 만드는 묘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러나 준이치의 죽음 앞에서 느꼈던 허무는 씁쓸하게 남아 있었다. 그런 허무의 농도는 준이치가 가장 짙겠지만 돈과 야쿠자와의 얽히고 얽힌 어두운 면은 소설을 읽어 나가는데 지치게 만드는 요소가 되었다. 준이치가 캐나가는 자신의 죽음은 진부하게 펼쳐지고 있었고, 물질 때문에 살해 당했다는 사실은 분노보다 허탈함이 더 컸다. 준이치는 인간만이 인간을 죽인다고 했다.극적인 죽음보다 생명의 존귀함이 지켜지지 않는 죽음은 얼마나 많은가. 치열하면서도 비열한 인간 세계에서 그의 죽음은 그러한 본보기가 되었다고 해도, 준이치는 그들과 똑같은 앙갚음을 하지 않았다. 후미오가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실은 자신의 아이라고 해도 그 아이에게 닥친 위기를 외면할 정도로 충격을 주었지만, 준이치가 그 생명을 무시할 수 없게 만들었던 것. 그것은 어쩌면 존귀함이 지켜지지 않았던 자신의 죽음 앞에 준이치가 던지는 희생의 결정체가 아니였을까. 억울했던 죽음을 귀한 생명으로 돌려 주는 것. 그런 순환의 고리 속에서 우리의 생명이 지켜지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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