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뉴요커는 되지 못했지만 - 나는 나답게 살기로 했다
곽아람 지음 / 아트북스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왜 우리는 그냥 즐기면 되는 일에서조차 남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 걸까.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나는 여전히 몸치지만 뉴욕에서는 못 춰도 자신 있게 춤을 출 수 있었다. 71쪽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처음에 혼자 카페에 갈 때만 해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다. 내 경우는 육아탈출용으로 혹은 정말 책을 읽고 싶어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혼자 카페에 가게 되는데 혼자 앉아 있는 아줌마를 청승맞게 보진 않을까 늘 염려했다. 그러다 나처럼 혼자 오는 사람들이 많은 카페에 익숙해졌고, 카페에 가는 시간이 불특정했기에 틈이 나면 그 시간을 즐겼다. 그렇게 되기까지 나름대로의 과정이 있었지만 정말 ‘그냥 즐기면 되는 일’을 혼자서 눈치 보느라 시간이 좀 걸린 셈이었다. 그리고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자 정말 자유로웠다. 음악을 들으며 책을 보며 샌드위치를 먹는 복잡한 일을 혼자 하더라도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 좀 어때(Start yelling, why not)? 97쪽

 

이상하게도 다른 나라에 가면 현재의 공간에서 하지 못했던 일들을 좀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가 뉴욕에서 경험한 것들이 결코 꿈꾸던 이상적인 날들이 아니었지만 그 안에서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이고, 할 말을 하고, 어쩔 땐 무력함을 인정하는 것. 그런 일들이 낯선 나라에 가야만 이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익숙한 곳에서는 새로운 걸 시도해 본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에너지를 요하는 일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사람이 어떤 장소를 사랑한다는 건 그 장소에 얽힌 추억을 사랑하는 것과 동의어가 아닐까. 269쪽

 

그래서인지 저자를 따라 뉴욕을 경험하는 건 완전히 다른 세계이면서도 익숙한 세계이기도 했다. 나이 지긋한 분들과 미술사 수업을 들으며 더없는 열정을 느끼면서도 그 분들이 언젠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 거라는 데서 오는 불안감이 슬픔으로 번지는 것, 내가 예매해 놓은 피아노 공연을 저자도 뉴욕에서 보았고, 내가 읽은 책을 저자도 좋아하는 것에 동질감을 느끼고, 한때 빠져 있던 오페라를 실컷 보며 내가 느꼈던 감정(‘외적 허영의 공간인 동시에 외적 허영의 공간’이라 말하는 부분)을 고스란히 전해주어서 마치 또 다른 내가 뉴욕을 경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인간이란 자기가 속한 곳을 벗어나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객관화하고 싶어 하는 존재인 건가. 그리하여 우리는 끊임없이 피안을 갈망하고, 갈망을 채우지 못해 좌절하며, 때때로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286쪽

 

결혼 전에는 이런 생각이 가득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장성한 후에도 이런 생각을 또 갖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의 뉴욕 생활을 간접경험하면서 나름대로 ‘객관화’를 시켜봤다. 그러면서 이상하게도 현재 생활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분명 ‘자기가 속한 곳을 벗어나’는 것에 열망할 줄 알았는데, 때론 지긋지긋하다고 외치는 내게 주어진 공간이 어쩌면 가장 ‘나’다운 나를 만들어주는 공간인지도 모르겠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저자는 ‘1년간의 뉴욕 생활이 내게 가져다 준 가장 큰 선물은 세상에 다른 방식의 삶이 있으며, 굳이 이 삶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라고’했다. 내게 주어진 역할들이 있기 때문에 ‘이 삶만 고집’하는 삶을 살기 싫어도 살아야 한다. 하지만 언제가 살다가 ‘세상에 다른 방식의 삶’을 경험하고 선택할 기회가 있지 않을까란 은근한 기대를 해보게 된다. 그런 기회가 온다면 과감히 그 삶을 선택해보마 하고 말이다. 그런 기대만으로도 삶을 앞으로 밀어낼 이유가 생기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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