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믿음 - 인문학으로 푸는 믿음의 공식
이성조 지음 / 두란노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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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란, 땅이나 공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통치와 ‘다스림’을 말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지배되고 다스려지는 모든 곳이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다. 예수님을 정말 믿는 사람들은 죽어서 빨리 천국 가야지 하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가정과 사회에 하나님의 나라를 오게 할까, 오직 이 생각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33쪽


수없이 듣고, 심지어 나도 그렇게 기도했다. 이 세상이 아니라 저 천국을 바라보며 살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러다 작년에 한 선교사님의 설교를 듣고 천국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았다. 내가 정말 무지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천국이 어디서나 임할 수 있다는 사실에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놀랍고 감격했던 기억이 있다. 정말 큰 비밀을 이제야 깨달아 그동안 고민하던 많은 것들이 해결된 기분이었다. 왜 나는 그동안 하나님 나라가 죽음 이후의 천국에만 있다고 생각하고 살았을까?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온 마음을 다해 듣지 않았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나는 경험이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교회를 오랫동안 다녔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잘못 알고 오해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내가 무지해서 오랜 시간이 흘러 조금씩 깨달아가 가고 있다 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을 전할 것인지는 늘 마음의 짐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시작하는 게 이 책이다.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은 못하시는 것이 없는 분인데 왜 이 세상은 이렇게 악한지, 교회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을 흘려보내지 못하고 울타리를 치고 유지에 급급하는지 이유를 찾아본다. 그리고 결국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인간적인 마음으로 생각했을 때 믿어지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는 어떠한 핑계도 없음을 정확히 알게 된다.


믿음의 능력은 시간이 아닌 거리가 결정한다. 우리의 믿음은 결국 자기 믿음이다. 그 믿음의 시간에 비례해서 능력이 경험되지 않는다. 그래서 먼저 믿은 자가 나중 되기도 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기도 한다. 201쪽


포도원에서 일하는 일꾼의 비유는 익히 알고 있다. 그리고 같은 시간을 일하지 않았음에도 같은 금액의 일당을 받는 모습에서 이해되지 않는 나를 본다. 더 많이 일한 사람에게 당연히 더 많은 일당을 주어야 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왜 포도원 주인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 일을 하게하고 아침부터 일한 사람과 같은 금액의 일당을 주는지 오랫동안 받아들이지 못했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나처럼 보잘것없고 연약한 사람에게 더 먼저 다가오신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곰곰 생각해보니 나는 아침부터 일하고 있었던 포도원의 일꾼이었다. 그랬기에 이제 막 교회에 발을 디딘 사람, 나보다 더 어려움에 처하고, 외부인에게 울타리를 치고 경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나님은 절대 편을 나누지 않고, 차별하지 않고 동일한 은혜를 주셨는데 내가 그 은혜를 먼저 받았다는 이유로 대접받기 원하고, 잘난체하고 있었다. 그랬으니 천국의 모습을 알지 못했고, 천국은 죽음 이후의 것이라 여긴 어리석음을 믿음이라 여기고 있었다.


우리의 눈으로 보지 못한다고 해서, 바랄 수 없다고 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얕은 믿음의 기준과 한계가 깨질 때, 우리의 한계를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진짜 능력이 역사한다. 그 능력은 다름 아닌 죽음조차 끊어 낼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176쪽


저자는 현재 한국 교회가 정체되어 있는 이유를 사랑이 더 이상 흘러내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영화 <레미제라블>을 제 2의 로마서라 말하며 절망이 가득한 세상에서 과연 내일이, 희망이 있는가란 신학적인 질문으로 접근한다. 다양한 사람들의 사상을 언급하기도 하고, 법칙에 대입하기도 하며, 경험과 성경을 섬세하게 파고들며 <불편한 믿음>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런 와중에 앞선 믿음의 선지자들의 무한한 사랑을 보게 된다. 1300만의 조선인이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복음을 전하러 온 언더우드 선교사, 고종의 주치의지만 최선을 다해 백정을 살린 애비슨 선교사, 자신의 아들을 죽인 이를 양자로 삼은 손양원 목사님 등 하나님이 이 세상을 너무 사랑하셔서 인간의 모습으로 하고 오신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세상으로 흘러넘치게 한 분들이 있었기에 현재 나는 이렇게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내가 갖는 불편한 믿음이란 건 무엇일까? 그 모든 것은 결국 나에게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부족한 믿음.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깨닫고, 천국이 언제든 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내 울타리에 갇혀, 내 안위만을 생각하며 적은 믿음으로 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이렇게 어리석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며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믿는다. 그리고 이렇게 인지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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