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카프카 단편선 세계의 클래식 9
프란츠 카프카 지음, 권세훈 옮김 / 가지않은길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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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작품집을 대부분 소장하고 있음에도「변신」을 이제야 읽었다. 줄거리를 익히 들어서 익숙한 것도 있었고, 인간이 벌레로 변해버리는 잔인한 상황을 피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변신」이외에「선고」와「요제피네, 여가수 혹은 쥐의 종족」도 실려 있지만「변신」이 단연 돋보였다. 그만큼 비극적이었고, 씁쓸했고, 모든 걸 포기하고 굶어 죽어가는 그레고르 잠자가 그저 안타까웠다.


세 편의 작품을 읽는 내내 모호하고, 알 수 없고, 혼란스럽다는 느낌이었다. 조금이라도 딴 생각을 하게 되면 흐름을 알 수 없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답답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저자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그의 작품 속에 내재되어 있는 혼란을 조금은 들여다 볼 수 있었다. ‘20세기의 불안하고 불투명한 세계를 예리하게 꿰뚫어 본 작가’라는 수식어처럼 그의 삶이 순탄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성공과 결혼에 대한 압박, 아버지의 절대적인 권위가 그를 얼마나 숨 막히게 했는지 생각만 해도 답답해진다.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던 프라하와 아버지의 곁을 죽기 직전까지 이루지 못한 카프카. 그가 남긴 문학이 현실과 먼 이상이 되었을지언정 그 안에서만큼은 탈출구가 되길 간절히 믿고 싶었다.

이런 저자의 삶을 인지하고 작품을 대하면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하고 그에 따르는「선고」의 인물들,「변신」에서 벌레로 변해버린 그레고르와 보이는 그대로 벌레취급 해버리는 가족들,「요제피네, 여가수 혹은 쥐의 종족」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현실의 괴리를 만들어 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섬뜩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변신」의 그레고르는 쉽게 간과할 수 없었다. 온 가족이 그의 경제활동으로 편하게 살아가지만 정작 그는 그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날 아침, 벌레로 변한 자신을 보면서도 직장과 가족 걱정을 하고 자고 나면 다시 괜찮아질 거란 생각이 그가 맞이하게 될 죽음에서 제발 멀어졌으면 싶었다. 어찌 보면 진정한 해방을 맞이했을 수도 있는 변신으로 인해 그는 더 지독한 구속으로 이어져 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죽음을 맞는다.

가족의 부양자에서 한 순간에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 그레고르는 자신이 벌레로 변신해 버린 참담한 현실보다, 가족들의 냉대와 무관심에 더 깊은 상처를 받고 굶어죽기에 이른다. 냉대와 무관심. 여기서 섬뜩했다. 우리가 무심코 보내는 그러한 시선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상처 입히고 내면에 갇히게 했는지 말이다. 가깝다고 예외가 있을까?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그레고르가 당면하게 되는 현실이 너무 처절해서 정말 그가 원하는 게 무엇일지 혼란스럽기 까지 했다. 그는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 다시 부양자의 굴레로 돌아가고 싶었을까? 어떤 것도 섣부른 단정을 지을 수가 없었다. 스스로 자살을 택할 만큼 그의 고통이 컸다는 사실과 그가 죽은 뒤 온 가족은 큰 짐을 덜어낸 듯 소풍을 갔다는 사실만이 무력하게 만들 뿐이었다.

저자의 작품 속에는 저자 자신이 깊숙이 내재되어 있지만 현실과의 괴리도 느껴진다. 하지만 나의 바람처럼 작품 속에서 온전한 자유와 해방, 완전한 이상을 추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창작활동이 그에게 숨통을 준 것 같으면서도 복잡하고 답답한 현실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저자에 대한 깊은 연구와 이해가 없기에 단면만 보고 이런 판단을 했을지라도, 그가 남긴 작품 곳곳에서 절절함이 느껴져 이런 마음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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