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똥 문지아이들
이경주 지음, 이윤우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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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메산골에서 자란 나는 수세식 화장실을 초등학교 때 접했다. 그 전에는 재래식 화장실이어서 밤에 화장실을 가는 게 정말 싫었다. 거기다 언니와 오빠가 무서운 얘기라도 해주면 그야말로 난감 그 자체였다. 화장실은 가고 싶은데 갈 수가 없어서 발을 동동 굴렸던 적이 많았다. 그래서 언니나 오빠에게 사정사정해서 밖에서 기다려 달라고 하고, 몇 번씩 확인한 적도 많았다. 너무 어릴 적 얘기라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그래서 수세식 화장실이 들어왔을 때의 신세계는 뭐라 표현할 수가 없었다. 집 밖을 나가지 않고 집 안에서 화장실을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신선했다.

그렇기에 이 책 속의 민재가 밤만 되면 똥이 마려워 덜덜 떨며 화장실에 가는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민재는 나처럼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고, 수세식 화장실이지만 모두가 잠든 시간에 화장실을 가야 하는 불안함은 같았을 거라 생각한다. 왜 밤에만 똥이 마려운지 고민이 되어버린 민재의 마음이 나 역시 진지하게 다가왔다.

그런 민재에게 더 큰 일이 생겨버렸다. 가족과 함께 숲으로 여행을 갔는데 역시나 밤이 되자 똥이 마려웠다. 어릴 적 나보다 더 무섭고 두려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숲 속에서 혼자 똥을 누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식구들을 깨워보아도 일어나질 않고, 어둠이 주변의 모든 것을 알 수 없는 괴물의 형상을 만들어 내는 그림을 보며 민재가 얼마나 겁을 먹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깊은 밤, 가족들이 모두 잠들어 있고 이상하게 내 눈은 말똥거려 천장을 보고 있는데 장지문 사이로 그림자가 비춰 흠씬 놀랐던 기억도 있다. 무서워서 온갖 기도문을 중얼거리고 있다 나중에 바람에 나부끼는 나무 그림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허무했던 일도 있었다. 분명 알 수 없는 공포의 대상이었는데 어떻게 나뭇가지일 수 있는지 날이 밝은 뒤에 민망해졌지만, 혼자 텐트 안을 나와 숲길을 걸어 화장실에 가야 하는 민재의 심정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어둠에 둘러싸여 있고 소리가 들릴 때마다 민재가 괴물에 잡혀 가는 상상. 생각은 인간을 훨씬 더 두렵게 만든다는 걸 알기에 민재가 부디 무사하길 바랐다.

우여곡절 끝에 화장실에 도착했지만 두려움 때문인지 똥은 나오지 않고 눈물만 나던 순간 커다란 그림자가 민재를 덮친다. 놀란 민재는 바지를 후다닥 올리고 밖으로 나오자 숲의 나무들이 동물 모양을 하고 있는 모습이 기괴하게 다가왔다. 이내 손전등을 비추자 각기 다른 동물들이 보인다. 올빼미, 족제비, 사슴, 다람쥐 등 모두 민재처럼 밤똥을 요란스럽게 누고 있었다. 민재처럼 밤똥을 누는 동물들이 있다는 사실에 안심이 되어 민재도 함께 앉아 똥을 눈다. 아침이 되어 형에게 말해주지만 형은 잠꼬대라고 생각한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민재는 여전히 밤똥을 눈다. 하지만 예전만큼 무섭지 않다. 함께 밤똥을 누던 동물들이 생각이 났고, 민재가 앉아 있는 화장실에도 그런 동물들이 함께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 때문이다. 민재의 화장실이 멋진 숲으로 변해있는 마지막 장면에 괜히 흐뭇해졌다. 분명 무서운 경험이지만 민재 혼자만 밤똥을 누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밖으로 화장실을 가야 했던 내게, 동물들이 나타나 함께 똥을 누었다면 나는 아마 놀라서 바지도 못 올리고 울며 도망갔을 것 같다. 정말 웃픈 상황이지만 민재의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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