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깨닫게 되는 것들
리처드 J. 라이더 & 데이비드 A. 샤피로 지음, 김정홍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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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를 읽다보면 공자의 솔직함이 묻어나는 곳이 많다.  그 가운데 우리를 긴장하게 하는 한 구절이 있다.   자로(子路)라는 노나라 사람이 공자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감문사(敢問死)?"  즉, 도대체 죽음이 무엇입니까?  라고 하자,  이에 공자가 답한다.  "미지생 언지사(未知生 焉知死), 아직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오늘날 그를 성인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 답변이 시원찮을 것이다.  대석학이자 세상 이치에 통달한 성인이 삶과 죽음에 대해 아는게 없다고 고백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답속엔 공자의 지혜가 담겨 있다.  삶이 무엇이며, 죽음이 무엇인지 알고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은 인생을 모른 채 태어났고, 그래서 알기 위해 노력하다, 여전히 모르채 죽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모두를 알고 있다면 그는 사람이 아니라 신이겠다.   이 구절은 <논어>의 첫 구절과 연결된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즉, 공자는 삶과 죽음을 알 수 없으니 `배움'을 통해 인생을 알아가라, 고 말하는 있는게다.

 

리처드 J. 라이더와 데이비드 A.샤피로가 공동 집필한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깨닫게 되는 것들>은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사람에게 도움을 줄 만한 책이다.  삶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인생의 길 위에서 곤궁과 암담함에 부닥칠 때,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들이 자기계발서 전문 필자들이자, 기업 컨설턴트로서 이 책을 기획, 집필했겠지만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어떤 절박함이 책 안에 담겨 있었다.  그것이 천편일률적인 자기계발서들과 차이점이며 서술방향의 진정성을 돋보이게 한다.

 

이 책의 저자는 한결같이 인생의 어느 시기가 오면 짊어진 가방 속 짐을 풀고 다시 쌓아야 할 때가 온다고 강조한다.  가방을 다시 꾸리는 것은 생을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하지만, 현재 자신의 가방속에 불필요한 그 무엇이 없는지 가방속 물건들을 하나씩 검토하고 살펴보는 일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행 중 만난 아프리카의 마사이족 족장에게 이 책의 저자는 가방속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 보여준 적이 있다.  문명의 편리함을 자랑하기 바빴던 그에게 마사이족 족장은 의아한 눈빛으로 묻는다.

 

" 이 모든 것이 당신을 행복하게 해줍니까? "

 

왜 우리는 여행을 갈 때 불필요한 그 모든 물건들을 집어넣기 바쁜 것일까?  쓸데없이 배낭을 무겁게 하고, 여행을 불편하게 만들고 마는 그 짐들은 어쩌면 우리들의 부질없은 욕망을 표상하고 있진 않는가?  이러한 의문에서 출발한 이 책은 인생의 짐을 가볍게 만드는 일에 관해 독자와 함께 고민하고, 생각해보는 기회를 준다.  때로는 제목만으로 책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누가보아도 20대를 타켓으로 기획한 책이다.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깨닫게 되는 것들>은 중년의 독자들에게 큰 호흥을 얻을 수 있는 책같다.  제목을 통해서 얻는 위안같은게 있고 그 제목을 통해 서술방향까지도 추측하게 되는데, 그 예상은 적중했다.

 

중년의 나이에 이르면 뭇 사람은 안정된 생활에 이른다.  무언가에 도전하기 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며,  질문하기 보다는 이미 정해놓은 답에 만족하며 살아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일상이 권태에 빠지고 흥미를 잃어버리는 순간이 찾아온다.  저자들이 내놓은 답은 가방속 두툼한 짐을 풀어헤치고 다시 쌓는 일이다. 불필요한 모든 짐들을 버리고, 짐을 가볍게 해서 여행길에 부담을 덜어주는 일 말이다.  하지만,  버리기 두려워하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 심사다.  이 책의 저자들은 가방을 다시 쌓는 일이 두렵지만, 그 두려움을 쫓아버릴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역시 가방을 다시 꾸리는 일임을 역설한다. 

 

`성공해서 행복한게 아니라 행복해야 성공한다'라는 이 진리를 우리는 잊고 산다.   물질적인 것을 탐하는 사람일수록 그의 내면은 그만큼 공허하기 마련이다.  부자들이 좋은 차, 좋은 옷, 좋은 음식을 탐하는 이유가 뭐겠는가?  영혼의 공허를 물질로 채워보겠다는 것 아닌가?  사람에게 물질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물질이 사람을 망하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내면의 평화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래,   이 책의 저자들은 소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을 여행과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 무욕, 동서양 고금의 지혜로부터 추출한다.

 

" 삶이란 일직선이 아니다. 탄생에서 죽음까지 이르는 길은 지그재그로 꺽여 있어 회전에 회전을 거듭해야 한다. 때문에 인생은 무수한 뒷걸음질로 파헤쳐진 W자 형태의 꺽인 길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직선으로 뻗어 있는 길만을 `성공'으로 여긴다. 그래서 얻은 것이 뭔가?  한평생 굴곡 없이 잘살다가 성공적으로 은퇴하여 깨끗하게 인생을 마감한다는 소름끼치는 건전 드라마일뿐이지 않은가?" p.103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게 가장 힘들었던 생일은 마흔 번째 생일이었던 것 같다.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상징이었다. 마흔은 청춘과 영영 이별하는 나이니까.  그 나이를 통과한다는 것은 마치 음속의 벽을 넘어서는 것과 같다."   p.145

 

"사람들은 자신의 재능과 관심사가 바로 목적을 가리키는 지표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재능과 관심사, 이것이 바로 목적을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p.145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진짜 즐거움은 그 길을 갈 때 느끼는 자유와 해방감이다. 절대로 정착해 살 일이 없을 낯선 마을로 들어설 때 얼마나 홀가분한 기분인지 느껴본 적 있는가?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나는 얼마든지 내가 되고 싶은 어떤 사람이든 될 수 있고 내가 어떤 사람이든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 p.267

 

자기계발서라지만 독자에게 어떻게 살 것을 명령하지 않는다. 저자의 고민과 방황이 함께 묻어 있는 자기계발서는 느낌이 좋다.  이 책의 전부에 만족할 수 없지만 차분하게 인생의 중년에 도달한 사람에게,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준 것만으로도 이 책은 나름의 가치가 있다. 작년 예스24 올해의 책 24권 안에 독자 투표로 선정된 바 있다.  미국 독자들을 염두해 둔 이질적인 서술태도가 마음에 거슬리고 번역투의 문체가 갑갑하지만, 곳곳에 마음에 새겨둘만한 문장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몇번 되풀이해 읽어도 역시 좋다.

 

인생에는 하나의 답과 하나의 길이 없다.  세상살이에는 정답이 없다.  그래서 공자의 지혜로운 가르침을 되돌아본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의 자세로 삶을 살고 싶다.  배움속에 기쁨과 즐거움, 지혜와 소박함이 있다.  정약용 선생님이 18년간 유배생활을 한 다산초당으로 발품을 팔아 얻은 글귀가 있다.  "독서는 사람의 일 가운데 가장 깨끗한 일이다"  그 뜻은 공자의 가르침과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학문과 배움, 즉 독서야 말로 소박하게 행복에 이르는 길이지 않는가?   인생이 권태와 공허로 가득찰 때, 무의미와 욕망이 잠식해 들어올 때,  책은, 배움은, 독서는, 우리 삶에 새로운 이정표와 활력을 전해줄 것이다.

 

 

 

 

 

 

201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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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인규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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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Miracle)은 멀리 있지 않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기적이다.  그래서 행복해지고 싶거든 카르페디엠(Carpe diem), 현재를 잡아라고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선언했다.  한데, 그 기적을 풀이하려는 시도들이 있다.  철학이 그런 학문이다.  철학은 세계와 인간의 정체와 질서를 논리적으로 해체하려는 학문이다.  철학자의 설명은 언제나 명료하다.  나름의 논증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세계를 하나의 철학으로 풀이하려는 노력은 결국 실패한다.  왜냐하면, 철학의 효용은 동시에 그 한계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으로서 문학은 철학이 당면한 그 한계로부터 출발한다. 직접적으로 세계를 설명하려고 시도하지 않음으로써 철학이 실패한 그 방식을 우회한다.  문학이 도달하는 세계에는 오류가 없다.  무엇을 논증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문학은 언제나 세계와 인간을 가장 정확히 다룬다.  철학은 질문에 분명한 답을 주려하지만, 문학은 구태어 답을 주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  작품속에 그려진 곤궁한 인간, 세계가 이미 나의 존재를 변호하고 충분히 설명하고 있어서다.

 

1954년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긴 중편 <노인과 바다>가 그런 작품이다.  남미 멕시코 만, 쿠바 연안에 살고 있는 산티아고라는 노인은 작은 돛단배로 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가는 어부다.  고기를 잡는 일은 놀이가 아니라 노인에게 생계 수단이다.  가족도 없고 친척도 없다.  함께 고기잡이를 하던 어린 소년은 40일째 허탕만 치던 노인의 곁을 떠났다.  그의 부모는 `살라오' 즉 운수가 완전히 바닥한 노인네라며 소년에게 다른 배를 타게 했다.  그 이후, 소년이 탄 배는 일주일 동안 큰 고기를 세마리나 낚는다.

 

소설은 운수가 바닥난 늙은 어부가 85일째 큰 고기를 잡게 되는 운수대통의 하루를 묘사한다. 하지만 행운은 이틀째 불운과 절망으로 되돌아 온다.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그 큰 물고기는 뼈만 남을 정도로 상어떼에게 뜯어먹혔기 때문이다.  이 반전에는 특별한 재미와 놀라운 스릴이 없다.  노인의 불운이 너무나 평범하고 흔하단 게 이 소설의 `특별함'이다.

 

망망대해에 작은 돛단배를 띄워두고, 배보다 더 큰 물고기를 잡는다. 노인은 이야기 상대도 없어 줄곧 혼잣말을 되뇌인다.  새와 잡은 고기와 악당같은 상어떼와 혹은 하나님과 자기자신에게 말을 건넨다.  날아든 바다새를 보곤 `바다에 살기엔 너무 가냘프게 창조되었어'(p.30)라 하더니 포획한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며 '물고기야, 아직도 지치지 않았다면 너도 아주 이상한 놈임에 틀림없다'(p.70)고 핀잔을 준다.  하나님에겐 고기를 집까지 무사히 가져갈 수 있기를 기도하며, 스스로에겐 '사람은 박살이 나서 죽을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를 당하진 않아'(p.108)라고 용기를 북돋는다.

 

노인은 소설속에서 뭇 독자의 연민을 불러오는 주인공이다. 사람이 아무리 운이 없어도 84일째, 허탕을 치기는 힘들다.  하지만, 85일째 잡은 고기는 그를 더욱 불운한 사람으로 내몬다. 고기와 사투를 벌이고 그는 결국 승리한다. 손과 어깨에는 팽팽한 낚시줄 덕분에 피멍이 들었고, 이틀째 그는 상하기 직전인 물고기를 먹으며 허기를 채웠다.  고기 피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상어떼의 공격도 잘 막았다. 하지만, 상어떼는 물고기를 결국 다 먹어버리고 노인은 뼈만 앙상한 고기를 갖고 집으로 돌아온다. 

 

"노인은 커피를 받아들고 마셨다.

`난 놈들에게 졌단다, 마놀린,' 노인은 말했다. `놈들한테 정말 지고 말았어.'

`그놈한테는 지지 않았잖아요. 잡아온 물고기한테는 말이에요.'

`그래. 그건 정말 그렇지. 내가 진 건 그 뒤야' "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p.129

 

노인의 삶은 소유의 관점에선 실패한 인생이다.  그는 물고기를 낚지 못함으로써 부자가 될 기회를 놓쳤다.  사람들은 노인이 궁지에 내몰린 사이에 노인이 잡아야할 고기까지 낚는다.  뭇 사람의 가난은 그렇게 탄생하는 것일게다.  세상은 기회를 갖지 못하고, 운이 나쁜 노인과 같은 사람들을 거들떠 보지 않는다.  소년의 부모가 노인에게서 자식을 떼어놓은 이유다.  하지만, 소년은 노인을 떠나지 않는다.  그에게서 더 많이 배울게 있다고 장담하기까지 한다.  뜨거운 커피를 사놓고 집으로 돌아와 깊은 잠에 빠져든 노인이 깨어날때까지 노인의 곁을 지킨다.  어부에게 고기를 낚는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소년은 알고 있다.  그건 인생을 헤쳐나가는 어떤 지혜일까?

 

노인은 욕심이 없다.  세상의 이목은 뒤로하고 메이져리그 경기 결과를 소년과 화제로 삼아 이야기를 나눈다.  때론 아프리카의 사자꿈을 꾸며, 광활한 대륙에서 사자처럼 포효하는 삶을 꿈꾼다.  우리의 삶의 목적이 큰 물고기를 낚는 것일 순 없다.  그건 생의 수단일 뿐이니까. 노인이 고기잡이에 실패하고도 전혀 흔들림 없이 잠을 청할 수 있는 이유다.   노인은 인간과 세계를 전체로 바라볼 수 있는 식견을 갖고 있다.  하여, 오늘의 작은 패배를 인생의 실패로 확대해석 하지 않는다.  그에겐 듬직한 생의 동반자도 있다.  광막한 바다로 자신을 이끌어줄 한 척의 돛단배와 자신을 믿고 따라주는 착한 소년이 곁을 지켜준다. 부자가 아니어도 인생은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노인과 바다>는 해밍웨이의 자전적인 인생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네번의 결혼이 전부 행복하진 못했을 것이고, 1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을 통해 좋은 작품들을 건졌지만 몸에 큰 부상을 당하고 그 후유증에 시달렸다. 주인공 산티아고 노인처럼 해밍웨이도 인생이란 84일 동안 단 한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하는 불운이 계속될 수 있다는걸 알고 있다.   85일째 잡은 거대한 고기처럼 행운이 느닷없이 찾아와 허망하게 사라질 수 있는게 인생 아니겠는가고 되묻고 있는듯 하다.   이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지만, 만년의 지병과 우울증은 그를 자살로 내몰았다.  만년 작가의 인생은 노인과 닮았다.  하지만, 작품속 노인의 독백처럼 그는 박살이 나 죽었을지언정 패배하진 않았다.  그는 이 불운한 삶을 통해 쓸만한 작품들을 건졌고 오늘도 새로운 독자들을 만나고 있으니까.  

 

인간의 죽음은 예정된 필연이다. 죽음 자체가 패배가 아닌 이유다.  삶은 죽음으로 종결되겠지만, 죽음이 삶을 규정하진 못한다.  그래서, 삶이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며 소유가 아니라 존재일 수밖에 없다.  소설속 노인은 오늘의 실패를 깨끗이 잊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지만, 내일 아침엔 낚시 도구를 수리하고 만반의 준비를 마친채 다시 거대한 바다에 자신의 돛단배를 띄울 것이다.  고기를 한 마리도 낚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는 힘차게 노를 저어 바다로 향할 것이다.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의 생명이자 오늘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노인은 카르페디엠에 충실함으로써 행복에 이른다.  노인과 같이 평범하고 누추하고 가난한 일상이 숭고한 의무이자 거룩한 의식으로 치환될 수 있음을 이 작품은 보여줬다.  그 어떤 철학보다도 설득력 있게 우리 삶을 해명한다.

 

 

 

 

 

 

20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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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3-05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격하게 추천하고 갑니다.
특히 삶이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며 소유가 아니라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님의 말씀에 몇번이고 동의하고 싶군요.
저도 얼마 전 읽었는데 의외로 참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느꼈어요.^^

개츠비 2012-03-10 13:30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읽은 고전작품인데 생각할수록 깊은 의미가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두고두고 그 의미를 생각하게 되어서 참 좋았네요.

철수 2012-04-14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어한테 뜯긴 그 괴기..장에 가서 팔았는지...난 그게 궁금하던데..
소설속에서는 나오지 않잖아요.
하긴..맛있는 뱃살은 상어가 다 먹고..남은건 찌께다시로도 환영을 못받는 등살정도 남았을테니....구이로밖에 못쓰겠죠..아까비~~

몰입도는 쥑이는 소설이지요.
님의 리뷰를 보니 갑자기 참치 마구로가 급 땡깁니다.

휼륭한 리뷰입니다. 헤밍웨이보다..훨씬 잘 쓰셨어요..

개츠비 2012-04-20 10:5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저도 그게 궁금하긴 했네요. ^^
 
영혼의 자서전 1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17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안정효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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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소설가이자 노벨상 작가 알베르 카뮈는 카잔차키스를 추모하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보다 백배는 더 노벨문학상을 받았어야 할 작가라고 말이다.  카뮈의 말은 겸손이기도 하지만 진실이기도 하다.  카잔차키스는 카뮈의 글에 많은 영향을 준 듯 하다. 카잔차키스의 소설과 자서전을 한 편씩 읽었다.  한데,  내가 젊은 시절 좋아했던 카뮈의 흔적을 이 그리스 작가에게서 발견하고는 신기했다. 

 

도서출판 <열린책들>에서 펴낸 2권으로 된 700여 장의 자서전을 읽어내는 것엔 꼬박 한달 가까이가 걸렸다.  쉼없이 빈 시간을 이용해 자서전의 문장들을 훑어갔지만 끝은 오지 않았고,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어느 한 문장 빈틈없이 꽉 채운 듯 진지했고, 둔중한 사유는 계속되었다.  눈이 아프고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질주하는 문장들에서 쉽게 내려설 수 없었다.  그의 삶도 그처럼  놀라운 진념과 열정으로 빚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1883년 그리스의 크레타 섬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났을 당시, 고향 크레타는 터키의 점령하에 있었다.  터키인들은 기독교인과 크레타인을 박해했다. 아버지는 자신을 이웃섬에 피신시키고, 자신은 독립을 위해 싸움을 이어갔다. 아버지는 상인이었지만, 아들 카잔차키스가 크레타를 위해 육체가 아닌 두뇌로써 싸워주길 원했다.  큰 인물이 되어 크레타인으로서 명예을 지키고, 독립에 기여하라고 말이다.  아들은 훗날 아버지의 원대로 그리스 전체를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훗날 터키에서도 독립을 쟁취한다.  하지만, 카잔차키스의 싸움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바로 신과 인간, 영혼과 육체, 선과 악, 신앙과 무신론, 삶과 죽음, 종교와 철학의 대척점에서 그는 전사로서 평생을 보냈고, 피를 흘렸다.

 

카잔차키스가 죽기 2년 전에 탈고한 <영혼의 자서전>은 이 투쟁과 반항, 피흘림의 기록이다.  그는 일생동안 끝없이 여행했고 방랑했다.  유럽의 수도원을 순례했고, 러시아의 혁명 현장을 목격했고, 중국과 아시아의 나라들을 탐색했다.  이 자서전은 그가 일평생 여행한 나라들에서 깨달은 잠언들의 모음집이다.  그는 쉼없이 진리와 신과 스승을 찾아 헤맸다.  누구나 청년기에는 형이상학적 기질을 품는다.  세계에 대한 의문, 인간에 대한 질문은 청년의 영혼에 자연스레 깃들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일흔 두살 이 자서전을 쓰는 순간까지도 그의 영혼은 여전히 청년의 열정과 고민에 휩싸여 있었다.  그는 두번째 아내 엘레니 카잔차키와 함께 스위스 루가노의 별장에서 한달을 보내던 시기 이 자서전을 집필했다.  

 

그 전년에 교황청과 그리스 정교회는  카잔차키스의 두 작품 <미할리스 대장>과 <최후의 유혹>이 신성을 모독했다며 작가를 맹비난했다.  결국 교황은 <최후의 유혹>을 카톨릭교회의 금서목록에 추가하고, 조국 그리스에서 이 두 작품의 출간은 미뤄진다.  훗날  카잔차키스는 그리스 정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이런 사족을 남겼다.

 

"성스러운 사제들이여, 여러분은 나를 저주하나 나는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여러분께서는 나만큼 양심이 깨끗하시기를, 그리고 나만큼 도덕적이고 종교적이시기를 기원합니다."

 

이 말에 비약은 없다.  카잔차키스는 젊은시절 사제가 되고 싶었고, 되는 길을 심각히 고려했다. 그가 유럽의 수도원을 시시때때로 방랑하며 수행자의 삶과 실제를 온몸으로 배우고, 터득하려 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그는 많은 수도자들을 만났고 그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수행자 가운데 신실한 이도 있었지만 가식과 죄악에 물든 영혼을 수도복으로 가린채 살아가는 이도 많았다.  사제들의 본질이 종교적 형식에 있지 아니하고 그들의 본래적 영혼에 있다고 믿었다.   자서전의 1편은 바로 젊은 시절의 삶과 수도원 기행이 주를 이룬다.  그는 수도원을 방랑하며 그리스도교의 엄격한 금욕의 세계관과 고향 크레타의 그리스적 자유분망함 사이에서 고뇌했다.  종교의 가르침은 현세 부정과 내세의 보상이었다.  카잔차키스는 이 편향된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가 훗날 그 둘 사이의 조화, 즉 인간이 육체와 영혼으로 나뉠 수 없고 오직 그 둘 모두로 이루어졌음을 인정하며, 그리스도교적 가르침에 고뇌한 이유다.

 

"너는 선하고 평화롭고 참아야 하며,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쪽 뺨을 내주어야 하며, 현세의 삶은 가치가 없으며, 참된 삶은 천국에서 찾아야 한다, 고 성서가 가르쳤다.  너는 강해야 하며, 포도주와 여자와 전쟁을 사랑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자부심을 드높이기 위해 죽이고 죽어야 하며, 이 땅의 삶을 사랑하고, 하데스의 왕이 되느니 살아서 노예가 되라, 고 그리스의 할아버지인 호메로스가 말했다."   p.324  <영혼의 자서전 1>

 

<영혼의 자서전 2>에서 그는 본격적으로 인생의 스승들을 찾아 헤맨다.  신문사 특파원으로 학생으로 여행자로, 그는 세계를 여행하고 여러 도시들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길 위의 스승으로 자신의 영혼에 가장 깊은 자취를 남긴 이들을 밝힌적이 있었다.  그들은 호메로스와 붓다와 니체와 베르그송과 조르바였다.   호메로스에 대해 그는 기운을 불러오는 광채로 우주 전체를 비추는 태양처럼 평화롭고 찬란하다고 묘사했다.  조국 그리스의 전설적 작가 호메로스에 대한 경의다.  붓다에게서 그는 세상 사람들이 빠졌다가 구원을 받는 한없이 까만 눈을 발견했다고 적었다.  젊은 시절 철학의 온갖 문제들에 대한 답을 준 이로 철학자 베르그송을 언급했고,  니체의 사유는 고민하는 그를 새로운 고뇌로 살찌게 하며, 불운과 괴로움과 불확실성을 역설적인 자부심으로 되돌려준다.  실존 인물이자 사업의 동반자이기도 했던 무학의동료 조르바로부터 그는 생동하는 삶을 즐길것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배웠다고 고백한다.

 

카잔차키스의 자서전은 독특한 서술 방식을 택했다.  그것은 이 자서전이 `영혼의' 라는 수식어를 갖다 붙인 가장 중요한 이유다.  자질구레한 생의 구체성에 대해선 되도록 피해간다.  구체적인 인생의 사건들을 회고할 때에도 그는 언제나 시와 잠언같은 문체를 유지한다.  그같은 방식은 700 여 장, 어느 곳을 펴들어도 독자가 고뇌하는 작가의 영혼과 맞대면 하는 느낌을 전해준다.  책 전체가 잠언의 깨달음과 시어의 비유적 언어로 가득하다.   자서전을 곧 최고의 문학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일평생 그는 수많은 작품을 썼다. <영혼의 자서전>은 그가 써낸 모든 작품의 태생적 배경과 모태를 확인토록 돕는다.  그는 죽는날까지 인간의 본질과 어떻게 살 것인가를 두고 고민했다.  그 답을 얻기 위해 여러 스승을 찾고자 했고, 훌륭한 스승들을 결국 만났다.  그들에게 배움으로써 그는 자신의 삶이 교조주의적 부자연스러움에 빠져드는 것을 막아냈다.  그는 자유를 원했고 그 자유속에는 영혼과 더불어 육체의 자유도 포함되었다.  어린 시절 그에게 성경을 가르치던 교사는 성경에 대한 아이들의 질문을 죄악시했다.  신의 섭리에 구체적 질문은 가당치 않다고 말이다.  자유에 대한 카잔차키스의 지칠줄 모르는 열망은 어린시절 금지된 질문들에 얽힌 깊은 트라우마 였을지도 모른다.

 

"내 영혼을 처음으로 뒤흔든 것은 공포나 고통이 아니었고, 쾌감이나 장난도 아니었으며, 자유에 대한 열망이었다.  (중략..) 우선 터키인들로부터 찾아야 하는 자유, 그것이 첫 단계였고, 그 다음에는 내면의 터키인인 교만과 악의와 시기로부터, 공포와 게으름으로부터, 눈을 멀게 하는 헛된 사상으로부터,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사랑과 흠모를 받는 대상들까지도 포함한 모든 우상들로부터 자유를 찾으려는 새로운 투쟁이 시작되었다."   p.84-85, <영혼의 자서전1>

 

그가 추구한 자유, 스승으로부터 배운 삶의 지혜, 그 모두를 조화시키는 한 사람은 실존인물 조르바였다.  조르바와 카잔차키스는 탄광 사업을 위해 만난 파트너였지만, 조르바는 카잔치키스에게 놀라운 가르침을 준다.  그것은 조르바가 어떤 종교에도 구애되지 않고, 어떤 이론과 억압에도 굴복하지 않고, 태초의 자유로운 품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다가올 천국을 위해서도 봉사하지 않고,  현실을 즐기고 매일 아침 매 순간 삶을 태초의 그것으로 받아들이며, 창조적 단순성과 영혼보다 우월한 힘을 내면에 간직한 채, 분명한 행동력으로 가득한 삶.  그것은 카잔차키스가 일평생 찾기를 갈망한 자유의 참모습이었던 것이다.

 

결국 카잔차키스는 74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길위에 있었다.  백혈병을 앓고 있었던 그를 아시아 독감이 급습했고  최후의 순간까지 작품과 인생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더 충만한 시간을 구걸하고 싶어했던 노작가는 영면에 든다.  생의 1분 1초를 누리고 오직 현세의 삶 가운데서 구원을 찾고자 했던 성실한 작가는 수많은 작품을 남겨두고 불멸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그의 시신은 크레타로 운구되어 안치되고, 묘비에는 생전에 그가 정해두었던 묘비명이 새겨졌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그의 유골은 지금 고향 크레타 섬 이라클리온에 묻혀 있다.  하지만, 그가 창조한 인물속에서 작품안에서 그는 여전히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 숨쉰다.  <영혼의 자서전>을 통해 독자는 여전히 젊고 생동하는 한 청년의 열정과 자유를 보게 될 것이다.  

 

"인간은 저마다 맞서 싸울 적의 정체를 결정짓는다. 비록 그것이 파멸을 뜻할지언정, 나는 신과 싸우게 되어서 기뻤다. 그는 흙을 빚어 세상을 창조했고, 나는 어휘를 빚는다. 신은 지금처럼 땅 위를 기어다니는 인간을 만들었고, 나는 꿈을 이루는 공기와 상상력으로 시간의 횡포에 항거하는 인간을, 보다 영적인 인간을 빚어내리라. 신의 인간은 죽지만, 내가 창조한 인간은 살리라 ! "  p.194 <영혼의 자서전1>

 

 

 

 

201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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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다락방 -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
이지성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연초에는 자기계발서를 한 권 정도는 읽어줄 필요를 느낀다.  무엇보다 1년을 달려갈 이에겐 의욕과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처방전이 자기계발서엔 있기 때문이다.  서재를 힐끔거리다 <꿈꾸는 다락방>이 눈에 들어왔다.  3년 전 사둔 책을 아직도 못 읽었다니?  그것도 사고나서 얼마 후엔 선물로 또 한 권이 들어왔다.  이지성이란 작가,  출판계의 입지전적 인물이다.  어려운 가정 환경을 극복하고 스무살 무렵부터 작가가 되고자 끊임없이 노력해서 이젠 어엿한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되었다.  그에 관한 신문 기사를 읽은적이 있는데 나름 배울게 많은 분 같았다.

 

하지만, 처음 그의 저작 <꿈꾸는 다락방>을 접하곤 약간 실망했다.  그가 그 이후로 어떤 책을 썼는지는 내 알 바 아니다.  오직 이 책에 대해서만 논하자면 책안에서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한 몇가지 공식들이 보인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하향 평준화한 듯한 문체,  천편일률적인 자기계발서의 맹목적인 신앙이 엿보이는 반복과 강조, 성공에 관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개념적 서술 태도.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납득해야 할까?  

 

이 책의 주제는 단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 즉, Vivid Dream = Realization, 줄여서 R=VD 라고 한다.  저자는 이 공식을 증명하기 위해 동,서양의 수많은 인물과 역사적 예화들을 들고 온다. 책을 읽는 동안 이 공식을 독자의 뇌리에 각인시키겠단 의지가 대단하다.  어디서 그같은 예화들을 수집하셨는지 그 열정에 탄복하게 된다.  세계적인 위인들의 성공사례를 분석해 보면, 모두가 하나 예외없이 R=VD를 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여기서 위인이란 주로 성공한 정치인, 예술가, 부자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성공한 사람들은 긍정적인 R=VD를 했고,  실패한 삶을 산 이들은 부정적인 R=VD를 했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부를 잘하고 각종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를 원하면서도 정작 현실에서는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른다.  공부 때문에 걱정하고, 시험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한다. 공부가 너무 좋아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자신의 모습은 있는 힘을 쥐어짜도 그리지 못하지만, 공부 때문에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의 모습은 너무 쉽게 그린다. 전교 1등, 전국 1등, 사내 1등 하는 자신의 모습은 감히 상상할 엄두조차 못 내지만 평범한 성적을 받는 자신의 모습, 시험을 망친 자신의 모습은 어렵지 않게 상상한다. 자신의 소망을 파괴하는 VD를 매일 매순간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지성 <꿈꾸는 다락방>, p.126

 

단적인 예로, 피카소는 무명의 세월동안 언제나 마음속에 부와 명예를 생생하게 꿈꿨다고 한다.  나는 내 그림으로 억만장자가 될 것이며,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을 것이며, 갑부로 살다가 갑부로 죽을 것이라고 말이다. 반면 말년 정신병으로 자살한 화가 반 고흐는 평소 비참하게 살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떨었고, 돈과 인연이 없다 혹은 불행은 나를 절대로 떠날 것 같지 않다는 부정적 R=VD를 했다.  결국 피카소와 고흐는 생전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오늘날 피카소와 고흐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누가 성공한 예술가인지, 예술가의 성공과 실패를 생전 그의 불우한 삶으로 평가하는게 맞는지는 일단 의문으로 남겨두자.

 

개인사업자로 일본 최고의 부자인 사이토 히토리는 "노력하면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대신 "부자가 되고 싶으면 부를 끊임없이 상상하라"고 말한다.  그러면 부가 "저절로" 찾아온다는 것이다.  즉, R=VD만 하면 모든게 이루어진다.   저자의 이같은 서술 방향은 이 책안에서 대게 이런 식이다.  이 책을 자기계발서가 아닌 종교서적으로 읽어줄 수 있는 좋은 사례다.  자기 삶에서 지금 절박한 소망을 암송하면 살아 생전에 모든게 이루어지고 행복해지고, 부자가 된다는 것을 교리로 하는 종교가 실제로 존재한다.

 

이 예화의 클라이막스는 저자의 생생한 경험담이다. 마치 신앙 간증을 듣는 기분이다.  저자는 복사기 한 대를 집안에 들여놓고 싶어했다.  하지만, 수중에 있는 돈은 30만원으로 무일푼이나 마찬가지였고, 중고복사기 가격은 60만원이 넘었다. 결국 저자는 R=VD를 선택했고 복사기를 방안에 들여놓는 것을 생생하게 꿈꾼다. 저자의 표현으로 풀이하자면 `상상력이 시공을 초월해서 복사기를 끌어오는 장면을 온 힘을 다해' 상상했다는 것이다.  그 후 놀랍게도 정확히 일주일만에 복사기를 갖게 됐다.  어떻게?

 

수퍼마켓에서 대파를 반 단 샀는데, 수퍼 아주머니가 대파를 생활정보지게 돌돌말아 주었고 그 생활정보지를 벗겨보니 거기에 이렇게 쓰여있었단다. "중고 복사기 초특가 판매 34만원"   약간 싱겁긴 하지만, 이 예화를 보며 무척 황당하면서도 재밌었다.  근데 왜 한 편의 허무개그를 보는 듯한지?

 

또, 예화로 들고온 삼성 이건희 회장의 사례에 과연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건희 회장은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서 생생하게 꿈꾼 뒤 마침내 그것이 눈 앞에서 살아 움직이면, 전 직원을 상대로 성공을 선포하는데, 그것을 가리켜 이건희의 `꿈의 청사진' 기법이라 부른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에버랜드, 삼성의료원, 골프장, 미술관, 탁아소 사업 등의 성공이 그 좋은 사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같은 성공에 이르기 위해 그가 어떤 탈법과 부정을 저질렀는지 `개념있는' 독자들은 다 알고 있다.  저자가 이것을 진정한 의미의 성공이라고 규정한다면,  성공의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 아닐까?

 

저자가 신봉하는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는 공식은 어느 정도 맞고, 또 일리도 있다. 간절히 소망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는 사람에 비해 그 꿈에 다가설 가능성이 높다.  속담에도 있듯이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이니까,  먼저 뜻(꿈)을 품어야 하는게 먼저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같은 좋은 덕담의 의미가 훼손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성공을 하기 위해 먼저 성공을 꿈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와 실패에 대한 극복,  자신의 일에 대한 헌신과 의지 등도 중요하다.  또 성공이란 목적지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의미의 성공인가 하는 점이다. 그 모든 의미를 삭제하고 도달하는 성공의 지점에 독자들은 수긍할 수 있을까?

 

이렇게 R=VD를 경직되게 설명하지 않아도, 하나의 덕담을 신앙으로 만들지 않아도, 그 좋은 뜻을 자기계발서로 살려낼 수 있었다.  일방통행식 성공의 사례가 아닌 저자의 따뜻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예화가 더 풍부했으면 좋았을 거다.  저자는 무일푼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미 성공을 이룬 사람이다.  최근엔 인문서적의 독서를 강조하는 책도 낸 것으로 안다.  그러한 저자가 반 인문적인 성공 사례들을 들고와 독자를 설득하려 하다니 앞뒤가 안맞는다.  

 

자기계발서가 사람들에게 주는 오해와 편견의 모든 불편한 진실을 이 책은 담고 있다.  베스트셀러가 만들어지는 공식과 집필 방식까지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자기계발서와 베스트셀러의 편견과 허상을 이 책을 통해 되돌아보게 된다.   물론 좋은 독자는 불필요한 작가의 넘치는 의욕을 웃음으로 넘기고 필요한 부분만 자기것으로 만들 것이다.  나또한 이 책의 R=VD 기법을 적극 수용하고 싶다.  하지만, 이 책의 교훈은 또 다른 곳에도 있다.  꿈을 꾸더라도 개념있게 꿈꾸자는 것이다. 

 

세상에는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성공에 이른 과정이 꼼수로 가득차 있다면 그를 진정 존경할 수 있겠는가?   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삶에 공감하고 존경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책의 최대 오류는 그 둘을 구분하지 않고 있음이다.

 

 

 

 

 

 

 

201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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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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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은 우리의 정치와 사회를 특유의 풍자와 유머로 감시해 온 언론인이다.  요즘 그가 진행하는 나꼼수의 행태나 종신총수를 맡고 있는 10년 전통의 딴지일보의 특성상 이 분을 기존의 보수적 관점에서 언론인으로 불러야 할지 고개가 갸웃하긴 하다.  그간 김어준이 기획한 모든 미디어의 형식은 파격적이었다.  딴지일보는 개그인지 기사인지 애매했고, 팟캐스트 나꼼수 방송은  정체가 수다(말장난)인지, 시사방송인지 헷갈린다.  그럼에도 나꼼수는 채 1년도 못해 공식적인 국내 모든 언론의 영향력을 앞질렀다. 

 

2011년 예스 24 서점 올해의 책 1위를 차지한 그의 <닥치고 정치>를 뒤늦게 읽었다.  베스트셀러는 좀 늦게 읽는 버릇 탓이다.  이 정권 들어 국민을 길들이는 세가지 사건이 있었다.   촛불집회와 미네르바 사건, 쌍용차 노사분규 강제 진압이다.  이 사건들은 현 정권이 시민에게 안긴 깊은 트라우마였다.   결국,  국민은 소통을 원했으나 묵묵무답 불통이었고,  인터넷과 SNS의 글쓰기는 자발적인 자기검열을 통해 순화되었고,  무소불위의 공권력 앞에 시민은 자신의 언행을 되돌아봐야 했다.  김어준은 이 현상을 정면돌파하고자 하나의 구호를 들고 나온다.  "해보자!  쫄지말자 ! 가능,하다 !"

 

맞다!  우리는 쫄고 있었다.  왜냐하면 상식이 좀체로 통하질 않았으니까.  상식없이 무식하면 용감하다.  아니 옆사람에겐 해를 끼치는 법이다.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와 김어준의 대담을 기록한 이 책은 우리가 겪고 있는 이 트라우마(정신적 상처)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4년간 이유없이 피곤하고 머리가 아프고 괜히 분노가 일고 한마디로 스트레스로 생활이 엉망이었다면, 그건 정치!  바로 정치 때문이라고 김어준은 아주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이건 무슨 소리인가? 

 

정치에 별다른 관심없는 당신도 정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현 정권들어 굵직한 사건마다에 국민은 혈압이 상승하고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증가했을 것이다.  연평도 사건, 기억나시나?  전면전 까지도 갈 수 있었다.  남북관계를 냉전시대로 회귀시킨 정치인들 때문이다.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스트레스, 참 오랜만에 찾아오시는 스트레스였다.  쌍용차 사태때, 경찰이 노조원을 토끼몰이 하듯이 진압한것 기억들 하시나?  그 이후, 다수의 노조원이 자살과 생활고로 생을 마감했다.  노조원이기에 앞서 그들은 국민이다.

 

재벌프렌들리하다고 자랑하는 정권의 아량앞에,  요즘 재벌가의 2,3세들이 순대,비빔밥,베이커리,커피숍 사업까지 진출하셔서 자영업자들 울상짓게 하는 것,  이거 다 정치 때문이다.  저축은행사태 때, 서민들 수십년간 푼돈모아 저축한 돈을 부패한 은행장들이 정치인, 고위관료의 로비를 통해 말아먹은 것, 이거 다 정치와 연관 돼 있다.  서민들 등꼴빼먹는 고물가, 이것 인위적인 고환율, 저금리 정책에 빚지고 있다. 물론 이것도 정치다.  치솟은 전세가로 살집이 없어 떠도는 서민들 누구 때문인가?  용산철거민 진압사태 현장에서 <난쏘공>의 작가 조세희는 "우리는 낙원이 아닌 아주 불행한 시대에 떨어져 있습니다"라고 현시대를 정의한다.   그러니 어찌 `닥치고 정치'를 말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좋은 정치가 결국 그거야. (중략) 인간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게 뭔지, 그 결과가 어떤 건지 알게 됐다. 그걸 이념이나 학습이 아니라 내 몸으로, 생활에서, 느끼게 됐다고.  정치를 이해하지 못하면 내 생활의 스트레스, 그 근본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됐어. 그러니까 투표는 사실 민주주의를 위한 게 아니야. 그런 건 교과서에 있는 이야기야. 투표는 내 스트레스의 근원을 줄이려는 노력이야. 그게 줄어야 내가 행복해니까."   김어준 <닥치고 정치> p.259

 

김어준은 한국 정치의 두 뿌리 우파와 좌파의 본질을 파헤친다.  일단 그는 우파가 진정 우파로 불리울 수 있는 건 자존심 때문인데 한국 우파엔 자존심이 없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전에 전시작전권 환수를 미루려는 군부를 향해, "부끄러운줄 알아야지"라고 일갈했다.  주권국가가 전시에 작전권이 없다?   자존심이 없으면 뭐가 있나?   이들 우파의 특성은 `공포'로 요약된다.  자신의 재산, 기득권을 잃어버릴까봐 공포에 질려있는 존재들, 그들이 우파란다. 그래서 그들은 재산과 기득권을 보호할 수만 있다면 친일이고 친미고 가리지 않는다.  한국 우파의 전통을 뿌리부터 살펴보면 친일에서 시작해 지금은 뼛속 친미가 진행형이니 맞는 말일까?

 

좌파는 뭐가 문제지?  공포에 대한 동물적 반응으로 자기만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게 우파라면, 좌파는 공포를 본능이 아니라 논리로 대응하는 것이다.  논리로 대처하는 가운데 평등과 분배의 문제를 생각하게 되고 그게 좌의 이념이 되고 말이다. 하지만, 좌파는 너무나 지적이고 논리적이기 때문에 대중으로부터 유리된게 문제다.  좌파는 지적 도덕적 우월성을 과시하다보니 자기 혼자 잘라 떠드는데 듣는 이들이 없단다.   우리 시대의 진보정당들이 고전을 면치 못한 이유, 거기에 있을까?   김어준의 무학의 통찰은 이제보니 깊이 있다.  일리가 있다.  그는 무척 겸손한 사람이었구나.   책을 읽어나가며 김어준의 숨겨진 내공을 느끼는 독자들이 많았을 것 같다.   나꼼수의 성공을 가져온 놀라운 기획력, 촌철살인의 멘트들, 그냥 나온게 아니었다.

 

"그래서 걔네들은 그렇게들 군대를 안 가려고 하는 거야(웃음) 그러니까 우리나라 우파는 정치적으로 우파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어. 그냥 자기만 살아남겠다고 두리번거리는 겁에 질린 동물들이지. 친일도, 친미도, 결국 자존심 없는 우가, 동물 주제에, 인간 우파인 척하는 거라고.(웃음) 그러니까 우리 정치는 우파가 많아서가 아니라 우파가 없어서 문제라고. 겨우 그런 겁먹은 동물들이 지난 몇십 년이나 뭐나 되는것처럼 우리 사회를 지배해왔던 거야. 아, 쪽팔려, 씨바(웃음) "  김어준 <닥치고 정치>   p.43

 

김어준은 이렇게 이 책에서 한국 정치를 총평하더니 이제 BBK 문제를 해설한다.  그것도 아주 쉽게.  `BBK 실소유주 협찬'으로 진행되고 있는 나꼼수 방송에서 다룰 내용들을 먼저 이 책에서 무척 쉽게 요약해 놨다.  BBK  원조 스나이퍼 정봉주 의원의 책 <달려라 정봉주>에 나온 내용보다 더 쉽다.  BBK의 본질에 다가서려는 독자들에게 유익한 참고서가 될 만 하다.   물론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다.  그의 무학의 통찰력 덕분이다.  또, 대표 재벌 삼성의 이건희가 어떻게 아들 이재용에게 세금을 안 물리고 재산을 넘겨주었는지, 에버랜드 주식 변칙 상속 문제 해설은 경제판 BBK로 일종의 부록이다.  김어준의 논평을 요약하자면 한국 정치는 오랜시간 쪽팔렸고 한국 재벌은 자본주의도 아니다.

 

이후, 진행되는 논의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놨다.  과연, 2012년 대선에서 누굴 뽑아야 하는지?    책의 절반은 이걸 김어준식 어투와 유머와 통찰로 밝힌다.  생활의 스트레스가 결국 정치에서 왔는데 그 정치란게 결국 인물에 달렸다.  정치는 사람이 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투표도 사람을 보고 해야 한다.   또, 투표는 내 욕망을 투사하는 행위다.   내가 올바로 살아온 시민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못났기에 더 잘난 사람을 뽑는게 투표다. 내 욕망이 천박하다고 천박한 인물에게 투표를 하면, 결국 정치가 천박하게 된다.  우리는 이미 지겹게 경험하지 않았나?    그래서 김어준의 인물 탐구는 눈여겨볼만 하다.  

 

물론 그의 인물에 대한 견해에 모두 수긍할 수 있는건 아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까.   하지만, 놀랍게도 내가 평소 좋게 생각했던 인물에 대한 싱크로율(정확도)이 상당히 높았다.  그건 상식에 바탕해 사고하기 때문이 아닐까?   범죄자, 전과자, 꼼수형 인물, 살아온 과거가 의심스러운 사람, 과거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은 일단 의심해 봐야 한다, 고 김어준은 말한다.  대선에서 누구를 뽑아야 하는가? 라는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다.  그가 살아온 시간, 세월을 살펴보면 안다.  역사는 거짓말을 안한다.  이만큼 쉬운게 어딨나?   지금 뭐라고 옳은소리를 하는지가 아니라, 지금껏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살펴보면 그냥 된다. 

 

"정말 통일을 원하는 사람이 우리 현실 정치인 중에 과연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어.  정말 통일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과제로 믿고 실행에 옮긴 첫 번째 정치인은 김대중이었어.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를 국제적 시각에서 조망하고 통일이 가져올 정치적 효과 역시 분석했을 뿐 아니라 실제 통일을 이루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단계를 밟아가야 하는지 고심했으며 그걸 실제로 추진하가기까지 한 첫 번째 정치인이지. 한국 현대사에서도 첫 번째로 평가되어야 할 위대한 정치인이지. 자연인으론 노무현을 더 좋아하지만 정치인으론 김대중이 첫째간다고 난 생각해"   김어준 <닥치고 정치>   p.202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 참 다행이란 생각이다.  사람들은 먹고 살기 바빠 정치에 무관심한 걸 당연히 여겨왔다.   정치를 대화의 소재로 쓰면 싸움나기 딱 제격이니까 말 꺼내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김어준의 말처럼 이제 곰곰히 생활 스트레스의 근원이 어디인지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왔다.   놀랍게도 당신의 삶은 정치와 한몸이었다.  정치가 어지러울수록 당신의 삶도 불행해진다.  아무리 작은 소집단이라도 그 내부에는 반드시 `정치'와 `정치행위'가 내재하기 마련이다.  사람들의 이견과 문제를 조율하고 타협하고 결정하는 것은 결국 정치다.  문제를 다루는 사람들이 정의롭지 못할 때 조직속에서 나는 소외되고 갈등은 깊어가며 스트레스 수치는 올라간다.  이걸 바로 잡는 일이 대표를 제대로 뽑는 일, 곧 투표다.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는 놀랍도록 재밌는 책이다.  정치가 이렇게 재밌어? 되묻게 된다.  무학(無學)의 통찰이란 겸손의 옷을 입었지만, 한국 정치와 경제, 재벌과 정치인, 시국의 엄중함을 쉬운 언어와 유머섞인 어투로 해설한다.  넓게 보아 정치평론이지만 대중에게 흡수율이 매우 높다.  한마디로 무게는 안잡고 전문용어 안쓰고 쉽게 이야기 하지만, 무척 공감이 간다.  나꼼수처럼 !   그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돈을 벌기 위해서겠지.  둘째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파?  그동안 쫄며 사느라 국민들 엄청 피곤했다.  BUT, 돈보다는 건강이 최고인 법 !   그러니 주문처럼 다시 읊어본다.  " 해보자, 쫄지 말자, 가능, 하다 ! "

 

 

 

 

 

 

 

201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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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드™ 2012-01-29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꼬끼오. 닥~ 치고 정치.

저도 이 책을 구입하였고, 방송과 함께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국민들에게 정치의식을 불러일으켜준 현 정권과 그리고 그것을 쉽게 이해하도록 도와준 나꼼수. 2012년 선거가 어떻게 진행될 지 참 기대를 하게 만듭니다.

개츠비 2012-02-01 13:17   좋아요 0 | URL
저도 무척 기대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