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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평점 :
김어준은 우리의 정치와 사회를 특유의 풍자와 유머로 감시해 온 언론인이다. 요즘 그가 진행하는 나꼼수의 행태나 종신총수를 맡고 있는 10년 전통의 딴지일보의 특성상 이 분을 기존의 보수적 관점에서 언론인으로 불러야 할지 고개가 갸웃하긴 하다. 그간 김어준이 기획한 모든 미디어의 형식은 파격적이었다. 딴지일보는 개그인지 기사인지 애매했고, 팟캐스트 나꼼수 방송은 정체가 수다(말장난)인지, 시사방송인지 헷갈린다. 그럼에도 나꼼수는 채 1년도 못해 공식적인 국내 모든 언론의 영향력을 앞질렀다.
2011년 예스 24 서점 올해의 책 1위를 차지한 그의 <닥치고 정치>를 뒤늦게 읽었다. 베스트셀러는 좀 늦게 읽는 버릇 탓이다. 이 정권 들어 국민을 길들이는 세가지 사건이 있었다. 촛불집회와 미네르바 사건, 쌍용차 노사분규 강제 진압이다. 이 사건들은 현 정권이 시민에게 안긴 깊은 트라우마였다. 결국, 국민은 소통을 원했으나 묵묵무답 불통이었고, 인터넷과 SNS의 글쓰기는 자발적인 자기검열을 통해 순화되었고, 무소불위의 공권력 앞에 시민은 자신의 언행을 되돌아봐야 했다. 김어준은 이 현상을 정면돌파하고자 하나의 구호를 들고 나온다. "해보자! 쫄지말자 ! 가능,하다 !"
맞다! 우리는 쫄고 있었다. 왜냐하면 상식이 좀체로 통하질 않았으니까. 상식없이 무식하면 용감하다. 아니 옆사람에겐 해를 끼치는 법이다.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와 김어준의 대담을 기록한 이 책은 우리가 겪고 있는 이 트라우마(정신적 상처)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4년간 이유없이 피곤하고 머리가 아프고 괜히 분노가 일고 한마디로 스트레스로 생활이 엉망이었다면, 그건 정치! 바로 정치 때문이라고 김어준은 아주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이건 무슨 소리인가?
정치에 별다른 관심없는 당신도 정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현 정권들어 굵직한 사건마다에 국민은 혈압이 상승하고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증가했을 것이다. 연평도 사건, 기억나시나? 전면전 까지도 갈 수 있었다. 남북관계를 냉전시대로 회귀시킨 정치인들 때문이다.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스트레스, 참 오랜만에 찾아오시는 스트레스였다. 쌍용차 사태때, 경찰이 노조원을 토끼몰이 하듯이 진압한것 기억들 하시나? 그 이후, 다수의 노조원이 자살과 생활고로 생을 마감했다. 노조원이기에 앞서 그들은 국민이다.
재벌프렌들리하다고 자랑하는 정권의 아량앞에, 요즘 재벌가의 2,3세들이 순대,비빔밥,베이커리,커피숍 사업까지 진출하셔서 자영업자들 울상짓게 하는 것, 이거 다 정치 때문이다. 저축은행사태 때, 서민들 수십년간 푼돈모아 저축한 돈을 부패한 은행장들이 정치인, 고위관료의 로비를 통해 말아먹은 것, 이거 다 정치와 연관 돼 있다. 서민들 등꼴빼먹는 고물가, 이것 인위적인 고환율, 저금리 정책에 빚지고 있다. 물론 이것도 정치다. 치솟은 전세가로 살집이 없어 떠도는 서민들 누구 때문인가? 용산철거민 진압사태 현장에서 <난쏘공>의 작가 조세희는 "우리는 낙원이 아닌 아주 불행한 시대에 떨어져 있습니다"라고 현시대를 정의한다. 그러니 어찌 `닥치고 정치'를 말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좋은 정치가 결국 그거야. (중략) 인간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게 뭔지, 그 결과가 어떤 건지 알게 됐다. 그걸 이념이나 학습이 아니라 내 몸으로, 생활에서, 느끼게 됐다고. 정치를 이해하지 못하면 내 생활의 스트레스, 그 근본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됐어. 그러니까 투표는 사실 민주주의를 위한 게 아니야. 그런 건 교과서에 있는 이야기야. 투표는 내 스트레스의 근원을 줄이려는 노력이야. 그게 줄어야 내가 행복해니까." 김어준 <닥치고 정치> p.259
김어준은 한국 정치의 두 뿌리 우파와 좌파의 본질을 파헤친다. 일단 그는 우파가 진정 우파로 불리울 수 있는 건 자존심 때문인데 한국 우파엔 자존심이 없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전에 전시작전권 환수를 미루려는 군부를 향해, "부끄러운줄 알아야지"라고 일갈했다. 주권국가가 전시에 작전권이 없다? 자존심이 없으면 뭐가 있나? 이들 우파의 특성은 `공포'로 요약된다. 자신의 재산, 기득권을 잃어버릴까봐 공포에 질려있는 존재들, 그들이 우파란다. 그래서 그들은 재산과 기득권을 보호할 수만 있다면 친일이고 친미고 가리지 않는다. 한국 우파의 전통을 뿌리부터 살펴보면 친일에서 시작해 지금은 뼛속 친미가 진행형이니 맞는 말일까?
좌파는 뭐가 문제지? 공포에 대한 동물적 반응으로 자기만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게 우파라면, 좌파는 공포를 본능이 아니라 논리로 대응하는 것이다. 논리로 대처하는 가운데 평등과 분배의 문제를 생각하게 되고 그게 좌의 이념이 되고 말이다. 하지만, 좌파는 너무나 지적이고 논리적이기 때문에 대중으로부터 유리된게 문제다. 좌파는 지적 도덕적 우월성을 과시하다보니 자기 혼자 잘라 떠드는데 듣는 이들이 없단다. 우리 시대의 진보정당들이 고전을 면치 못한 이유, 거기에 있을까? 김어준의 무학의 통찰은 이제보니 깊이 있다. 일리가 있다. 그는 무척 겸손한 사람이었구나. 책을 읽어나가며 김어준의 숨겨진 내공을 느끼는 독자들이 많았을 것 같다. 나꼼수의 성공을 가져온 놀라운 기획력, 촌철살인의 멘트들, 그냥 나온게 아니었다.
"그래서 걔네들은 그렇게들 군대를 안 가려고 하는 거야(웃음) 그러니까 우리나라 우파는 정치적으로 우파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어. 그냥 자기만 살아남겠다고 두리번거리는 겁에 질린 동물들이지. 친일도, 친미도, 결국 자존심 없는 우가, 동물 주제에, 인간 우파인 척하는 거라고.(웃음) 그러니까 우리 정치는 우파가 많아서가 아니라 우파가 없어서 문제라고. 겨우 그런 겁먹은 동물들이 지난 몇십 년이나 뭐나 되는것처럼 우리 사회를 지배해왔던 거야. 아, 쪽팔려, 씨바(웃음) " 김어준 <닥치고 정치> p.43
김어준은 이렇게 이 책에서 한국 정치를 총평하더니 이제 BBK 문제를 해설한다. 그것도 아주 쉽게. `BBK 실소유주 협찬'으로 진행되고 있는 나꼼수 방송에서 다룰 내용들을 먼저 이 책에서 무척 쉽게 요약해 놨다. BBK 원조 스나이퍼 정봉주 의원의 책 <달려라 정봉주>에 나온 내용보다 더 쉽다. BBK의 본질에 다가서려는 독자들에게 유익한 참고서가 될 만 하다. 물론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다. 그의 무학의 통찰력 덕분이다. 또, 대표 재벌 삼성의 이건희가 어떻게 아들 이재용에게 세금을 안 물리고 재산을 넘겨주었는지, 에버랜드 주식 변칙 상속 문제 해설은 경제판 BBK로 일종의 부록이다. 김어준의 논평을 요약하자면 한국 정치는 오랜시간 쪽팔렸고 한국 재벌은 자본주의도 아니다.
이후, 진행되는 논의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놨다. 과연, 2012년 대선에서 누굴 뽑아야 하는지? 책의 절반은 이걸 김어준식 어투와 유머와 통찰로 밝힌다. 생활의 스트레스가 결국 정치에서 왔는데 그 정치란게 결국 인물에 달렸다. 정치는 사람이 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투표도 사람을 보고 해야 한다. 또, 투표는 내 욕망을 투사하는 행위다. 내가 올바로 살아온 시민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못났기에 더 잘난 사람을 뽑는게 투표다. 내 욕망이 천박하다고 천박한 인물에게 투표를 하면, 결국 정치가 천박하게 된다. 우리는 이미 지겹게 경험하지 않았나? 그래서 김어준의 인물 탐구는 눈여겨볼만 하다.
물론 그의 인물에 대한 견해에 모두 수긍할 수 있는건 아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까. 하지만, 놀랍게도 내가 평소 좋게 생각했던 인물에 대한 싱크로율(정확도)이 상당히 높았다. 그건 상식에 바탕해 사고하기 때문이 아닐까? 범죄자, 전과자, 꼼수형 인물, 살아온 과거가 의심스러운 사람, 과거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은 일단 의심해 봐야 한다, 고 김어준은 말한다. 대선에서 누구를 뽑아야 하는가? 라는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다. 그가 살아온 시간, 세월을 살펴보면 안다. 역사는 거짓말을 안한다. 이만큼 쉬운게 어딨나? 지금 뭐라고 옳은소리를 하는지가 아니라, 지금껏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살펴보면 그냥 된다.
"정말 통일을 원하는 사람이 우리 현실 정치인 중에 과연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어. 정말 통일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과제로 믿고 실행에 옮긴 첫 번째 정치인은 김대중이었어.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를 국제적 시각에서 조망하고 통일이 가져올 정치적 효과 역시 분석했을 뿐 아니라 실제 통일을 이루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단계를 밟아가야 하는지 고심했으며 그걸 실제로 추진하가기까지 한 첫 번째 정치인이지. 한국 현대사에서도 첫 번째로 평가되어야 할 위대한 정치인이지. 자연인으론 노무현을 더 좋아하지만 정치인으론 김대중이 첫째간다고 난 생각해" 김어준 <닥치고 정치> p.202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 참 다행이란 생각이다. 사람들은 먹고 살기 바빠 정치에 무관심한 걸 당연히 여겨왔다. 정치를 대화의 소재로 쓰면 싸움나기 딱 제격이니까 말 꺼내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김어준의 말처럼 이제 곰곰히 생활 스트레스의 근원이 어디인지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왔다. 놀랍게도 당신의 삶은 정치와 한몸이었다. 정치가 어지러울수록 당신의 삶도 불행해진다. 아무리 작은 소집단이라도 그 내부에는 반드시 `정치'와 `정치행위'가 내재하기 마련이다. 사람들의 이견과 문제를 조율하고 타협하고 결정하는 것은 결국 정치다. 문제를 다루는 사람들이 정의롭지 못할 때 조직속에서 나는 소외되고 갈등은 깊어가며 스트레스 수치는 올라간다. 이걸 바로 잡는 일이 대표를 제대로 뽑는 일, 곧 투표다.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는 놀랍도록 재밌는 책이다. 정치가 이렇게 재밌어? 되묻게 된다. 무학(無學)의 통찰이란 겸손의 옷을 입었지만, 한국 정치와 경제, 재벌과 정치인, 시국의 엄중함을 쉬운 언어와 유머섞인 어투로 해설한다. 넓게 보아 정치평론이지만 대중에게 흡수율이 매우 높다. 한마디로 무게는 안잡고 전문용어 안쓰고 쉽게 이야기 하지만, 무척 공감이 간다. 나꼼수처럼 ! 그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돈을 벌기 위해서겠지. 둘째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파? 그동안 쫄며 사느라 국민들 엄청 피곤했다. BUT, 돈보다는 건강이 최고인 법 ! 그러니 주문처럼 다시 읊어본다. " 해보자, 쫄지 말자, 가능, 하다 ! "

2012.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