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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인규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기적(Miracle)은 멀리 있지 않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기적이다. 그래서 행복해지고 싶거든 카르페디엠(Carpe diem), 현재를 잡아라고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선언했다. 한데, 그 기적을 풀이하려는 시도들이 있다. 철학이 그런 학문이다. 철학은 세계와 인간의 정체와 질서를 논리적으로 해체하려는 학문이다. 철학자의 설명은 언제나 명료하다. 나름의 논증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세계를 하나의 철학으로 풀이하려는 노력은 결국 실패한다. 왜냐하면, 철학의 효용은 동시에 그 한계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으로서 문학은 철학이 당면한 그 한계로부터 출발한다. 직접적으로 세계를 설명하려고 시도하지 않음으로써 철학이 실패한 그 방식을 우회한다. 문학이 도달하는 세계에는 오류가 없다. 무엇을 논증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문학은 언제나 세계와 인간을 가장 정확히 다룬다. 철학은 질문에 분명한 답을 주려하지만, 문학은 구태어 답을 주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 작품속에 그려진 곤궁한 인간, 세계가 이미 나의 존재를 변호하고 충분히 설명하고 있어서다.
1954년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긴 중편 <노인과 바다>가 그런 작품이다. 남미 멕시코 만, 쿠바 연안에 살고 있는 산티아고라는 노인은 작은 돛단배로 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가는 어부다. 고기를 잡는 일은 놀이가 아니라 노인에게 생계 수단이다. 가족도 없고 친척도 없다. 함께 고기잡이를 하던 어린 소년은 40일째 허탕만 치던 노인의 곁을 떠났다. 그의 부모는 `살라오' 즉 운수가 완전히 바닥한 노인네라며 소년에게 다른 배를 타게 했다. 그 이후, 소년이 탄 배는 일주일 동안 큰 고기를 세마리나 낚는다.
소설은 운수가 바닥난 늙은 어부가 85일째 큰 고기를 잡게 되는 운수대통의 하루를 묘사한다. 하지만 행운은 이틀째 불운과 절망으로 되돌아 온다.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그 큰 물고기는 뼈만 남을 정도로 상어떼에게 뜯어먹혔기 때문이다. 이 반전에는 특별한 재미와 놀라운 스릴이 없다. 노인의 불운이 너무나 평범하고 흔하단 게 이 소설의 `특별함'이다.
망망대해에 작은 돛단배를 띄워두고, 배보다 더 큰 물고기를 잡는다. 노인은 이야기 상대도 없어 줄곧 혼잣말을 되뇌인다. 새와 잡은 고기와 악당같은 상어떼와 혹은 하나님과 자기자신에게 말을 건넨다. 날아든 바다새를 보곤 `바다에 살기엔 너무 가냘프게 창조되었어'(p.30)라 하더니 포획한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며 '물고기야, 아직도 지치지 않았다면 너도 아주 이상한 놈임에 틀림없다'(p.70)고 핀잔을 준다. 하나님에겐 고기를 집까지 무사히 가져갈 수 있기를 기도하며, 스스로에겐 '사람은 박살이 나서 죽을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를 당하진 않아'(p.108)라고 용기를 북돋는다.
노인은 소설속에서 뭇 독자의 연민을 불러오는 주인공이다. 사람이 아무리 운이 없어도 84일째, 허탕을 치기는 힘들다. 하지만, 85일째 잡은 고기는 그를 더욱 불운한 사람으로 내몬다. 고기와 사투를 벌이고 그는 결국 승리한다. 손과 어깨에는 팽팽한 낚시줄 덕분에 피멍이 들었고, 이틀째 그는 상하기 직전인 물고기를 먹으며 허기를 채웠다. 고기 피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상어떼의 공격도 잘 막았다. 하지만, 상어떼는 물고기를 결국 다 먹어버리고 노인은 뼈만 앙상한 고기를 갖고 집으로 돌아온다.
"노인은 커피를 받아들고 마셨다.
`난 놈들에게 졌단다, 마놀린,' 노인은 말했다. `놈들한테 정말 지고 말았어.'
`그놈한테는 지지 않았잖아요. 잡아온 물고기한테는 말이에요.'
`그래. 그건 정말 그렇지. 내가 진 건 그 뒤야' "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p.129
노인의 삶은 소유의 관점에선 실패한 인생이다. 그는 물고기를 낚지 못함으로써 부자가 될 기회를 놓쳤다. 사람들은 노인이 궁지에 내몰린 사이에 노인이 잡아야할 고기까지 낚는다. 뭇 사람의 가난은 그렇게 탄생하는 것일게다. 세상은 기회를 갖지 못하고, 운이 나쁜 노인과 같은 사람들을 거들떠 보지 않는다. 소년의 부모가 노인에게서 자식을 떼어놓은 이유다. 하지만, 소년은 노인을 떠나지 않는다. 그에게서 더 많이 배울게 있다고 장담하기까지 한다. 뜨거운 커피를 사놓고 집으로 돌아와 깊은 잠에 빠져든 노인이 깨어날때까지 노인의 곁을 지킨다. 어부에게 고기를 낚는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소년은 알고 있다. 그건 인생을 헤쳐나가는 어떤 지혜일까?
노인은 욕심이 없다. 세상의 이목은 뒤로하고 메이져리그 경기 결과를 소년과 화제로 삼아 이야기를 나눈다. 때론 아프리카의 사자꿈을 꾸며, 광활한 대륙에서 사자처럼 포효하는 삶을 꿈꾼다. 우리의 삶의 목적이 큰 물고기를 낚는 것일 순 없다. 그건 생의 수단일 뿐이니까. 노인이 고기잡이에 실패하고도 전혀 흔들림 없이 잠을 청할 수 있는 이유다. 노인은 인간과 세계를 전체로 바라볼 수 있는 식견을 갖고 있다. 하여, 오늘의 작은 패배를 인생의 실패로 확대해석 하지 않는다. 그에겐 듬직한 생의 동반자도 있다. 광막한 바다로 자신을 이끌어줄 한 척의 돛단배와 자신을 믿고 따라주는 착한 소년이 곁을 지켜준다. 부자가 아니어도 인생은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노인과 바다>는 해밍웨이의 자전적인 인생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네번의 결혼이 전부 행복하진 못했을 것이고, 1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을 통해 좋은 작품들을 건졌지만 몸에 큰 부상을 당하고 그 후유증에 시달렸다. 주인공 산티아고 노인처럼 해밍웨이도 인생이란 84일 동안 단 한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하는 불운이 계속될 수 있다는걸 알고 있다. 85일째 잡은 거대한 고기처럼 행운이 느닷없이 찾아와 허망하게 사라질 수 있는게 인생 아니겠는가고 되묻고 있는듯 하다. 이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지만, 만년의 지병과 우울증은 그를 자살로 내몰았다. 만년 작가의 인생은 노인과 닮았다. 하지만, 작품속 노인의 독백처럼 그는 박살이 나 죽었을지언정 패배하진 않았다. 그는 이 불운한 삶을 통해 쓸만한 작품들을 건졌고 오늘도 새로운 독자들을 만나고 있으니까.
인간의 죽음은 예정된 필연이다. 죽음 자체가 패배가 아닌 이유다. 삶은 죽음으로 종결되겠지만, 죽음이 삶을 규정하진 못한다. 그래서, 삶이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며 소유가 아니라 존재일 수밖에 없다. 소설속 노인은 오늘의 실패를 깨끗이 잊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지만, 내일 아침엔 낚시 도구를 수리하고 만반의 준비를 마친채 다시 거대한 바다에 자신의 돛단배를 띄울 것이다. 고기를 한 마리도 낚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는 힘차게 노를 저어 바다로 향할 것이다.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의 생명이자 오늘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노인은 카르페디엠에 충실함으로써 행복에 이른다. 노인과 같이 평범하고 누추하고 가난한 일상이 숭고한 의무이자 거룩한 의식으로 치환될 수 있음을 이 작품은 보여줬다. 그 어떤 철학보다도 설득력 있게 우리 삶을 해명한다.

201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