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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에게 세상을 묻다 - 모르면 당하는 정치적인 모든 것
조지 버나드 쇼 지음, 김일기 외 옮김 / TENDEDERO(뗀데데로) / 2012년 12월
평점 :
조지 버나드 쇼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로선 19세기와 20세기를 살았던 이 아일랜드 태생의 영국 극작가는 익숙지 않다. 그렇지만, 엉뚱하게도 이 작가는 자신의 작품보다 묘비명으로 더 유명해졌다. "우물쭈물 하다 내 이럴줄 알았지" 이 단출한 문장만으로도 우린 쇼의 번득이는 유머와 철학을 맛보게 된다. 1856년생으로 94세까지 장수하면서, 그는 화려한 경력을 쌓는다. 그는 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의 공동 설립자였고, H.G 웰스, 버트란트 러셀과 온건 사회주의자들의 모임인 페이비언협회를 창립해 일평생 활동했다.
극작가로서 그의 명성은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이어진다. 1964년 개봉한 오드리 헵번 주연의 <마이 페어 레이디>의 원작 희곡 <피그말리온>을 지은 이가 그다. 평생 60여 편에 이른 희곡을 발표하며, 세익스피어에 비견되는 극작가로 이름이 높았다. 그는 음악과 미술 스포츠 등에도 관심이 많았다. 피아노 연주와 권투, 서핑 등 못하는게 없는 팔방 미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몰락한 귀족집안 출신으로 어린 시절 가난과 싸워야 했다. 15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아일랜드 국립박물관과 런던 대영박물관의 도서관에서 독학하며, 훗날 작가로 성장할 토대를 닦는다. 일평생 채식주의자였고 해진 옷을 입을 정도로 극도의 검소한 삶을 살았다. 남긴 작품으로서가 아닌 그의 삶을 통해서도 배울점이 있다.
만년에 이르러서까지 그는 열정적으로 창작활동을 했다. 88세의 고령에 집필한 작품 <쇼에게 세상을 묻다>의 원제는 "Everybody's Political What's What? 모르면 당하는 정치적인 모든 것" 이다. 일평생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비평 작업을 해왔던 작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사회와 정치' 비평의 정수를 남겨 놓았다. 그의 순수한 의도는 7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이 책 속 `마치는 글'속에 담겨 있다.
"이 책은 `어린이를 위한 정치 안내서'쯤 된다. 나의 정치적 경험으로 미루어보건대, 요즘에는 누구나 정치에 관한 한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굴지만 사실 대부분은 아주 기초적인 것조차 알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중략) 그들은 정치를 삶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정치가 사회생활의 과학이 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일 뿐이다." 645쪽, 조지 버나드쇼 <쇼에게 세상을 묻다>
넓게 보아 그가 논한 것은 정치 사회 현상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그는 세상의 거의 모든 일에 관여하는 꼼꼼함을 보여준다. 정치와 사회를 비롯한 교육과 종교, 전쟁과 군인, 지방자치와 의료, 총파업과 사형제도 등을 논했다. 주제들이 논하기에 쉽지 않고, 독자들이 일독하기에 만만한 것도 아니다. 지난 2세기에 걸친 시대상은 아무래도 현재와 동떨어지기 마련이고, 유럽의 역사와 문화에 바탕을 둔 서술은 지루하기도 해서 상당한 인내를 요한다. 하지만, 쇼의 문장은 유머와 위트가 넘치고 풍자와 해학이 살아 숨쉰다. 그의 문장은 그 유명한 묘비명이 괜히 나온게 아님을 보여주는 듯 하다.
그가 이 책에서 논하고자 한 가장 중요한 주제는 자본주의 사회가 계급을 형성하고 분화하면서 맞게 되는 파국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루소가 <사회계약론>을 통해 모든 모든 인간은 자유로울 권리를 갖고 태어난다고 주장할 걸 갖고, 쇼는 `멀쩡한 사람 입에서 나온 최악의 거짓말'이라며 특유의 과장된 논법으로 성토한다. 왜 그런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부모의 보호아래 무기력한 존재로 태어나며 커서는 노동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다. 그런데, 정부가 노동자에게 합당한 일자리를 찾아주지 못할 때 인간은 자유가 아닌 `빈민과 노예'로 전락한다. 쇼가 루소의 자유권의 개념을 논박한 이유이자, 온건 사회주의자로서 정치적 정체성을 획득한 사유다.
쇼는 `모두가 정치적으로 박식하다는 가정 하에서 누구나 투표권을 갖는' 보통 선거권에 우려를 표한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성취라 할 수 있는 보통 선거권을 쇼는 왜 부정했을까? 대중의 무지와 편견, 판단력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쇼는 모든 프롤레타리아가 생존경쟁과 장시간 노동에 치여 정치나 종교에 신경쓸 여유가 없고, 부유층은 향락을 즐기느라 논쟁을 할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역설을 고발한다. 즉, 여가의 결핍과 과잉이 사람들의 머리를 굳게 하고 있다고 질타한다. 그 비근한 예를 쇼는 다음과 같이 든다.
"농민들 딴에는 잘 해보려고 그러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모든 사회적 가치와 명예를 옹호한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실제 투표장에서는 게으름, 낭비, 사치, 비굴함, 가난, 노동착취 등 이기적인 자본이 만들어낸 모든 악덕에 표를 보탠다" 12쪽
이러한 문장들을 만날때마다 독자들은 현대사회의 익숙한 정치,사회 풍경을 보게 된다. 오늘날 자신의 계급에 상반되는 투표 행위는 일상적이다. 예술에 대한 인간의 관심은 여가를 향략으로 소비하고 인생을 낭비하는 악습을 막아준다. 그런데 왜 대중은 예술과 미학으로부터 멀어지게 됐는가? 이 책은 이렇게 답한다. "특정 계급이 토지를 전용하면서 임금노동자 계급이 생겨났고, 이들이 먹고 살기 급급해" 문화와 여가는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으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유권자들이 투표소에 가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밥벌이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전혀 이상하거나 안타깝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어떻게보면, 하루 밥벌이보다 자신의 사회정치적 미래를 결정할 하루의 투표가 더 중요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쇼가 700페이지에 가깝게 논하는 그 다양한 주제를 모두 소개하는 것은 독자로서 벅찬일이다. 쇼가 살았던 시대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정치,사회적으로 많은게 바뀌었을 것 같지만, 놀랍게도 전혀 바뀐게 없다. 1,2차 세계 대전을 모두 겪은 쇼는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 이성의 황폐함에 치를 떨었다. 더불어 `의무복무제도를 문명화된 인류가 알고 있는 가장 완벽한 노예제'라고 비판한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정치,종교,문화,인종을 이유로 들어 전쟁이 계속되고 살육이 멈추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투표일이 다가오면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국민을 위한 정책들을 내놓지만, 일단 당선되고 나면 말을 바꾸고 공약을 수정한다. 예나 지금이나 인류는 어리석고 정치인은 간악하다.
버나드 쇼는 역사를 학교에서 배운게 아니라, 고전 문학 속에서 배웠고 15세에 학교를 자발적으로 나와, 도서관에서 살며 당대의 지성으로 우뚝섰다. 우리는 쇼를 통해 꾸준한 독서가 교양인과 위대한 지성의 산실임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의 논의를 달리 요약하면, 대중이 어떻게 교양시민으로 성장할 것인가? 일 게다. 교양시민이 왜 필요한가? 올바른 정치와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다. 과중한 노동과 가벼운 유희에 빠져든 대중은 독서할 시간과 멀어지니 정치인들만 좋을 일이다. 정치인이 가장 좋아하는 유권자는 정치에 무관심하고, 사회 정학에 무지한 사람들이다. 정의와 민의가 왜곡된 대표가 정치를 맡게 될 때, 사회는 표류하고 정치는 격랑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 밑바탕엔 무지하고 게으른 유권자가 버티고 있다.
정치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일까? 쇼는 거창한 것을 말하지 않는다. 세계 평화? 유토피아? 아니다. 모든 인간이 적당히 일하고, 적당한 여가를 갖게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여가'야 말로 인간이 이 지상에서 실현시켜야 할 유토피아의 일부라고 쇼는 말한다. 그 여가를 통해, 지성을 계발하고, 미적 취향을 즐기며, 시와 음악과 그림과 책을 감상하며 건강한 문화적 삶을 소비할 줄 아는 시민을 양산해 내야 인류에게 미래가 있다. `폭음과 폭식, 성적탐익'외에는 어떠한 즐거움도 모르는 성인들이 정치인들을 제대로 감시하고, 올바른 정치인을 대표로 뽑을 수 있을까?
"영웅 정치에는 희망이 없다. 우상화된 개인이 통치하는 나라에서는 성숙한 시민사회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현재로서 가장 안전한 정치체제는 자격이 검증된 시민들로 의회를 구성하고 그들이 엄격한 감시와 교체, 해임에 주기적으로 노출되게 하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도 정치는 그렇게 자격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고, 정치인의 자격을 검증할 때 살펴야 할 항목들을 제안하기 위해서다." 603쪽
빈부격차와 양극화, 자본가들의 횡포와 전쟁의 공포, 정치인들의 부정과 부패가 만연한 시절을 버나드 쇼는 살아왔다. 자신이 무덤속에 잠들기 전, 버나드 쇼는 한 시대의 지성으로서 깊은 책임과 의무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 책의 절절한 울림은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 유효하다. 여전히 왜곡된 사회정의가 정치를 병들게 하고, 다시 사회 구성원들을 위기로 내모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세계 곳곳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빈곤의 현상들이 사라지지 않은 채, 인류를 괴롭히는 이 때 인생을 걸고 습득한 정치,사회적 지혜를 독자들에게 전수하려 열변을토해내는 쇼의 노력이 눈물겹다.
2013년 3월 23일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