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깨닫게 되는 것들
리처드 J. 라이더 & 데이비드 A. 샤피로 지음, 김정홍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논어>를 읽다보면 공자의 솔직함이 묻어나는 곳이 많다.  그 가운데 우리를 긴장하게 하는 한 구절이 있다.   자로(子路)라는 노나라 사람이 공자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감문사(敢問死)?"  즉, 도대체 죽음이 무엇입니까?  라고 하자,  이에 공자가 답한다.  "미지생 언지사(未知生 焉知死), 아직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오늘날 그를 성인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 답변이 시원찮을 것이다.  대석학이자 세상 이치에 통달한 성인이 삶과 죽음에 대해 아는게 없다고 고백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답속엔 공자의 지혜가 담겨 있다.  삶이 무엇이며, 죽음이 무엇인지 알고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은 인생을 모른 채 태어났고, 그래서 알기 위해 노력하다, 여전히 모르채 죽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모두를 알고 있다면 그는 사람이 아니라 신이겠다.   이 구절은 <논어>의 첫 구절과 연결된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즉, 공자는 삶과 죽음을 알 수 없으니 `배움'을 통해 인생을 알아가라, 고 말하는 있는게다.

 

리처드 J. 라이더와 데이비드 A.샤피로가 공동 집필한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깨닫게 되는 것들>은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사람에게 도움을 줄 만한 책이다.  삶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인생의 길 위에서 곤궁과 암담함에 부닥칠 때,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들이 자기계발서 전문 필자들이자, 기업 컨설턴트로서 이 책을 기획, 집필했겠지만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어떤 절박함이 책 안에 담겨 있었다.  그것이 천편일률적인 자기계발서들과 차이점이며 서술방향의 진정성을 돋보이게 한다.

 

이 책의 저자는 한결같이 인생의 어느 시기가 오면 짊어진 가방 속 짐을 풀고 다시 쌓아야 할 때가 온다고 강조한다.  가방을 다시 꾸리는 것은 생을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하지만, 현재 자신의 가방속에 불필요한 그 무엇이 없는지 가방속 물건들을 하나씩 검토하고 살펴보는 일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행 중 만난 아프리카의 마사이족 족장에게 이 책의 저자는 가방속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 보여준 적이 있다.  문명의 편리함을 자랑하기 바빴던 그에게 마사이족 족장은 의아한 눈빛으로 묻는다.

 

" 이 모든 것이 당신을 행복하게 해줍니까? "

 

왜 우리는 여행을 갈 때 불필요한 그 모든 물건들을 집어넣기 바쁜 것일까?  쓸데없이 배낭을 무겁게 하고, 여행을 불편하게 만들고 마는 그 짐들은 어쩌면 우리들의 부질없은 욕망을 표상하고 있진 않는가?  이러한 의문에서 출발한 이 책은 인생의 짐을 가볍게 만드는 일에 관해 독자와 함께 고민하고, 생각해보는 기회를 준다.  때로는 제목만으로 책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누가보아도 20대를 타켓으로 기획한 책이다.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깨닫게 되는 것들>은 중년의 독자들에게 큰 호흥을 얻을 수 있는 책같다.  제목을 통해서 얻는 위안같은게 있고 그 제목을 통해 서술방향까지도 추측하게 되는데, 그 예상은 적중했다.

 

중년의 나이에 이르면 뭇 사람은 안정된 생활에 이른다.  무언가에 도전하기 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며,  질문하기 보다는 이미 정해놓은 답에 만족하며 살아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일상이 권태에 빠지고 흥미를 잃어버리는 순간이 찾아온다.  저자들이 내놓은 답은 가방속 두툼한 짐을 풀어헤치고 다시 쌓는 일이다. 불필요한 모든 짐들을 버리고, 짐을 가볍게 해서 여행길에 부담을 덜어주는 일 말이다.  하지만,  버리기 두려워하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 심사다.  이 책의 저자들은 가방을 다시 쌓는 일이 두렵지만, 그 두려움을 쫓아버릴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역시 가방을 다시 꾸리는 일임을 역설한다. 

 

`성공해서 행복한게 아니라 행복해야 성공한다'라는 이 진리를 우리는 잊고 산다.   물질적인 것을 탐하는 사람일수록 그의 내면은 그만큼 공허하기 마련이다.  부자들이 좋은 차, 좋은 옷, 좋은 음식을 탐하는 이유가 뭐겠는가?  영혼의 공허를 물질로 채워보겠다는 것 아닌가?  사람에게 물질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물질이 사람을 망하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내면의 평화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래,   이 책의 저자들은 소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을 여행과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 무욕, 동서양 고금의 지혜로부터 추출한다.

 

" 삶이란 일직선이 아니다. 탄생에서 죽음까지 이르는 길은 지그재그로 꺽여 있어 회전에 회전을 거듭해야 한다. 때문에 인생은 무수한 뒷걸음질로 파헤쳐진 W자 형태의 꺽인 길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직선으로 뻗어 있는 길만을 `성공'으로 여긴다. 그래서 얻은 것이 뭔가?  한평생 굴곡 없이 잘살다가 성공적으로 은퇴하여 깨끗하게 인생을 마감한다는 소름끼치는 건전 드라마일뿐이지 않은가?" p.103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게 가장 힘들었던 생일은 마흔 번째 생일이었던 것 같다.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상징이었다. 마흔은 청춘과 영영 이별하는 나이니까.  그 나이를 통과한다는 것은 마치 음속의 벽을 넘어서는 것과 같다."   p.145

 

"사람들은 자신의 재능과 관심사가 바로 목적을 가리키는 지표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재능과 관심사, 이것이 바로 목적을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p.145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진짜 즐거움은 그 길을 갈 때 느끼는 자유와 해방감이다. 절대로 정착해 살 일이 없을 낯선 마을로 들어설 때 얼마나 홀가분한 기분인지 느껴본 적 있는가?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나는 얼마든지 내가 되고 싶은 어떤 사람이든 될 수 있고 내가 어떤 사람이든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 p.267

 

자기계발서라지만 독자에게 어떻게 살 것을 명령하지 않는다. 저자의 고민과 방황이 함께 묻어 있는 자기계발서는 느낌이 좋다.  이 책의 전부에 만족할 수 없지만 차분하게 인생의 중년에 도달한 사람에게,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준 것만으로도 이 책은 나름의 가치가 있다. 작년 예스24 올해의 책 24권 안에 독자 투표로 선정된 바 있다.  미국 독자들을 염두해 둔 이질적인 서술태도가 마음에 거슬리고 번역투의 문체가 갑갑하지만, 곳곳에 마음에 새겨둘만한 문장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몇번 되풀이해 읽어도 역시 좋다.

 

인생에는 하나의 답과 하나의 길이 없다.  세상살이에는 정답이 없다.  그래서 공자의 지혜로운 가르침을 되돌아본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의 자세로 삶을 살고 싶다.  배움속에 기쁨과 즐거움, 지혜와 소박함이 있다.  정약용 선생님이 18년간 유배생활을 한 다산초당으로 발품을 팔아 얻은 글귀가 있다.  "독서는 사람의 일 가운데 가장 깨끗한 일이다"  그 뜻은 공자의 가르침과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학문과 배움, 즉 독서야 말로 소박하게 행복에 이르는 길이지 않는가?   인생이 권태와 공허로 가득찰 때, 무의미와 욕망이 잠식해 들어올 때,  책은, 배움은, 독서는, 우리 삶에 새로운 이정표와 활력을 전해줄 것이다.

 

 

 

 

 

 

201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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