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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ㅣ 창비시선 237
김태정 지음 / 창비 / 2004년 7월
평점 :
자본주의 세계에서 가난은 무능 아니면 동정의 대상이다. 모두들 무능과 동정이 따르는 가난을 기피한다. 검박함을 미덕으로 알아야할 수도자들까지도 고급 승용차를 타고 좋은 옷과 음식을 갈망한다. 가난은 이래저래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자본주의 세계의 기피 대상 1호다. 하여 사람들은 밥이 되는 일에 모든 시간을 쏟기 마련이다. 우리가 쳇바퀴 도는 일상을 신줏단지 모시듯 살아가는 것도 가난과 벗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영혼이 가난해도 신경쓰지 않지만, 물질적 빈곤 만큼은 벗어나려 한다. 그게 세상의 통념이다.
그런데, 이 상식에 반기를 든 사람이 있었다. 그는 김태정 시인이다. 서울 토박이였고 노동자였고 좀더 세련되게 표현하자면 민중서정시인이었다. 생전 김남주 시인이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로 있을 때 그 곁에서 간사를 맡았다. 13년 동안 시를 썼고 그 시를 모아 2004년에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이었던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창비)를 펴냈다. 그 즈음 시인은 서울 생활을 접었다. 그 후, 그는 전남 해남의 땅끝에 있는 미황사란 사찰에 둥지를 틀고 7년 남짓을 살다 암과 투병 끝에 생을 마쳤다.
시인보다 시인의 삶이 더 궁금해졌다. 그런데, 김태정 시인의 서울 살이와 마흔 여덟 생에 대한 흔적이 별로 없었다. 어떻게 검색어를 넣어도, 그 이상 정보가 없는 것은 난감한 일이었다. 이것은 궁금증을 더 증폭시키는 것인데 사실 바보같은 일이 아닌가. 시집을 첫 장부터 끝까지 읽어나가면서 내가 가까운 지름길을 놔두고 쓸데없는 짓을 했단 생각이 들었다. 시 속에서 김태정의 마음을 읽는다. 가난, 글쓰기, 외로움, 고된 노동, 돈이 되지 않는 시, 서울살이의 실망감, 상실감, 맑게 세상을 살피는 서정성, 검박함, 시에 대한 집착. 자연에서 살고 싶은 바람.
첫 페이지에 등장한 `호마이카상'이란 시는 그녀가 시로써 남긴 자서전이다. 간소한 밥상을 차릴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앉은뱅이 책상이었던 시인의 호마이카상은 시인에게 애증의 대상이다. 시인은 이제 호마이카상을 갈아치우고 싶어한다. 그것은 "네가 낡아서가 아니고 싫증 나서도 아니다. 이십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해온 네가 이젠 무서워졌기 때문"이다. 20년 동안 시인은 같은 호마이카상을 썼다. 그곳에서 그녀는 밥을 차려 먹고 시를 썼다. 그 상 앞에 앉으면 호마이카상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알 만큼 노련해졌다. 내 생각을 다 읽는 그것 앞에서 "거짓말도 할 수 없고 변함없이 궁핍한 끼니도 네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 불편해졌다. 이 검박함과 겸허함이 그녀의 삶을 받치는 주춧돌 아니었을까.
"책상도 되고 밥상도 되는 네 앞에서
시도 되지 못하고 밥도 되지 못하는
나의 현재가 문득 초라해졌다
시가 밥을 속이는지
밥이 시를 속이는지
죽도 밥도 아닌 세월이 문득 쓸쓸해졌다
이 초라함이,
이 쓸쓸함이 무서워졌다
네 앞에서 발바닥이 되어버린 자존심
아무래도 이 시시한 자존심 때문에
너를 버려야 할까보다
그래 이젠 너를 갈아치울 때가 되었나보다"
<호마이카상> 일부, 김태정
검박함은 그녀의 시에 등장하는 소품들로 형상화 된다. 2000년대에 여전히 286 컴퓨터를 애지중지하는 그는 그것을 `나의 아나키스트'로 명명한다. 이 컴퓨터는 그가 "1996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색인 교정 아르바이트 일당 4만원으로 장만한 재산목록 1호"였다. 그 이후, 그 철지난 컴퓨터는 글을 쓰는 시인의 밥줄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286 컴퓨터를 여전히 쓰는 것은 "일당 4만원의 땀 밴 추억 때문도 아니고 재활용에 대한 알뜰한 집착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감시당하고 핍박받았던 80년대 정치상황에 대한 은유로 이어진다. 그의 시가 서정과 민중성으로 결합되는 지점이 바로 이런 곳들이다.
"어떤 사상이든 어떤 정견이든 어떤 욕설이든 내뱉어도
발설하지 않는 나의 286은 외계와의 교신을 버린 아나키스트라서
흔적을 사냥하는 광견의 시대 팔공년대를 통과하면서
천기누설공포증이라 해도 좋을 풍토병을 다만 아웃사이더
였을 뿐인 나까지 덩달아 앓았으니"
<나의 아나키스트> 일부
궁핍과 가난에 대한 그녀의 태도는 긍정과 부정을 오고간다. 그것은 때로 불편함이자 때로 조력자가 되곤 한다. `궁핍이 나로 하여'라는 시에서 김태정은 "몇주째 견뎌오던 보릿고개를 박차고 일어나 다시, 밥이 되고 공과금이 되고 월세가 될 글을 쓴다"고 적고 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글발이 서지 않는 때가 있기 마련이다. 하여 시인은 " 이 핑계 저 핑계로 오래도록 원고뭉치를 묵혀 두고 말았다." 그 원고뭉치의 먼지를 털게 한 것은 다름 아닌 궁핍이었으니 그것은 나를 죽게 하면서 동시에 살리는 것 아니겠느냐고, 시인은 가난의 역설을 표현하는 것이다.
" 이것도 보릿고개 덕이라면 덕이겠다
궁핍이 나로 하여 글을 쓰게 하니
궁핍이 글로 하여 나를 살게 하니
가난은 어쩔 수 없는 나의 조력자인가 "
<궁핍이 나로 하여> 일부
시인은 2003년 문인 동료와 해남 미황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무슨 연유에서였을까. 그는 2004년 토박이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한반도의 끝자락 사찰 미황사로 거처를 옮긴다. 그의 시집에는 미황사와 해남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제법 담겨 있다. 달마산의 솟아난 바윗돌들이 바닷바람을 막아주고 사철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는 미황사에는 관광객 뿐만 아니라 문인들의 발걸음이 잦다. 한 때, 김태정 시인과 일했던 김남주 시인의 생가가 있는 곳도 해남 땅이다. 김태정 시인의 작품집 안에도 `미황사'란 제목을 단 시 한 편이 등장한다. 이 시 안에서 엿보이는 정서는 상실감과 결핍이지만, 미황사를 통해 종교와 자연에서 오는 잔잔한 치유의 에너지 또한 흘러 넘친다.
"열이레 달이 힘겹게 산기슭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사랑도 나를 가득하게 하지 못하여
고통과 결핍으로 충만하던 때
나는 쫓기듯 땅끝 작은 절에 짐을 부렸습니다
세심당 마루 끝 방문을 열면
그 안에 가득하던 나무기둥 냄새
창호지 냄새, 다 타버린 향 냄새
흙벽에 기댄 몸을 살붙이처럼
아랫배 깊숙이 그 냄새들을 보듬었습니다
열이레 달이 힘겹게 산기슭을 오르고 있었고
잃어버린 사람들을 그리며 나는
아물지 못한 상실감으로 한 시절을
오래, 휘청였습니다
……색즉시고옹공즉시새액수사앙행식역부우여시이사리자아아시이제법공상불생불며얼……불생불멸……불생불멸……불생불멸……
꽃살문 너머
반야심경이 물결처럼 출렁이면
나는 언제나 이 대목에서 목이 메곤 하였는데
그리운 이의 한 생애가
잠시 내 손등에 앉았다가 포르르,
새처럼 날아간 거라고
땅끝 바다 시린 파도가 잠시
가슴을 철썩이다 가버린 거라고……
스님의 목소리는 어쩐지
발밑에 바스라지는 낙엽처럼 자꾸만
자꾸만 서걱이는 것이었는데
차마 다 터뜨리지 못한 울음처럼
늙은 달이 온몸을 밀어올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필생의 호흡이 빛이 되어
대웅전 주춧돌이 환해지는 밤
오리, 다람쥐가 돌 속에서 합장하고
게와 물고기가 땅끝 파도를 부르는
생의 한때가 잠시 슬픈 듯 즐거웠습니다
열반을 기다리는 달이여
그의 필생의 울음이 빛이 되어
미황사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홀로 충만했습니다 "
미황사 <전문>
생전 시집 한 권을 남겨놓고 2011년 생을 마감한 김태정은 주목받지 못한 시인이었다. 글을 써서 돈을 벌고 싶은 마음도, 출세하고 싶은 욕망도 없었다. 무려 13년동안 쓴 시를 엮어 겨우 시집 한 권을 남긴 그였다. 그는 여전히 시인들 마음속에 살아 있다. 그를 아는 시인들의 전언을 통해 우린 김태정을 다시 살펴보게 된다. 지리산에 사는 이원규 시인은 생전 그를 일컬어 " 이 땅에 태어나 가장 죄를 적게 짓고 사는 시인이 있다면 달마산에 깃들여 사는 김태정 시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또 시인의 사후, 그를 알고 지냈던 시인 김사인은 `김태정'이란 시 한 편으로 그를 기렸다. 동료 시인의 눈에 비친 김태정의 마흔 여덟 짧은 생이 비로소 손에 잡힐 듯 생생히 전해온다.
" 슬픔 너머로 다시 쓸쓸한
솔직히 말해 미인은 아닌
한없이 처량한 그림자만 덮어쓰고 사람 드문 뒷길로만 피하듯 다니 던
소설공부 다니는 구로동 노동자 공아무개 젖먹이를 도맡아 봐주던
순한 서울 여자 서울 가난뱅이
나지막한 언덕 강아지풀 꽃다지의 순한 풀밭
응, 나도 남자하고 자봤어, 하더라는
그 말 너무 선선하고 환해서
자는 게 뭔지 알고나 하는 소린지 되려 못 미덥던
눈길 피하며 모자란 사람처럼 웃기나 잘하던
살림솜씨도 음식솜씨도 별로 없던
태정 태정 슬픈 태정
망초꽃처럼 말갛던 태정 "
김사인의 시 <김태정> 中
나를 미황사로 이끈 이는 김태정 시인이었다. 그것이 알길없는 시집 한 권의 마력이겠다. 그곳에서 기억속 연인을 그리듯 나는 그 시인을 생각하고 있었다. 전날 늦은 밤까지 그녀의 시를 반복해 읽었고, 시집의 말미에 담긴 동료 시인의 비평도 꼼꼼히 보았다. 그러나, 나는 김태정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없었다. 내가 그날 미황사에서 찾으려 했지만 결국 찾지 못한 것은 그가 사랑하고 회피하려 하지 않았던 `자발적 가난'과 `무욕' 의 정체 아니었을까.
누구나 가난과 마주할 수밖에 없는 시기가 있다. 청춘의 시간들이 그렇다. 십 몇 해 전, 무작정 해남 땅끝에 갔던 밤이 생각났다. 느지막이 도착한 그곳에서 난 혼자였다. 바람이 거셌고 가을의 끝물이었는지 체온을 빼앗는 공기는 차가웠다. 나를 위무하는 별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내가 지금껏 바라본 별 가운데 가장 크고 선명한 별빛이 그 하늘에 있었다. 아마 난 그 밤, 그 쓸쓸한 땅끝에서, 청춘의 궁핍과 무능을 오래도록 증오했을 것이다.
그 시간 이후로, 내 삶은 결핍에서 멀어지려 발버둥치는 삶이었다. 나는 풍부한 자아의 상상력보다 월급날의 넉넉한 통장잔고에 만족해하는 속물이 되고 말았다. 때묻었지만 때가 묻는지도 모르는 삶이 결핍 건너편에 존재하는 내 미래일 것을 그때는 몰랐을 것이다. 하여, 나는 오랜 시간 시를 읽지 않았다. 시 속에서 나는 스스로의 오염도를 확인해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완독해 낸 시집 한 권을 통해 이제 시 읽는 독자로 돌아가고자 한다. 순수하고 욕심없고 가난했지만 비굴하지 않았던 김태정의 시편들은 내 성정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다시 미황사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