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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코브 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 ㅣ 디 아더스 The Others 1
크리스토퍼 무어 지음, 공보경 옮김 / 푸른숲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황당하기 그지없는 책이다. 아예 처음부터 대놓고 황당할 거라고 턱 풀어놓고 시작하는데도 읽다보면 당황스러울만치 황당하다. 모든 캐릭터가 그러니까, 딱히 엽기적이라기도 뭣하고 기이하다 하기도 뭣하고.. 그냥 좀 어이없다. 흘러가는 사건도 어이없다. 한 마디로 대책없는 스토리!
그런데 재미있다. 줄거리의 개연성, 그런 건 저리 꺼지라고 하지! 기승전결의 완결성, 엿 먹으라지! 주제고 소재고 타당성, 그런 건 없는 게 더 좋아! 이러는 듯, 그냥 이야기는 흘러간다. 모든 것이 갑자기 불쑥불쑥 나타나고, 대부분의 일들이 어디로 튈 지 전혀 알 수 없다. 앞서 누군가 말하듯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다. 상상력의 롤러코스터란 이런 걸 말하는 것일 게다. 우연히 올라탄 그 롤러코스터에 아예 몸을 맡기면 더할 나위없이 흥분되고 짜릿하지만, 아, 이런 걸 왜 탔지? 뭐 이런 XX한 상황이 다 있어? 하다보면 억울한 마음에 눈물이 나기도 하겠다. 나 내릴래~~ 내려 줘~~ 이러다가 화가 날지도 모른다. 손해본 거 억울해 하려면 안 보는 게 낫겠지만, 이 롤러코스터, 상당히 유쾌하고 짜릿하다.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도 있구나, 그 속을 들여다보는 것도 나름 신비한 체험이니까. 세상 일에 호기심이 강한 사람이라면 끝까지 가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우리나라 책 중에서 이런 책을 읽은 기억이 거의 없어서인지- 물론 있는지 없는지가 아니라 읽은 적이 없다는 거지만- 읽는 내내 마음이 붕붕 떠있는 상태였다. 물론 하나하나를 보면 불가능한 캐릭터들이 아니다. 세상에는 이보다 훨씬 훨씬 더 이상하고 엽기적인 사람들도 많으니까. 그런데도 이 책을 읽는 내내 발이 땅에 붙지 않았던 것 같은 이 느낌은, 아마 책에 나오는 사람들 전체가 특징적인 사람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내면은 하나하나가 모두 탐구 대상이었던 거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가 조경규 작가랑 술 한 잔 하며 이 책을 읽은 이야기를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
제목을 보면 원제가 궁금해진다. 찾아보면 또 원제랑 번역책의 제목이 왕창 다르다. 번역책의 제목은 스토리가 흘러가는 방향을 이미 강하게 암시하지만, 원작자가 붙인 게 아니라는 걸 아는 순간 황당하다. 자의적인 해석이 아닌가, '모두 괜찮은 결말'이라니. 책을 끝까지 봐도 딱히 그런 데 촛점을 맞춘 것도 아니다. 결말이 어쩌고가 중요한 책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결코 모두 괜찮은 결말도 아니다. 원제는 <The Lust Lizard of Melancholy Cove>, 어느 날 불쑥 나타나 온 마을을 휘저어 놓고 사라지는 한 이상하고 야릇한 생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제목이다. 어디에도 자의적인 해석 같은 건 없고 그저 호기심을 자아낼 뿐이다. 그 정도면 되지 않을까?
이 책은 상당히 영화적이다. 스토리도 그렇지만 상황과 인물의 묘사를 읽다 보면 바로 그림이 그려진다. 책 한 권을 읽었는데 기억 속에는 마치 영화 한 편이 남은 것처럼 독특한 체험을 했다. 아무래도 멋진 영화로 곧 다시 태어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요즘 음울한 상상력이 바닥나 고전을 면치 못하는 팀 버튼 감독이 이 책을 보면 눈이 번쩍 뜨이지 않으려나...? 하여간 누군가 이 책을 멋진 영화로 만들어주면 좋겠다. 제대로 만들었는지 꼭 보러 갈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