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너 학교의 참교육 이야기
고야스 미치코 지음, 임영희 옮김 / 밝은누리 / 200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올여름, 얼굴 겨우 알고 이름 정도 알던 이를 어느 저녁에 만났다.  나이가 마흔이 넘은 아줌마이고 시골 영어학원의 영어 강사인 그이가 느닷없이 내게 전해준 소식은 며칠 후면 미국, 뉴욕 근처 어딘가, 선브리지칼리지인가 하는 곳으로 유학을 떠난다는 것, 그곳이 발도르프 학교라는 것이었다.  그날 저녁, 루돌프  슈타이너가 창시한 발도르프 교육이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고, 어리둥절했다.

그이가 가면서 내게 이 책을 남기고 갔다.  전편 격인 <독일의 자존심 슈타이너 학교>라는 책도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노래하는 나무>와 함께 남기고 갔다.  그렇게 슈타이너 학교의 참교육 이야기를 만나게 되었다.  슈타이너 학교의 이야기를 책 두 권으로 만났을 뿐이지만, 지금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아이들을 이렇게 키워도 되는 것일까?  우리들 기성세대는 이미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지금 커나가는 아이들을, 아직도 기회가 있는 아이들을 그냥 이렇게 키우고 있어도 되는 것일까?....'

아주 예전에 써머힐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학생 때여서, 막상 아이들 키울 나이가 되어서는 너무 희미해지고 말았다.  아이들 그림책을 함께 보다가, 내가 좋아하는 존 버닝햄이 써머힐 출신이라는 것을 읽고 그 대안학교 이야기가 아득하게 떠올랐었다.  올 초에는 같이 일하는 친구 하나가 딸을 산청의 간디학교에 보낸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려주어서, 또 덜렁 중학교 1학년이 된 딸이 재재재-- 하는  학교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씩 한숨을 쉬다가, 정말로 가까운 산청에 있다는 간디학교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정말로 아이들을 좀 덜 얽어매고 싶었다.  그럴 수는 없는걸까?  공부 잘해서 행복은 저당잡히고 출세하는 아이 말고, 하나 뿐인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원래는 타고나는 그런 능력을 오히려 키워주는 교육을 해주는 그런 학교에 아이들이 갈 수는 없는걸까?  아이가 중 1이 되니, 어서 공부를 많이 시켜서 공부잘하는 딸아이의 엄마가 되어서 안심하고픈 생각보다도 더 절실하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사는 이곳은 대학 입시보다 고등학교 입시가 더 치열한 비평준화 지역이어서, 중학생들의 공부 스트레스가 더 절박한 곳이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의아이들과는 너무나 먼 이야기지만, 어딘가에서 이런 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으로도 잠시 행복했다.  누군가 시작한 올바른 교육 방법이 작은 씨앗이 되어서, 묻혀버리지도 않고 점점 자라나고 있다는 것, 그것이 희망으로 다가왔다.  물론, 동시에 떠오르는 아픔은 역시 우리의 아이들이다.  어딘가에서는 아이들이 충만한 행복감과 함께 커가고 있는데, 지금 우리의 아이들은 오로지 더 좋은 점수를 따기 위해서 충만함, 행복함, 자유로움, 넘치는 호기심, 이런 것들을 몽땅 억눌러가면서 지워가면서 어린 시절을, 소년시절을 보낸다.  그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막막하고 답답하다. 

그래도 이 책에는 희망이 있다.  앞으로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현실감있게 받아들이리라 생각한다.  느린 속도이겠지만, 조금씩 더 많은 아이들이 조금씩 더 나은 교육을 받게 되리라.(정말 그럴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언젠가는 자기행복감의 지수가 사회적인 성공지수, 좀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경제력지수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사회구성원 다수가 받아들이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런 날을 앞당기기 위해 슈타이너 학교의 참교육 이야기를 좀더 적극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이야기하려고 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글샘 2004-12-30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도르프 학교의 매력에 푹 빠지셨군요. 슈타이너 교육의 중심에는 늘 아이들이 있습니다. 교사는 그러기 위해서 전문성을 기르고, 늘 재교육을 받아야 하는 존재지요. 교육의 중심에 선 아이들을 위해 교사를 지도하고 가르치는 슈타이너 교육과, 교육의 중심을 생각하지도 않고 교사를 개혁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마데 인 코리아식 정책의 거리는 정말 교사를 자괴감에 빠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희망을 얻기도 했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거리를 실감하게 되거든요. 얼마 전에 간디학교 이야기도 읽었지만, 학교 제도가 얽어매는 것은 학생만이 아니라는 생각만 되뇌이며 삽니다.

새해가 밝으려 하는데, 지구 이곳저곳서 어지러운 소식만 가득합니다. 새해엔 희망으로 가득한 해가 떴으면 합니다.

sprout 2005-01-03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하면 해마다 변함없이 새해는 오지요. 그래도 언제나 조금 다른 희망을 가져봅니다. 희망을 가진다는 것이 행복감을 주기 때문이겠죠... 정말 새해엔 희망 가득한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