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 방귀 네버랜드 우리 옛이야기 30
이상교 지음, 나현정 그림 / 시공주니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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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방귀쟁이 며느리 이야기는 유명세를 탄지라, 옛이야기 책에도 많이 등장하고 그림책으로도 본 적이 있다. 네버랜드 우리 옛이야기 시리즈의 <며느리 방귀>는 이 유명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그림책으로 시도했는데, 독특한 멋을 지닌 작품이 되었다.  

우선, 워낙에 재미있는 이야기인데다가 그걸 풀어가는 글도 자연스럽고 재미나다.  

며느리는 조심조심 대청마루 한가운데에 나가 섰어. "그럼, 이제 삼 년 묵은 방귀를 뀌겠습니다." 

그러고는 단단히 마음을 먹은 듯 이어서 말했어. "아버님께서는 대청 문을 잡으시고, 어머님께서는 부엌문을 잡고 계세요. 서방님은 기둥을 잡으시고, 아가씨는 솥뚜껑을, 도련님은 지게 다리를 잡으세요." 며느리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했어. "도대체 얼마나 센 방귀를 뀌기에 이 난리람!" "글쎄 말이오."  시집 식구들이 구시렁거렸지. 

"준비되셨는지요? 자, 이제 뀝니다." 며느리는 엉덩이에 힘을 주었어. 방귀 바람에 방문 창호지가 부르르르르르 떨리고 대청마루 병풍이 넘어갈 듯 벌벌벌벌벌 흔들렸어. 시집 식구들은 겁에 질려 며느리의 엉덩이에 눈을 주었어. 이제라도 방귀 뀌는 것을 말리고 싶었지. 하지만 이미 시작한 걸 어쩌겠어. 

뻐어엉 뻐엉! 꽈르르르, 꽈르르! 뿌웅, 뿌우우우웅 뿌아아앙! 콰광 콰광! 

대청 문이 시아버지를 매달고 부웅 날아오르고, 부엌문이 시어머니를 업고 우물가에 쓰러졌어. 신랑은 뽑힌 기둥째 담장을 넘고, 시누이는 솥뚜껑에 얹혀 사랑채 지붕에 떨어졌어. 시동생은 지게 다리를 손에 꼭 쥔 채 마당 귀퉁이에 털퍼덕 나가떨어졌지.   

                                                  ^^

시집 올 때 몽실몽실 탐스럽기 그지없어 시댁 식구들이 복덩이라 귀여워해 마지않던 며느리가 삼 년 만에 얼굴색이 누렇게 뜨며 눈 밑에 다크 써클이 생기니 다들 걱정이다. 조심스레 이유를 물으니 며느리가 (시집 생활이 얼마나 조심스러웠던지..) 방귀를 마음대로 못 뀌어 속병이 들었다 한다. 그러자 시아버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이제 어려워 말고 마음껏 뀌라고 한다. 남들 다 뀌는 방귀, 그것 참느라고 병이 생겨서야 되겠느냐, 여태 고생했다 그런 마음이었겠다. 그렇게 방귀 뀌는 것도 시댁 식구의 허락을 받아서, 이제 묵은 방귀를 한꺼번에 뀌는데 그게 대단한 거다. 미리 조심시키는 며느리에게 시댁 식구들은 구시렁거리면서 방귀가 세면 얼마나 세다고, 했다가 막상 뻐어엉! 뻥! 방귀가 터져 나오고 문이 부르르르르르~ 떨리자 식겁들을 한다. 몰랐겠지! 석삼년 며느리의 마음고생을 시댁 식구들이 알 리가 있나! ㅋㅋ 

은연중에 며느리의 억압된 마음, 행동거지를 털어놓고 있다.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그래, 행동거지가 조신하다 시댁에서 아무리 사랑받는 며느리라도 속내는 이렇게 힘든 것이여~' 생각할 수 있겠다.  

막상 마음대로 뀌라고 하길래 마음대로 뀌었더니 그게 그만큼 눌린 거였나, 생각하고 안쓰럽게 여기기는커녕 시아버지가 "며느리 몹쓸 방귀에 집안 망하겠구나!"라면서 친정으로 쫓아보내기로 결정한다. 세상에! 이런 대우가 어디있나!  

그렇게 산 넘고 개울 건너고, 굽이굽이 들길을 걸어 친정으로 돌아가는 길, 서럽기도 하겠지만 시아버지랑 함께 가는 길이라 이제 다시 방귀를 참아야 하니 며느리는 그게 고역이다. 허락 받고 나서 크게 한 방 뀌었더니 쫓겨가게 되었는데 어찌 다시 맘대로 뀔 수가 있겠나. 친정으로 소박맞고 가는 서러움보다 시아버지 곁에서 방귀 참는 게 더 힘든 며느리 이야기는 좀 슬픈데도 그만 우습다. 며느리는 방귀를 참고 나는 웃음을 참아야 할 거 같다. ^^ 먼 길 가다 쉬는데 배나무가 나오고 시아버지가 높이 달린 배를 보고 군침을 삼키니 며느리가 그걸 시원하게 해결해준다. 역시 방귀로! 그렇게 구박했던 며느리 방귀 덕에 달디단 배를 실컷 맛본 시아버지는 (물론 살짝 뉘우쳤겠지) 며느리를 다시 집으로 데려가기로 했다. 이제 몹쓸 방귀가 아니라 쓸모있는 방귀라는 평가도 받았고, 시집으로 돌아온 며느리는 마음껏 방귀를 뀔 수 있으니 다시 몽실몽실 탐스러워진다는 이야기. 

며느리의 방귀라는 해학적인 소재를 이용해서 시집에서 억눌린 채 살아가는 며느리의 심정을 대변하다니, 참 기지 가득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저 며느리가 구박받고 억눌린 채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자면 그건 얼마나 답답하고 슬픈 이야기가 될 것인가. 며느리들끼리 모여서 서로 당한 이야기를 하자면 서로 답답하고 속이 상할텐데, 누군가 이런 비유와 웃음을 곁들여 한 번 시원하게 쏘아주면 다들 얼마나 시원하게 속이 풀렸을까. 박장대소를 하며 시댁을 흉보고 털어버렸을 것 같다. 아마 옛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으리라. 우리 옛이야기의 해학에는 그런 맛이 있다. 힘들 때마다 빛을 발하는 게 오히려 그 웃음이 아니던가. 어차피 겪어야하고 참아야 하는 상황, 사이사이 웃고 조롱하고 말로라도 흉보고나면 그만 그 응어리들이 조금씩은 풀려서 또 살아갈 힘을 얻지 않았던가. 며느리 방귀 이야기는 그런 힘이 있다.  

이 그림책은 그림도 썩 맘에 든다. 초창기의 외국 그림책들을 보면 인쇄 기술의 한계로 인해 검은 선으로 그린 그림에 단순하게 서너가지 정도의 색을 써서 선 위에 입히고 있는데, 이 그림책에서도 그런 기법을 써서 절로 오래된 향기를 풍기는 것 같다. 전체 배경색이 꼭 우리네 옛 장판 색깔처럼 은은하고 깊이있다. 잘 살린 먹색과 먹선의 느낌도 눈에 띈다. 며느리를 비롯해 등장인물도 얼핏 친근한데도 참 새롭게 느껴지는 게 신기하다. 며느리의 낯색은 방귀를 뀌지 못했을 때와 맘껏 뀔 때를 다르게 표현했다. 앞 뒤 표지에 앉힌 그림이나 바깥 테두리의 품격도 쏙 맘에 든다. 그림 작가의 내공에 다시 한번 눈길이 간다. 

이야기의 재미에, 멋진 그림에 취해 웃다보면 어느새 애닯은 며느리의 삶도 보이고, 다행히 본성을 인정받아 행복한 결말로 끝나니 이야기에서나마 위안도 삼는데다가 예나 지금이나 얘깃거리도 되고, 하여 이래저래 미덕이 많은 옛이야기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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