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공주 비룡소 세계의 옛이야기 35
김승희 지음, 최정인 그림 / 비룡소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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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바리공주, 버리데기라는 제목으로, 혹은 오구대왕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는 만큼, 바리의 이야기는 여러 전승이 있고 요즘 들어 나와있는 그림책, 옛이야기책도 무척 많다. 여러 책으로 바리 이야기를 보았지만, 이 책이야말로 정말 소개하고 싶은 바리데기 이야기이다. 그림, 이야기 모두 너무나 아름다운데다가 서로 조화롭게 잘 어울린다.  

바리공주의 이야기는 아주 유명하고 익숙한 이야기다. 수없이 많은 그림책, 이야기책, 미술 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연극으로도 만들어지고 있다(박재동 화백이 애니메이션으로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한참 되었는데..). 그만큼 오랜 기간 널리 '인구에 회자'될 만큼, 스토리는 드라마틱하고 무대는 광대무변하다.  

한 나라의 대왕이 나라를 이어 갈 아들을 간절히 기다리지만, 점술사의 예언대로 태어나는 아기들은 줄줄이 딸이어서 일곱 째가 되니 그만 더 보기도 싫어져서 그 아기를 버리라고 이른다. 이 책에서는 왕이 스스로 서둘러 혼례를 올리고 싶은 마음에 '올해 혼례를 올리면 칠 공주를 두시고, 다음 해 혼례를 올리면 세 왕자를 보실 거다' 라는 예언에도 불구하고 참지 못하고 그해 혼례를 올려 스스로 우를 범하고 있으니, 대왕이라고는 하나 인간적인 약점을 가져 화를 부른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죽으라고 울 밖에 산 밖에 던져진 딸은 학이 내려와 날개로 덮어주고 뱀은 다리를 감고도 물지 않아 죽지 않으니, 다시 천길만길 열두 바다에 버려진다. 그러나 귀한 운명을 타고 난 아이라, 지나가던 할미, 할아비가 구하여 결국은 총명하게 자란다. 시작부터 끝까지 이 이야기는 너무나 드라마틱하게 마음을 사로잡는다. 게다가 이야기가 이루어진 시대는 아들을 원하나 이야기는 딸의, 그것도 버림받은 딸의 인성과 효심과 수행에 촛점을 맞춘다. 결국은 온갖 역경을 넘어서 생과 죽음의 길을 인도해주는 무조신이 되니 그 시대적 가치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의미 또한 적지 않다.   

천륜을 저버리고 일곱째 공주를 버린 죄로 왕은 약이 없는 병에 걸리고 만다. 거두어 기른 여섯 딸에게 수양산 큰 바위 밑에 있는 약물을 구해와 아버지의 목숨을 살릴 것인가 물어보니, 모두모두 못 가겠다 한다. 염치는 없지만 마지막 남은 딸 하나, 이미 죽으라고 버린 일곱 째를 찾아나서고 결국은 깊은 산중에서 살던 바리공주의 탄생에 얽힌 비화가 밝혀진다. 그러나 부모를 만난 것이 기쁨이기만 하랴, 탄생에 얽힌 이야기만 해도 마음이 무너질 법한데, 자기를 버린 아비를 구하러 갈지 못갈지도 모르는 수양산에 가라 하고 구할 수 있을 지 없을지도 모르는 약물을 구해오라 하니, '못 가오 못 가오' 하며 한참을 울다가는 고개 들고

'여섯 언니 못 가는 길 어찌 제가 가오리오만은, 이 세상 태어나게 한 부모 은혜 입었으니 제가 가겠습니다.' 라 말한다. 그렇게 바리의 기약없고 정처없는 여정이 시작된다. 여러 가지 전승을 보면 그렇게 나선 바리가 가는 길은 서천 서역 길, 이야기가 만들어지던 시기의 사람들의 생의 경험에서는 가장 멀고 가장 가없이 펼쳐진 길이었으니, 이야기의 스케일은 한없이 커진다.

보통 무쇠 지팡이를 한 번 짚으면 천리를 가고, 두 번 세 번을 짚으니 삼천리라, 우리 강산을 순식간에 지난다. 그리고 신선을 만나고 극락과 지옥을 지나고 무지개를 타고 간다. 신선에게 받은 낙화 한 송이를 던지니 바다가 육지가 되고 다시 한 송이를 던지면 가시문이 열린다. 무장승은 약수를 구하는 바리에게 밑 빠진 독 꽃밭에 물을 삼 년 길어주고, 불씨 없는 불을 삼 년 때어 주고, 무장승과 부부가 되어 일곱 아기를 낳아 주기를 요구하고, 바리는 그걸 들어주고 석 삼 년 아홉 해를 보낸 끝에 약수를 구한다.  

하여간, 한 번 읽기 시작하고 듣기 시작하면 빠지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러나 그것 만으로는 이 그림책의 장점을 다 설명할 수 없다. 

 바리데기 이야기는, 무조신의 원류를 찾는 것이어서 원래 신화적인 색채가 강한데, 최승희 시인이 쓴 이 책의 글은 마치 노래같기도 하고 중얼거림 같기도 하여 따라 읽다보면 내가 한판 굿에 들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강렬하다.  

"던지어라 던지어라 울 밖에다 던지어라 울대 밭에 던지어라. 

던지어라 던지어라 산 밖에다 던지어라 산대 밭에 던지어라.   

이름은 버렸다 버리데기로 지어 놓고 던졌다 던지데기로 지어 놓고 

울 밖에다 던지어라, 산 밖에다 던지어라." 라든가, 

 

"버렸다 버리데기, 던졌다 던지데기, 죽으라고 버린 아기 어디 가서 찾겠느냐. 

산에다 버렸으면 산에서 찾겠지만 바다 용왕께 바친 아기인데 어디 가서 찾겠느냐. 

천길 만길 버린 자식, 아 아 ....."  

같은 구절들에서는 노래가 느껴진다. 바리공주의 원형인 무가 형식을 살려 쓴지라, 강렬하고도 생생하다. 원형의 느낌이 아름답다.

그림 또한 그 선명한 원색의 색감으로 풍부한 표현력을 보여준다. 면마다 펼쳐지는 그림들은 그 이야기에만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한 장 한 장이 한편의 독립적인 작품인 양 과감하고 창조적인 구성으로 살아 있다. 어느 쪽을 펼쳐도 한 편의 작품으로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받쳐주고 있다(아니, 글이 먼저인가 그림이 먼저인가. 누가 누구를 받쳐준다고 할 수 없으리라. 마치 오페라의 혼성 듀엣처럼, 서로 다른 악기의 이중주처럼 그들은 주고 받으며 서로를 이끌어간다). 그 신화적인 내용에 달리 이보다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싶을 그림이다.  
 

여러 바리데기 이야기의 전승 가운데, 이 시대에 새로이 태어나 이렇듯 강렬한 원형의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김승희와 최정인의 <바리공주>, 여럿에게 권해 나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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