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근리 이야기 1부 - 그 여름날의 기억
박건웅 지음, 정은용 원작 / 새만화책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만화는, 힘이 세다. 

그 어떤 매체보다도, 만화라는 매체의 힘을 극명히 느낄 수 있는 작품. 6.25 전쟁 당시 노근리의 만 4일간, 7월 25일부터 29일까지에 있었던 차마 믿을 수 없는 학살의 현장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는 듯 보게 만드는 만화. 제 6장 '학살' 부분은 전체 600쪽 분량 중에서도 자그마치 300쪽을 넘는다.  

길고도 길고도 길다. 끝나지 않을 듯 이어지는 죽음과 공포, 그 황망함. 문명의 이름으로 자행된 야만의 모습, 원조의 이름으로 가해진 폭력의 실상이 날것 그대로 드러난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이 처참함을 보라 한다. 비사실의 영역이 아니라 철저히 사실의 영역에서 들여다 보라 한다. 한 번 손에 든 이상, 놓을 수도 없게 그 사실은 흘러간다. 무섭도록 사실적으로.  

박건웅의 그림은 여러가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의 만화에서 펼쳐지는 수묵의 향연이란, 놀랄만큼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은 또한 너무나 처절한 아름다움이다. 초반에 등장하는 50년대 초반 시골의 모습은 전쟁의 상흔 속에서도 간헐적인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다. 산은 한걸음 물러 배경으로 흐르고 물은 그런 산을 등지고 흐른다. 마을 앞 둥구나무 앞에 모여앉은 노인네들의 모습도, 피난 길에 아이를 들쳐 업은 아낙네들도 마치 박수근의 그림 속 필부들의 모습으로 낯이 익다. 때로 정지한 한 컷은, 가만히 바라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어디서 보았을까, 이런 그림을. 익숙한 그 느낌이 만화라는 장르에서 마치 당차게 자기 주장을 하듯 새롭다. 그림이 찬찬히 보인다.  

비극적이게도, 절정은 6장이다. 내용만이 아니라 표현 방식에서도. 노근리 쌍굴은, 때로 어떤 희망도 갖기 어려운 캄캄 절벽으로, 때론 그 무시무시한 악마적 화력 앞에서 처연하게 무력한 도피처로 그려진다. 구겨진 화선지 위에 스쳐지나가는 듯한 붓과 먹의 자국은 바위를 만들고 절벽을 만들더니 그예 암흑의 검고 깊은 두 개의 먹빛 눈의 동굴을 만든다. 모든 살아있는 것의 생명을 빨아들여 죽음의 탁한 숨으로 되돌려 놓을 것만 같은, 어둠의 눈과 같은 굴의 모습(398 ~ 399쪽).  만 나흘간의 죽음의 기록은 숨이 막힐만큼 가쁘게 흘러간다. 그러나 일순 그것은 고통 속에서 더이상 흐르지 않고 멈추어 버린 시간처럼, 오래고도 오래다. 그 지옥의 시간 속에서 온전한 생명은 없다. 그 속의 모든 생명은 이미 비릿한 죽음의 껍질을 둘러쓴 생명이다.  

혼미한 정신으로도 두 눈 뜨고 볼 수 밖에 없는 처참함이 거기에 있다. 대체 왜? 

대체 그 동네에 살았던 순한 사람들이었다는 것 말고, 무슨 죄가 있기에? 강한 무력을 갖추지도 못한 데다가 부패하기까지 한 정부의 힘없는 국민이었다는 것? 힘센 사람들이 도와주러 왔다기에 순진하게 믿었던 것? 그 죄를 짊어지고 노근리 사람들은 죽어갔다. 그게 우리의 역사라는 것을 이 만화책, 두 눈 부릅뜨고 보라고 들이민다. 생존자들의 캄캄한 증언이 있다. 절규, 비명, 탄식, 분노, 절망과 혼미함이 게 있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있다. 삶과 죽음의 희극적인 엇갈림이 거기에 있다. 만화 <노근리 이야기>의 제 6장, 그 이상의 생생한 기록을 나는 알지 못한다. 더한 폭력과 야만의 현장을 상상할 수조차 없다. 무섭다.  

픽션이었다면, 던져버렸으리. 무슨 이유로 이런 끔찍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것인가 말이다. 불행히도 사실. 우리 형제들의, 부모들의, 아저씨 아줌마들의 사실. 외면할 수조차 없다. 

정은용은 겪은 자의 기록으로 이 책을 일구었고, 박건웅은 공감과 재능과 묵묵함으로 이 책을 꽃피웠다. 그들이 만들어낸 이 만화는, 힘이 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