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 1 - 충격과 공포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5
김태권 지음 / 길찾기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숱한 이야기를 낳은 책인데 이제야 봤다.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왠지 재미는 없는 만화일 듯싶어 미루다가... 그런데 완전 재밌었다! 1편을 다 보고 손을 놓자니 뒤가 기대되어 놓아버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2편을 다 보았는데. 3편은 언제 나오는거얏? 2005년에 두 권을 내놓은 이래 아직이라니? 요즘 작가의 다른 책들이 엄청 쏟아져나오는 추세던데, 이쪽은 휴업 중인가보다.  

<십자군 이야기>, 이 책은 새롭다. 추천사를 쓴 진중권의 말에 의하면, '중세에 일어났던 어떤 야만적인 사건에 대한 고발이다.' 이런 내용이라니, 새롭지 아니한가? 중세 역사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 담뿍 담긴 만화인데, 만화책 보다가 얻을 수 있는 지식이 빵빵하다. 나처럼 역사에 많이 어두운 사람한테는 그저 희미한 옛그림자 같은 이야기로만 기억되던 역사였다. 어떤 만화책도 지식을 넘치게 담아버리면 재미가 없어져서 그만 '그 좋아하는 만화조차도' 손을 놓아버리게 되는데, 이 책이 권하는 지식은 어째서 손을 놓지 못하게 되는 걸까? 내 경우에는 그게, 작가의 역사 해석에 그만 고개를 주억거리며 공감하게 되어서 그런게 아닐까 한다.   

1편 중에서 재밌게 보았던 중세 서유럽의 T-O 지도.  

"중세 서유럽 사람들 생각으로는,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이라는 세 개의 대륙은 바다로 둘러싸인 이 평평한 지구의 중앙에서 만나며, 마침 그 만나는 지점에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이 있다는 것이다. 최후의 심판 날에 천상의 예루살렘이 내려와 지상의 예루살렘에 겹쳐진다고 믿었다나. T-O라는 것은 세 개의 대륙을 감싸고 있는 바다의 모양을 말한다. 이러한 티 오 지도는 당시의 신학적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되거니와, 이미 고도의 문명을 구가하고 있던 아메리카 대륙에 뒤늦게 도착한 서유럽 사람들이 신대륙을 발견하였노라 호들갑을 떨던 사실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하겠다. " 

여기서 말하는 아시아조차 중국, 인도 등을 염두에 두지 않은 투르크 (나중에 '소아시아'라고 다시 명명된다)였다. 그들에게 세상은 지중해 너머 아프리카가 있고 흑해, 에게해 너머 아시아가 있고 뒤로 대양으로 막힌 땅덩어리였던 거다. 그시대 그들의 세상 인식을, 글로만 보았다면 이렇게 뭔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복잡다단하고 자칫 따분할 수도 있는 역사를 그리자니, 내용의 새로움 만큼이나 형식도 새롭지 않을 수 없겠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15세기 판화의 인용 모습들도, 어느샌가 보면 그 판화에 근거하여 여러 내용이 만화적으로 차용되고 있음을 본다. 그냥 상상에 의거해 그린 것이 아니라 고증에 의해 그린다는 것, 그저 판화 도판으로 등장해 있다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버릴 수 있는데 마치 그 그림을 파워포인트로 작성해서 슬라이드 쇼를 하는 것처럼 보여주니 이만저만 생생한 게 아니다. 그토록 생경하게 보이는 장면들이, 그 시대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었구나, 실제 상황이었구나 하는 인식이 올 때, 그 리얼리티로 하여 역사가 내게 화락 다가오는 기분이었다. 이거야말로 풍부한 자료를 적절하게 인용할 줄 아는 작가로부터 독자가 얻는 혜택의 정수일 것이다.  

피해자 이스라엘이 가해자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는 것, 중세의 십자군 정신이 부시의 이라크전의 정신이었다는 것, 십자군의 원정 목적이 종교를 명목으로 내세웠으나 실은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욕구를 구가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증거를 들이대는 것이 이 책 지은이의 방식이고 해석이다. 구구절절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내 기본 역사 지식이 워낙 얄팍한데다가 지은이가 구비한 여러 사료의 인용도 그럴싸하고  현재를 보는 눈까지 나와 비슷하니 그저 공감이다. 읽는 즐거움이 있는 만큼, 속이 쓰리다.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전쟁이란 말이냐! 그때나 지금이나 말이지. 

 김태권의 유머도 좋았다. 군데군데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넘었다. 은근히 웃기는 작가다. ^^ 이 만화책에 도입한 그림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그림체라는데, 중세인의 모습을 그들이 그리던 그 방식으로 묘사한다는 거다. 그런 발상이 아~주 참신하다. 중간중간 중세의 그림들에서 슬쩍 튀어나온 사람들의 모습이, 재미를 더 크게 해준다.  

하여간, 3,4,5 권이 근간이라더니, 대체 왜 아직? 3권 나오면 1,2 권 새로 보고 다시 시작해야되는 거 아냠? 그래도 3권 나오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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