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마을 미래그림책 24
고바야시 유타카 글 그림, 길지연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일까.

정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마을'이다. 전쟁의 와중에 있는 아프가니스탄 파구만 마을의 모습을 한때 그곳을 여행했던 일본인 작가인 고바야시 유타카가 그리고 쓴 것이다. 그 마을에서 그는 주인공 야모와 같은 어린 아이들, 야모의 아버지와 같은 성실한 사람들을 만나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나라 전체가 전쟁 중이어서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로 나가야만 했고, 전쟁으로 인해 황폐해진 땅을 버리고 다른 나라로 피난을 간 다른 지역 사람들도 많았던 때이다. 그런 혼란의 와중에서도, 그러나사람들의 얼굴은 밝고 활력에 넘쳤다고 작가는 회상하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여행객인 작가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그때의 인상이 책 전체에 아름답게 스며있다.

봄이 되면 자두나무, 벚나무, 배나무, 피스타치오나무로 파구만 마을은 꽃동산이 되고, 여름이 되어 잘 익은 달콤한 열매들은 바람에 살랑거린다. 파구만 마을의 버찌와 자두는 세계에서 으뜸이라니, 물 많고 달고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그 열매들을 흥겹게 수확한 사람들은 그 최고의 자두와 버찌를 팔러 시장에 나간다. 야모와 아버지는 당나귀에 과일들을 싣고 시장으로 가서, 자부심과 기대감에 차서 과일을 판다. 이 책에는 야모가 처음으로 아버지를 따라 시장으로 가고, 거기서 혼자 버찌를 맡아 당나귀 뽐빠와 함께 팔러 다니는 과정, 처음에는 목소리도 모기소리같던 야모가 한 번의 행운 뒤에 잇따라 버찌를 팔게 되고 그 버찌가 역시 최고라는 칭찬까지 들으며 기분 좋게 아버지보다 더 빨리 다 팔고는 자랑스럽게 당나귀를 몰고가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그렇게 야모가 기쁨에 차서 뽐빠를 몰고 가는 모습, 그 배경에는 긴 총을 가진 사람의 모습이 겹친다. 그런 혼란의 와중에서도 사람들은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팔고, 아이들은 뛰어다니며 놀고, 음식점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도 정다운 말들을 주고받는다. 전쟁이라는 서글프고 비참한 현실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사람들의 삶은 활기를 잃지 않는다. 그러나 어디 그러기만 하랴. 가족 중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삶이라는 게, 어디선가 전쟁의 총성이 울리고 있다는 게 이 작품의 군데군데서 쓸쓸함을 자아낸다.

자두랑 버찌를 다 팔아 생긴 돈으로, 야모의 아빠는 야모가 깜짝 놀랄 선물을 준비한다. 둘은, 새하얀 새끼양 한 마리를 사서, 그것도 마을 어느 집에서도 볼 수 없었을만치 가장 예쁜 양을 사서 가슴을 좍 펴고 집으로 돌아온다. 야모는 새끼양의 이름을 '봄'이라는 뜻의 '바할'로 짓자고 하고, 어서 빨리 전쟁터에 나간 할룬 형이 돌아와 식구가 늘어났다는 것을 함께 기뻐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정작 봄은 아직 멀기만 하다. 이 모든 이야기들, 풍경들이 어딘가 우리네 옛날, 그것도 그리 멀지 않은 옛날의 정겨운 풍경과 닮아 그 정경에 마음이 절로 활짝 열린다. 아, 그러나 그 다음 순간...

'그 해 겨울, 마을은 전쟁으로 파괴되었고, 지금은 아무도 없습니다 '라는 마지막 말. 그게 현실이었던 거다.

정말로, 그림책 한 권을 보다가,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리고는.. 슬픔이 북받쳤다. 그림책의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작가의 설명이 이어진다. 폭격을 당해 파괴된 마을들.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이야기. '아프가니스탄에는 이런 마을들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라는 말. 내가 한 권의 그림책으로 본 이야기들을 직접 겪은 작가의 아픔이 마음에 다가온다. 그가 만든 그림책 한 권-- 이 얼마나 커다란 울림인가. 저 먼 곳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 우리와 피부색이 다르고 다른 양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평생 가야 한 번 만나보기도 어려울 그 나라 사람들이지만 내 마음 속에는 어느덧 그들의 삶에 존중감이 생기고 그들의 아픔에 함께 가슴이 쓰라리다...

세상 모든 이들이 이 그림책을 보았으면 한다. 거기에는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 있으니까. 그 아름다움이 누구나의 마음에 먼저 새겨질 것이다. 그리고 어리석은 전쟁, 그런 전쟁들이 그 마을을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을 누구나가 마음 안에 사무치도록 새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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