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과 아이 사이를 흐르는 깊고 적막한 강.

줄어드는 아이 트리혼 ㅣ 동화는 내 친구 52
플로렌스 패리 하이드 지음, 에드워드 고리 그림, 이주희 옮김 / 논장 / 2007년 10월

아이는 말하고, 어른은 절대로 절대로 귀기울여 듣는 법 없이 자기 생각에만 빠져 다른 말만 한다. 약자인 아이는 처음에는 계속 주장하다가, 나중에는 그만 그러려니, 한다. 내 문제를 더이상 어른들이 풀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접어버리고 아이 역시 자신의 세상으로 들어간다. 결말에서는 가끔 어른과 아이의 화해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혹은 썰렁하게 제갈길을 가는 걸로 끝나기도 한다.

어른과 아이의 단절을 비관적으로 보여주는 건 이미 여러 그림책들에서 반복되는 주제이건만, 여전히 볼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역시나, 현재형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이드의 글도, 고리의 그림도 이런 주제에 적합하게 건조하고 담담하다. 계속 읽다보면 먼저 글이 적막하고, 한 장 한 장 그림을 넘기다보면 그림도 적막하다. 주제에 더할나위 없는 글과 그림이 아닌가.

아들이랑 함께 읽는 동안 아들은 내내 말이 없었다. 그 속에서 뭔가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순 없지만, 내 안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심사만큼이야 하랴. 아이가 어느날, "엄마, 이 그림책 다시 좀 봐!" 할까봐... 좀 걱정이다. 어린이는 어린이의 경험만을, 어른은 어린이의 경험과 어른의 경험을 다 하는데 왜 어른은 어린이의 경험을 그토록이나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일까. 경험하지도 않은 어른의 삶을 어린이에게 이해하라고 요구하면서... 트리혼은 어른에게서 지워져버린 어린이의 삶을 적막한 어조로 이야기하러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