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말 많은 작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저자 마르셀 프르스트. 그의, 4미터가 지나서야 마침표가 등장하는 긴 문장들로 채워진 그의 10권의 소설. 그리고 그와 그 소설들을 둘러싼, 베르그송, 들뢰즈, 발터 벤야민 등의 쟁쟁한 이름들이 연루된 의심스러운 논의들. 이 모든 것들 앞에서 한번쯤 주눅 들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랭 드 보통의 이 책을 읽고 자신감을 얻을수 있으리라.

« 지침서 » Eine Anleitung 이란 부제에 걸맞게 그는 프르스트의 삶과 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속에서 우리의 삶을 보다 민감하고 살만하며 흥미로운 것으로 만들수 있는 유쾌하고도 쾌적한 교훈들을 찾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이 책의 각 장의 제목에서부터 확인된다.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제대로 책을 읽어야 하는가,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가, 어떻게 고뇌를 이겨내야 하는지,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친구들을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지, 세상을 보는 방법을 어떻게 익힐 것인지, 사랑하면서도 어떻게 행복해질수 있는지, 그리고 끝으로 어떻게 책을 손에서 내려놓는지.’

그러나, 어떻게 인간관계에 성공하며 재산을 모으고 약삭빠르게 살 수있을지에 대해 충고하는 저 수많은 실용적 지침서들과는 달리, 이 책은 우리가 평소에 하지 못했던 생활의 조직화, 계획들에 대한 무수한 권고들을 제시함으로써 우릴 좌절하게 하는 대신, 소설을 읽듯 편안하게 삶과 세계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 볼수 있게 유도한다.

프르스트가 그의 소설 속에서 시도했듯 저자는 우리 삶을 이루고 있는 일상의 디테일들과 사람들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는 예민한 감수성을 권고하고, 푸르스트의 전혀 모범적이지 못한 삶과 생활태도들로부터 우리의 삶에 적용될만한 삶의 지침들을 뽑아내 알려주고,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의 모습으로부터 우리가 빠져들기 쉬운 속물적 삶의 태도를 환기시킨다.

우린 보통의 책을 읽으며 작가 프르스트의 생애와 삶에 대해, 저 감히 읽어볼 엄두를 내지 못하던 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주요인물들의 성격과 행동에 대해, 나아가 그것의 문체와 그에대한 많은 사람들의 비평과 반응들에 대해 배우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의 삶과 세상을 바라보던 방식에 대해 깊이있게 사색해 볼 기회를 제공해 준다.

편안하고도 쉬운 글을 쓰면서도 오랜 여운을 남기는 사유의 단초들을 깔끔하게 던져주는 보통의 문체는 그의 다른 어떤 책에서보다도 이 책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빛을 발한다. 저 지리하고도 긴 푸르스트의 소설의 문제들을 산뜻하고도 말끔하게 전달해주면서 동시에 푸르스트를 직접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그의 글이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 가장 훌륭한 책들이라도 방구석에 던져질만 하다 »는 문장을 통해 푸르스트의 책 자체를 왜곡된 숭배와 맹목적 경외의 대상으로 삼는 착오를 경계하는 마지막 문장을 읽을때 까지 시종일관 이 책은 그로부터 얻는 풍부한 정보와 삶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 우리에게 던져지는 설레이는 사유의 단초들을 통해 우릴 즐겁게한다.

 Alain de Botton, Wie Proust Ihr Leben veraendern kann ; eine Anleitung, Fischer Taschenb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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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예류살렘의 다이히만 읽다. 특정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단지 범죄를 통해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피해자에게만 상해를 입힌 것은 아니다. 그는 동시에 그러한 범죄 규정하고 규제하고 있는 사회적 질서 자체를 손상시킨 것이기도 하다. 그에대한 처벌이 단지 피해자의 사적인 복수가 아니라, 공동사회의 질서를 손상시킨 것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묻는 것이라는 생각. 이것이 근대 법치의 핵심개념이 되어야 한다. 

유대인들 학살계획을 수립했던 다이히만에 대한 재판은 첫째로, 재판을 수행했던 주체가 단지 이스라엘의 법률에 의거해 판결할 밖에 없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인류에 대한 범죄로서 최소한 국제적 법정이 되었어야 했다는 그녀의 주장도 생각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그것도 논란이 분분한 납치라는 방법을 통해 다이히만을 자신의 국가에서 자신의 법률로 사형시켰던 전범은, 사건 자체를 마치 이스라엘이라는 피해자가 다이히만에 대한 가해자에 대한 개인적 피해를 사적으로 복수시켰다는 인상을 낳게한다. 그리고, 실지로 나찌와 홀로코스트의 문제를 바라보는 오늘날 많은 시각들엔 바로 그것이 단지 유대인과 나찌 사이의 문제로, 나찌의 비인간적 행위와 잔인함이 문제가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유대인을 지구 상에서 절멸시키려고 했던, 게노시드, 나찌의 시도는 단지 유대인들에 대한 피해일 뿐만 아니라, 그를통해 지구상에 존재하는 민족들의 공존의 질서를 위협하는, 인류 전체에 대한 범죄 행위였으며, 이는 따라서, 인류적 질서의 이름으로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처리되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모든 사법적, 공법적 범죄행위를 개인적 복수 보복의 논리로 바라보는데 익숙해있는 한국 사회에선 그리하여 근대적 법치의 기본을 이루어야 이러한 일반적 질서 대한 범죄라는 생각이 결핍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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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 감독의 영화 <실미도> <공공의 > 보다. 그의 나이브한 아나키즘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영화들.  그가 그려내는 세계 속에선 기존에 존재하고 있는 조직들은 조직의 최말단에 위치하고 있는 행위주체들과 대립하고 있다. 실미도의 훈련책임자와 훈련 하사관, 그리고 훈련병들은 자신들이 속해있는 정치조직과 대립하며, 강력계 형사가 속해있는 검찰조직들은 또한 그들과 대립한다. 진실은 조직에 있지않고 조직의 최말단에서 묵묵히, 조금은 비합법적이고 폭력적으로라도,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약한 사람들에게 있다. 그들의 벌거벗은, 솔직한 진리 그들이 속해있는외면적이며 위압적인, 권위적 조직 속에서 억압받고, 고통받으며, 그에 항거하고 있다.  그러한 그들에겐 따라서 비진리와 고통의 원천인 조직이 정해놓은 규율, 법칙, 명령들은 다만 그들의 피땀흘리며 살아가는 질곡하고, 가로막으며, 진실을 부인하거나 은폐하는데만 기여한다. 진실은 오히려 그러한 비진리를 조롱하고, 파괴하며, 엿멋이는데서 생겨난다. 강우석이 꿈꾸는 유토피아에선 그리하여, 말단의 개인들이, 처음엔 적대적으로 여겨졌던 훈련병과 기간병들이, 형사와 마약상인, 칼잡이들이 서로 우애를 쌓고 협조하며, 어떤 위의 조직의 간섭과 방해와 음모로부터 해방된채, 자유롭게 자발적으로 살아가는 세계일 것이다.    

강우석이 그려내는 이러한 세계의 나이브함은 우리가 잠시만 과연 진실과 비진실 범위가 어디까지인가하는 질문만 던져본다면 금새 폭로되고만다. , 실미도의 훈련대장은 조직의 일부가 아닌가, 강력계 반장은? , 진실과 비진실의 범위는 주인공들에게 유리하게만 설정되는가. 만일 실미도의 훈련대장과 강력계 반장 역시 비진실의 조직의 구성원이었다면, 주인공들은 과연 자신들의 세계를 그나마라도 펼쳐 보일 있었을까. 아니면, 강우석은 진실의 필연적인 파급효과 같은 생각했던 것일까. 진실은, 진리는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사람들을 감화시켜, 스스로 승리할 것이라고? 마치 처음엔 적대적이었던 강력계 반장과 훈련 하사관이 나중에 우리편이 되듯이? 

이 점에서 강우석의 아나키즘은 나이브한 휴머니즘의 옷을 입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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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독일의 대표적인 좌파 독립신문인 Taz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특별 기획으로 세계의 좌파 독립신문들을 취재하려는 한국의 한 신문사가 의뢰한 인터뷰에서 통역을 하게된 것이다. 우리가 만난 사람은 현재 Taz의 편집국장인 Frau. Basha Mika Taz의 운영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Herr. Karl Heinz Ruch 이었다. 많이 알려져있듯, Taz, 현 독일의 외무장관 Joschka Fischer, 프랑프크르트 학파의 이론가 아도르노 등이 깊이 연루되어 있는 60년대 독일 사회 운동 세대들에 의해 만들어진 신문이다. 1978 년 베를린 공과대학 대형강의실에 모인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자본도, 언론 경험도 없이 생겨났던 당시 운동 소식지가 이 신문의 출발이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거대 기업들의 광고도 받지않고, 환경보호를 위해 (물론 그럴 돈도 없기도 하지만) 컬러 화보도 싣지 않고 있는 Taz, 다른 언론사의 절반 수준의 봉급을 받으면서도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신문에 참여하고 있다는 자신감으로 버티는 많은 좌파들에 의해 지금까지 이끌어져 오고있는 신문사다. 다른 거대 언론사와의 경쟁, 경제위기, 권력과 자본과의 갈등 등으로 인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들 Taz인들이 가지고 있는 자부심은 우리에게 신문사 곳곳을 안내해준 비서에게서도 느낄 수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편집국장 Basha Mika 사무실 서가에 꽂혀있던 독일어 판 모택동 선집이었다. 대부분의 타쯔 종사자들과 마찬가지로 60년대 이후의 독일의 사회운동과 그 이후 환경운동의 실천가였던 그녀는, 체 게바라, 호치민 등과 더불어 당시 운동의 사회, 이념적 토대를 제공했던 중국 혁명가 모택동의 책을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자신의 사무실 서가에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 유럽인들이 저 먼 동 아시아에서 나온 사상에 심취했었던 적은 역사적으로 크게 세 차례 있었다. 18세기 계몽주의자들에 의해 새로운 통치이념으로 수용되었던 유교와 20세기 초 문명비판과 평화주의 운동의 맥락에서 받아들여졌던 도가사상, 그리고 1960년대 새로운 사회운동의 이념적 대안으로서 수용되었던 중국화된 맑스주의가 그것이었다.  

 18세기 볼테르, 디드로를 위시한 계몽주의자들은 변화된 사회, 정치적 상황 속에서 어떻게 물리적인 억압과 폭력이 아닌 이성적인 방식으로 국가가 통치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유교의 정치 이념으로 통치되고 있던 중국은, 그 이념을 통해 군주에서부터 관료들에 이르기까지 자발적이고 조화로운 이성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로 보였다. „도덕과 법, 아버지들에 대한 자식들의 존경에 근거하고 있는 중국의 통치방식을 유럽 계몽군주들의 통치 모델로 제시했던 볼테르, 중국을 완벽하게 통치되고 있는 국가로 보았던 프랑스와 퀴스나이 Quesnay등에 의해 중국의 정치체제와 그 이념인 유교는 계몽주의의 유럽 정치체제가 도달하여야 할 이상향으로 받아들여졌고, 이로인해 계몽 군주임을 자처하던 많은 유럽의 통치자들은 스스로를 쟁기를 손에 들고있는옛 중국 성왕들의 모습으로 그리기도 했고[1], 중국식 가구, , 건물, 도자기, 그림, 복식 등의 Chinoiserie 는 당시 유럽 바로크 시대 예술양식을 특징지우게 된다.   

20세기 초 유럽 국가들이 포화상태가 된 식민지 쟁탈과 자본주의적 경쟁을 통해 전쟁을 향해 치닫고 있을때 많은 유럽의 지식인들은 또한번 저 동아시아의 이념을 받아 들인다. 이때 수용된 것이 도덕경을 중심으로하는 도가사상이었다. 되블린, 헤르만 헤세, 베르톨트 브레히트 등에게 이 도가사상은, 치열한 경쟁과 투쟁, 대립과 싸움으로 특징지워지는 유럽적 이념과 정신과는 달리, 음과 양의 조화, 대립과 싸움의 상호 의존성 등을 이상적인 방식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고, 이는 이들 지식인의 평화주의적 이념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1915년 출판된 Alfred Döblin Die drei Sprünge des Wang-Lun. Chinesischer Roman 1919년 출판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1923년에 출판된 브레히트의 희곡 Im Dickicht der Städte 등은 모두 1911 Richard Wilhelm에 의해 독일어로 번역된 도덕경을 통해 받아들여진 도가사상에 대한 탐닉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20세기 초 문명 비판적 지식인들의 도가 이념의 수용이 이전시대 계몽주의자들에 의해 찬탄되던 유교 이념에 대한 비판과 거부와 결합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유가사상은 전제주의적 통치와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비판되었고, 이는 당시 유럽 제국주의 각축의 틈바구니 속에서 일어났던 많은 민중 반란을 제국주의 세력과 연합해 폭력적으로 진압했던 중국정부에 대한 거부감과 결합되어 더 드세어졌다. (오늘날 중국내 정치에 대한 중국 정부에 대한 유럽 지식인들의 비판적 시각은 어쩌면 이때부터 형성된 것인지도 모른다. 베를린에선 중국 정부의 파륜공 억압을 중단하라는 가두 시위가 심심치 않게 열린다. )

다른 한편 20세기 초 이러한 문명 비판적 지식인들에 의해 수용된 도가사상은 이후부터 지금까지 유럽인들에게 중국 및 아시아인들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을 형성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소극적이고, 말이 없으며, 매사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나서기 보다는 뒤로 물러서 있기를 좋아하며, 다툼과 경쟁보다는 체념과 포기를 택하는 동양인의 이미지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중국인, 나아가 아시아인들에 대한 이미지는, 러시아인들이 시간을 과도하게 풍족하게 쓰며 그를통해 삶을 순간으로 만드는 시간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최후까지 아시아적“( „모스크바“) 이라고 말하는 발터 벤야민에게서도 발견된다. 그에게 아시아적인 것은 한 없이 교활하고 verschlagen, 한 없이 과묵하며 verschwiegen, 한 없이 예의 바르고, 한없이 오래되고, 한없이 순응적[2] 이다.



[1] David Marin Jones : The Image of China in Western social and political Thought, Newyork 28.

[2] Walter Benjamin : GS II/2, 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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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김남시님의 "모스크바 일기의 친필원고는 어떻게 생겼었을까?"

헉, 노파님에겐 예지능력까지! 어떻게 아시고 벌써 기다리고 계셨다니... 어쨋든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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