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 - 이 문장이 당신에게 닿기를
최갑수 지음 / 예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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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

최갑수 / 여행에세이, 사랑에세이, 인생에세이

최갑수의 사랑하는 문장들


사랑, 아니면 죽을 것 같은 시간을 지나온 적이 있다.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는 감정에 내가 몰랐던 낯선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던 시절.

사랑은 불같이 타올랐고 감정은 과도했으며 모든 것이 서툴렀다.


 사랑, 이

전부라 여겼던 시절을

 지나와보니 어렴풋이 알아지는 것들이 있다.


가슴 뛰는 사랑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옆을 더듬으면 따뜻한 손 하나 만져지고

가만히 등을 기대 잠든 숨결 속으로 함께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것.

떠나온 곳에서 돌아갈 곳을 떠올리면 늘 그 자리에 있는

 그 사람으로 인해 오늘 이 삶이 벅찰 수 있는 것.


늘 설레지 않아도 늘 함께 하고픈 사랑.

곁을 지켜줘서 그저 고마운 사랑. 든든한 사랑. 끝내 지키고 싶은 사랑.

내 사랑과 그대 사랑이 다른 곳으로 향하지 않기를. 마지막까지 하나일 수 있기를 바라게 되는 사랑.


그런 사랑을 보았다. 『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에서.

 

스무 살의 서툴고 열띤 사랑이 아닌 중년의 이후의 안정된 사랑이 느껴지는 책.

불같은 사랑의 시절을 무사히 건너와 이제는 따스한 온기로 충만해진 사랑을 조곤조곤 읊어주는 책.

그럼에도 그립고 그럼에도 눈물겹고 그럼에도 설렌다, 사랑은!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복잡하지 않고

 어렵지 않고

치열하지 않은 

이 세련된 사랑의 감정들을.


함께 살아온 시간이 안겨주는 탄탄한 사랑의 내공들, 세심한 배려들.

이것들이 하나하나 쌓여 서로의 인생을 지켜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은 아닐까.

그 사랑으로 인해 개인적인 시간들조차 충만하게 꾸려갈 수 있는 것. 믿음이 된 사랑.


어린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성숙한 사랑을 꿈꾸게 될 것이고

중년 이후의 독자들은 사랑이 안겨주는 가슴 뻐근한 인생 이야기를 만나게 될 것이다.


연륜은 느껴지지만

2,30대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사랑과 인생과 여행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작가가 사랑하는 문장들.


섬세하고

세련되고

배려깊은


삶의 단상들이 가득 펼쳐진다.


이래서 내가 최갑수 작가를 좋아하는 거지.



 

시를 즐겨 읽었던 시절이 있다.

전공이었으므로 가까이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

 그 후로 아주 오랫동안 시집을 놓았다.

간간이 펼쳐 들긴 했으나 자주, 오래, 곁에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 을 통해 '시'를 다시 만난 느낌이다.

시집 한 권을 읽는 것은 쉽지 않지만 시 한 편, 시 한 구절 읽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작가가 인용한 시들이 내 안으로 성큼 걸어 들어오는 것만 같다.


시 같은 노래도

시 같은 영화도

시 같은 소설도

시 같은 사진들까지도!


인생 뭐 특별한 게 있을까.


가만가만 되돌아볼 수 있는 사랑했던 기억들,

차곡차곡 쌓아갈 수 있는 사랑하고 있는 이 순간들

그것만으로도 인생은 충분할 것 같다.

젊은 날, 부산한 사랑을 지나 마침내 깨닫게 되는 사랑의 참 의미!


사랑, 하고 발음해본 오후 세 시

목을 진동시키는 가벼운 떨림 같은

구름을 닮은 뭉클거림 같은

청량한 공기 같은

자작나무 숲의 아득함 같은

모슬린 옷의 설렘 같은

그리고 가벼운 눈물 같은......


p.36


헤어지고 버리고 떠나고 다시 만나고

때로는 서로를 놓치고……


내 인생의 가장 큰 낭비는 당신,

여행 그리고 음악.

곧 사라지고 말 것들.

낭비하지 않고 어떻게 그것들을 기억할 수 있을까.

당신을 기다리는 데 사용했던 유용했던 시간들.


당신을 기다리는 동안

내 그림자와 함께 낭비했던 시간들이여.

낭비하지 않고 어떻게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p.70




우리는 점점 소멸해갈 것입니다.

당신과 함께 보낸 시간만이 희미하나마 즐거움이겠죠.

어쩌면 당신과 사라지는 속도를 맞추는 일이 사랑이겠죠.


p. 167




방으로 들어가 짐을 꾸린다. 등 뒤로 툭, 툭 꽃잎이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봄이 바삐 가고 있으니 서둘러야지. 당신과 함께 보아야 할 작약과 목단이 있으니.

지난해 이맘때 경북 영천 모고헌 가던 길, 어느 집 파란 대문 앞에 서서 당신을 데리고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았던가.


돌아가서는 당신에게, 사랑한다는 말보다는 함께 떠나자는 말을 해야겠다.

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일 테니.


p.213


그러니까 우리의 마음에 낙관과 사랑이 생겨나게 하는 것은 열렬함과 치열함이 아니라,

한낮의 햇볕과 한 줌의 바람 그리고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구름일 수도 있다는 것.


p.220


아참, 당신 그리고 당신. 당신이 있어 나이를 먹는 것 따위는 조금도 두렵지 않아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시간은 우리를 지나가지만 사랑은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는 것, 그것.


p.241



 

 

 

 

볕 좋은 날

볕 좋은 곳에서

책을 읽었다.


그리움이 넘실대는 깊은 밤 혹은

 어스름 새벽녘에 잘 어울리는 책이라 생각했는데

생기로움 가득한 볕 좋은 날에도 이 책은 잘 어울렸다.


이 말은

언제 읽어도 좋다는 말,

어디서 읽어도 좋을 것 같다는 말!


참 좋다, 최갑수,라는 작가 그리고 그의 글, 사진들, 그가 사랑하는 문장들!


그를 충만하게 하는 사랑의 느낌과

그를 생기롭게 하는 수많은 여행지와

그가 사랑하는 문장들이 빈틈없이 녹아들어 하나가 된

『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만으로 올여름 충만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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