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생각
윤태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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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생각. 노무현 대통령에 관한 최초의 팩션!

 

 

책을 받아놓고도 한참을 펴지 못했다. 마음이 아플 것 같아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 한동안 펼쳐볼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 읽기 시작한 이 책에서 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인지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정확하게 구분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읽어나갔다. 상당한 흡입력과 놀라운 속도감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삶과 죽음에 조금은 가까이 다가선 느낌이다.

『오래된 생각』 은 노무현 대통령의 '입'이라고 일컬어지던 참여 정부 청와대 대변인 윤태영이 팩션의 형식을 빌려 쓴  故 노무현 대통령에 관한 첫 번째 소설이다. 대통령을 떠나보낸 후 몸과 마음의 병을 얻었고 그 병을 이기기까지 4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는 윤태영 작가. 이제 오랜 시간을 넘어 그는 이 세상에 노무현 대통령의 삶과 죽음을 정면으로 다룬 한 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최대한 감상을 배제하려는 듯 불필요한 감정선을 끌어오지 않았다. 덤덤하고 때로는 무심하게 읽히지만 저 밑바닥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슬픔을 억누를 수는 없었다. 아프고 또 아픈 대한민국의 역사와 마주한 시간. 세상 어딘가에 꼭꼭 숨어사는 밀실 속 대통령이 아닌 대중과 늘 가까이 호흡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대중의 첫 대통령이 스스로의 생을 내려놓기까지 임기 초부터 치밀한 음모가 시작된다.

흔들자, 흔들자, 무너질 때까지 흔들자!(p.160)

김인수가 이끄는 그룹이었다. 정체는 불명하지만 역모의 핵심이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노동운동가 출신의 임진혁 대통령이 당선되고부터 반대편 세력은 임진혁 정권 흔들기에 돌입한다. 흔들자, 흔들자, 무너질 때까지 흔들자! 소름 끼치도록 서슬 퍼런 주술 앞에 무력해지다가도 극한 슬픔과 분노가 치밀어 오름을 느낀다. 반대를 위한 반대. 권력을 탈환하기 위한 무조건적인 반대가 얼마나 뼈아픈 역사를 남겼는지 똑똑히 보게 되었다. 현시점에서의 대한민국은 어떤가. 그들이 쟁취한 권력이 과연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끔찍한 권력에의 집착. 끔찍한 세력과의 타협이 전 세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한민국의 오늘을 써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임진혁 대통령은 정권 최초로 검찰과 언론이라는 두 권력과의 선 긋기를 실현함으로써 투명성을 확보했지만 고단한 가시밭길로 스스로 걸어들어가게 된다. 어쩌면 김인수의 말처럼 정치는 권력을 올바로 행사하기 위해 여론을 얻어야 하는 여론정치(309)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여론을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자기 편으로 만들지 않았던 임진혁 정권은 생각할수록 안타깝다. 그가 실현하고자 했던 투명성, 정직성, 도덕성은 반대 세력에 의해 왜곡되고 무참히 짓밟힌다. 임기 초부터 시작된 거대한 음모는 전체 이야기를 통해 하나의 퍼즐로 서서히 완성되어 간다.

그 과정은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흥미(?)롭다. 단순한 소설이었다면 꽤 재미있다 평할 만큼 잘 쓴 소설이다. 다만 『오래된 생각』은 가슴 아픈 팩션이기에 '재미있다'라는 표현이 적합하지 않지만 윤태영 작가의 필력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알고 보니 그는 이미 노무현 대통령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출간했으며 글쓰기에 관한 책도 출간한 바 있는 베테랑 작가였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스스로 생을 내려놓는 일이 널리 정당성을 확보하게 되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임진혁 대통령이 서서히 무너져가는 과정이 하나하나 헤아려져 못내 마음이 아프다. '오래된 생각' 오래 전부터 할 수밖에 없었던 처연함이 내내 눈에 밟힌다. 정권 초기부터 시작된 반대편 세력의 치밀한 작전이 마침내 임진혁 정권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렸다. 무엇도 더는 남길 수 없도록. 무엇도 더는 할 수 없도록!

오래된 생각. 잊고 있었던 대목이다. 사실 그리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오래된 생각』을 읽고 나서야 마침내 이해가 된다.

 

 

『오래된 생각』은 두 가지 이야기가 큰 축을 이룬다. 윤태영 작가로 보이는 진익훈 대변인의 이야기와 故 노무현 대통령으로 보이는 임진혁 대통령의 이야기. 과거와 현재 시점을 오가는 구성으로 독자의 흥미를 이끈다. 흡입력이 상당한 소설이다. 한 번쯤은 제대로 바라 보아야 할 역사를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마주하게 된 느낌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권력을 잡으려는 세력간의 다툼이 정치판을 여전히 어지럽히고 있다. 역사를 거울로 삼아 아픈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하는데 자기 밥그릇만 챙기고 있는 듯해 씁쓸하다. 그 어디에도 임진혁 대통령과 같이 국민과 나라를 생각하는 대통령은 없는 듯하다. 권력과 선을 긋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앞장서는 대통령은 없는 것 같다. 제대로된 큰 인물 한 명이 대통령이 되어서 과연 그가 한 번이라도 자기 뜻을 펼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마지막 책장을 덮는데 한기가 돌았다. 봄 날 치고는 쌀쌀한 날이기도 했거니와 8년 전 그 날이 또렷이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다. 2009년 5월 23일, 지방에 살고 있는 나는 일이 있어 서울에서 하룻밤을 묵었던 터였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보니 세상이 달라져 있었다. 지방이었다면 그리 온몸으로 체감하지 못했을수도 있지만 대통령이 서거한 날, 서울의 풍경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세상이었다.
거리마다 차려지는 빈소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아니 더 또렷이 그 날의 현실을 감정을 기운을 온 몸으로 기억해 놓고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앞으로 태어날 내 아이들에게 떳떳한 어른이 될 자신이 없었다.

장미대선과 관련한 복잡한 사안들에 관해서는 더 언급하지 않겠다. 『오래된 생각』 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이 실현하려고 했던 대한민국을 생각해 본다. 실패한 정책도 많았고 격변의 시기를 건너온 것만은 확실하다. 과연 그 기저에 어떠한 반대 움직임이 있었는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음이 미안할 뿐이다. 이해보다 실망과 오해가 더 깊었던 것 같다. 그러함에도 변함없이 마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나의 첫 대통령 노무현! 지금도 그 곳에 가면 깊게 패인 주름진 얼굴의 사람 좋은 웃음으로 모두를 반겨줄 것 같은 노무현 대통령. 전혀 다른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2016년 겨울과 2017는 봄의 대한민국에서 다시금 그를 떠올려 본다. 그가 실현하고자 했던 대한민국의 꿈을! 우리가 꿈꾸고 싶은 대한민국을!

 

 

권력기관과 담을 쌓으며 법 위의 권력을 놓아버린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는 안팎으로, 또 좌우로도 수세적인 위치에 있었다. 그래도 그를 지지해주는 세력이 있기는 했다. 그들은 인터넷 공간에서, 또 저녁 술집에서 자신의 대통령을 위해 토론하고 언쟁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오래된 생각』 180)

선출되지 않은 권력들이 선출된 권력을 흔들고 있습니다. 그게 이 나라의 현실입니다.(『오래된 생각』 202)

지난 사 년 힘들게 꾸려왔습니다. 부족하다는 생각은 늘 했지만, 그래도 제가 이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이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소명의식으로 버텨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한계에 달한 것 같습니다. 시작한 일 어떤 것 하나도 제힘으로 마무리하기 어렵습니다. 모두가 전선이고 모두가 지뢰밭입니다. 앞으로 갈 길은 더욱 험합니다.(『오래된 생각』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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