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백만 년 동안 절대 말 안 해 ㅣ 웅진 우리그림책 12
허은미 글, 김진화 그림 / 웅진주니어 / 2011년 7월
평점 :

앞으로는 다들 조심해. 안 그러면! (귀여운 꼬마의 달콤살벌한 경고)
- 허은미 글, 김진화 그림, 『백만 년 동안 절대 말 안 해』를 읽고
하루에도 수천 번 변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세상의 쓴 맛 단 맛 다 본 나이가 되어도 마음은 늘 갈대밭을 맴돈다. 하물며 이제 갓 세상이라는 큰 세계를 탐험하기 시작한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라면 어떨까. ‘넌 어려서 몰라’, ‘쪼그만 게 무슨 걱정?’ 운운하며 그들의 고민 정도는 하찮게 보아 넘기기 일쑤인데 이건 어른들만의 크나큰 착각이다. 그들도 그네들만의 고민거리가 있다. 어른이 보기에는 아주 사소한 일일지라도 아이에게는 자신에게 닥친 문제가 내일 당장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종말론보다 더 긴박한 절체절명의 위기일 테니까. 그러니 한 번만 더 자신을 속상하게 하면 ‘백만 년 동안 절대 말 안 해’라고 외칠 수밖에.
제목을 보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백만 년 동안 절대 말 안한다구? 어쩜 이리도 귀여울까, 싶어 한참을 웃었다. 아이의 생각을 정확하게 짚어낸 폭탄 발언 같은 제목부터 흥미로운 책. 무엇이 이 아이에게 이처럼 독한(?) 생각을 품게 만들었는지 호기심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백만 년 동안 절대 말 안 해』는 무한 호기심을 자극하며 나에게 왔다.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머릿속 생각들도 온통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엄마는 툭 하면 화를 낸다. 엄마 좋아하는 건 잔뜩 사면서 내가 사달라는 건 하나도 안 사준다. 몸에 나쁜 음식은 먹지 말라면서 만날만날 커피 마시고, 팝콘도 원샷 수준으로 마셔버린다. 아빠 역시 너무하다. 아빠가 늦게 까지 텔레비전 보는 건 괜찮고 내가 늦게까지 자지 않고 있는 건 용납하지 못한다. 아빠 배는 산만큼 나왔으면서도 나보고 뚱뚱하다고 놀리고, 애완용 동물 키우는 건 무조건 반대다. 이유라도 일관성이 있으면 덜 억울한 텐데 아빠 마음이란다. 공주병에 걸린 언니는 또 어떻고. 자기 껀 무조건 자기 꺼, 내꺼 역시 자기 껄로 생각한다. 너무해. 너무해. 정말 너무해. 가족 같은 건 다 필요 없다고,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고 마음속으로 폭탄선언을 해 버린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지. 뒤죽박죽 엉킨 실타래를 가만히 풀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없으면 우리 가족은 안 될 것 같다. 장수풍뎅이에게 밥을 줘야 한다. 아빠의 장난도 받아주고, 엄마 커피에 설탕도 넣어줘야 한다. 무엇보다 내가 없어졌다고 가족들이 슬퍼한다면, 너무 슬퍼한 나머지 병이라고 걸려버린다면. 이건 정말이지 생각만 해도 끔직한 일이다. 뭐, 성격 좋은 내가 한번은 참아야지. 참자, 그래 내가 참자. 그러니 앞으로는 다들 조심해. 안 그러면 백만 년 동안 절대 말 안할 거야!
주인공 꼬마 아이, 정말 귀엽지 않은가. 발랄하고 성격 좋은 장난꾸러기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따뜻함을 품고 있는 녀석. 혼자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느라 어느새 기진맥진해지지만 곧바로 긍정모드로 돌변. 아이의 고민과 걱정거리를 발랄한 시선으로 잡아낸 이 책은 그래서 재미있고 유쾌하다. 아이 혼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동안 가족들은 천하태평 그대로이지만 생각을 바꾸니 이보다 더 사랑스러운 가족은 없다.
아이의 천진난만한 고민이 우리 가족들의 면면을 둘러보게 해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가족은 보이지 않는 하나의 끈으로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족 구성원들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할 때가 많은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동안 대면 대면하며 살았던 가족들의 마음을 찬찬히 헤아려보고 싶어진다. 엉켜버렸다면 풀면 되고 보이지 않으면 보려고 노력하면 된다. 가족은 분명 그들만의 끈끈한 애정과 사랑으로 연결된 결속력 강한 이 사회 최초의 집단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