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샤베트
백희나 글.그림 / Storybowl(스토리보울)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달은 엄마가 지켜줄게, 너는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렴!   - 백희나, 『달 샤베트』를 읽고 

달. 두 마리의 토끼가 주저니 받거니 정답게 절구를 찧는 별. 절구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했고, 쉼 없이 절구를 찧는 토끼가 힘이 들까봐 가끔은 쉬어주기를 바라기도 했었다. 창틀에 턱을 괴고 목이 아프게 올려다보기도 했었고, 멋진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에 가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그때 나는 달이 보고 싶었을까, 토끼가 더 보고 싶었을까. 토끼라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데도 달나라의 토끼는 좀 더 특별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깜깜한 밤 세상을 환하게 비춰주는 신기한 달, 한없이 따뜻하고 포근한 엄마의 품 같은 달, 가끔은 엉뚱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신비로운 달. 그런 달이 녹아 없어진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고 잔인한 일. 그런데 걱정하지 마시라. 부지런한 반장 할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달 샤베트』. 제목부터 기발하다. 가슴이 뻥 뚫릴 것 같은 청량감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가만히 보자. 그런데 달... 샤베트라고? 과연 어떻게 된 일이지?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마음이 두근두근. 달만 떠올리면 괜스레 기분 좋아지던 그 순수했던 시절이 스멀스멀 되살아난다. 추억이 책장 넘기는 손을 재촉한다. 드디어 첫 장을 펼쳤는데 아하하... 이렇게 기발할 수가.

무더운 여름. 무덥다고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숨이 턱턱 막히는 찜통 같은 더위에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에어컨을 튼다. 선풍기를 함께 틀면 더 시원하다는 생각에  선풍기까지 한 자리를 차지한다. 더위가 조금이라도 들어올세라 문이란 문은 모두 꼭꼭 걸어 잠근다. 비로소 시원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머리가 지끈지끈 속이 울렁울렁. 뭔가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을까. 

달이 녹아내리고 있다. 쉼 없이 가동하는 선풍기와 에어컨 덕분에 잠시 시원함을 느끼지만 반대로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마침내 그 여파가 달에게까지 미쳐 달이 녹아내리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 하지? 걱정 마시라. 부지런한 반장 할머니가 똑똑똑 녹아내리는 달방울들을 모두 받고 있으니까. 가득 받아놓은 달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반장 할머니는 샤베트 틀을 꺼내 거기에 달물을 나누어 담고 냉동실에 넣어둔다.

그 시간에도 어김없이 돌아가는 선풍기 에어컨 냉장고. 그런데 갑자기 온 동네가 깜깜해져버렸다. 전기를 너무 많이 사용한 탓에 정전이 되어버린 것. 아아아... 갑자기 밀려드는 더위에 모두들 집밖으로 뛰쳐나온다. 그리고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환한 빛을 뿜어내는 반장할머니 집으로 하나 둘 모여든다. 마음씨 좋은 반장 할머니는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미리 만들어 둔 달 샤베트를 하나씩 하나씩 나누어준다. 신기하게도 그걸 먹은 뒤로는 더위도 싹 갈증도 싹 달아나 버린다.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 꼭꼭 닫아 두었던 창문을 열어젖힌다. 선풍기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어느 때보다 시원한 밤. 오랜만에 모두들 달콤한 꿈나라로 빠져든 시간, 다시 한 번 똑똑똑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달이 녹아내려 살 곳을 잃어버린 옥토끼 두 마리가 반장 할머니를 찾아온 것.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거의 자지러졌다. 재치덩어리 백희나 작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 녹아내린 달방울들을 받아 달 샤베트를 만든다는 기발한 상상에 한 번 놀랐고, 집을 잃고 찾아온 옥토끼의 등장에 두 번 놀랐다. 그리고 또 한 번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에 박수를 보냈는데, 그건 아직 이 책을 만나지 못한 예비 독자를 위해 비밀에 부쳐두고 싶다. 한 순간 살 곳을 잃어버려 황당한 옥토끼들. 이들을 위해 반장할머니는 과연 어떤 신통방통한 방법을 생각해 낼까. 한 번쯤 상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이가 태어나고 함께 생활한 지 어느 덧 일 년. 갓 돌이 지난 사랑스런 우리 아들. 엄마라는 값진 이름을 선물해준 소중한 아이 덕분에 나는 이전에 맛보지 못한 벅찬 행복들을 참 많이도 경험하며 살고 있다. 아이가 없었다면 몰랐을 행복 중 하나를 예로 든다면 바로 그림책을 만나는 즐거움이다. 아이의 마음과 눈높이를 가늠해보고, 어른인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그림책. 아이 덕분에 그림책을 꽤 많이 만나고 있다. 느끼고 배우는 것도 많다.

백희나 작가의 『달 샤베트』는 기발한 상상과 따끔한 일침으로 보고 느끼고 행동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그림책이다. ‘달이 녹아내린다’는 아주 무서운 상상을 재미나게 풀어낸 책. 아이에게 자연스레 에너지 절약의 필요성을 가르칠 수 있고, 어른인 나 또한 에너지 절약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어린 시절, 달을 바라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동심의 추억을 내 아이, 더 나아가 내 아이의 아이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주고 싶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미운 생각에서 벗어나 ‘나 하나부터’ 라는 기특한 생각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우리 아이들에게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는 건 거창한 무언가를 물려주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실천하는 작은 행동하나가 지구와 아이들의 미래를 바꾸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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