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장미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3
캐서린 패터슨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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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혹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
- 캐서린 패터슨, 『빵과 장미』를 읽고

     -그저 벗어나고만 싶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술에 취해 온 동네가 떠나갈 듯 고함을 질러대는 아버지가 죽도록 미웠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우는 날이 많았다.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 갈 수도 없었다. 저녁 5시 무렵이면 벌써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술주정은 밤늦도록 이어졌다. 무한 반복되는 횡설수설들. 그러는 짬짬이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드는 고함이 섞여있었다. 울다 지쳐 잠이 들면서 늘 바랐다. 어서 이 집을 떠나게 해 달라고! 다행히 그 소원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섬에 산 덕분에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선 필히 도시로 나와야 했으니까.

 여기 나와 같은, 아니 나보다 훨씬 더 처지가 좋지 않은 소년 제이크가 있다. 부랑자에 가까운 아버지와 단 둘이 살아가는 제이크는 오직 생계를 위해 학교 대신 공장을 선택한다. 그나마 받아온 돈마저 아버지의 술값으로 빼앗겨버리기 일쑤다. 모진 매질까지 당하는 날이면 한동안 노숙을 해야만 한다. 간간이 원치 않는 도둑질까지도. 이런 제이크에게 파업은 배고픔과 추위를 가중시키는 불필요한 일에 불과하다. 당장 일을 하지 않으면 아버지의 매질이 더 심해지기 때문이다.
 로사 역시 파업에 동참한 엄마와 언니 애나가 못마땅하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식을 학교에 보내고 배를 곯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로사의 입장. 한없이 자애로웠던 엄마가 투쟁으로 인해 거칠게 변해가는 모습이 싫기만 하다. 무엇보다 과열되는 파업 때문에 가족을 잃고 혼자 남게 될까봐 그것이 가장 두렵다.

 내일의 충만한 삶보다 오늘 이 하루의 안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제이크와 로사. 이들에게 1912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로렌스에서 일어난 이주노동자들의 대규모 파업은 상관하고 싶지 않은 일일뿐이다. 미국인인 것을 속이고서라도 당장의 먹을거리를 구하고 싶은 제이크, 교양있고 존경받는 미국인이 되기 위해 공부에 목숨을 건 로사. 이들의 ‘희망’은 무엇일까. 이들에게 ‘탈출구’는 무엇일까.

     -그 날도 아버지는 술을 드신 것 같았다. 평소와 다른 것은 한 손에 검정색 비닐봉지를 들고 계셨다는 것. 그 속에는 온갖 종류의 과자와 사탕, 심지어 껌까지 종류도 다양하게 들어 있었다. 그.날.은. 바로 나의 생일이었다. 막내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수 없었을 아버지는 동네 구멍가게에서 과자란 과자는 죄다 쓸어 오신 모양이었다. ‘무슨 생일 선물이 이래?’라고 생각 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최고의 선물로 기억된다. 바로 아버지의 사랑을 처음으로 느낀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날도 아버지의 술주정은 이어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오로지 투박하고 거친 아버지의 손이 건네준 검정색 비닐봉지만 기억에 남는다. ‘아, 아버지도 나를 생각해주고 계시는구나.’라는 생각에 울컥했던 기억.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뭔가가 끓어올라 뜨끈했던 기억. 참으로 따스했던 순간! 그 기억이 힘든 시간을 견뎌내게 했다. 집을 떠나온 후에도 다시 집을 찾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끈’ 역할을 한 셈이다. 온통 먹구름으로 가득했던 유년의 하늘 아래 스며든 한 줄기 빛!

 파업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먹고 입고 자는 기본적인 생존권마저 위협받게 된 아이들. 이런 아이들을 돕기 위해 버몬트주 배러에 사는 사람들이 당분간 아이들을 맡아 주기로 했다. 그 대열에 합류해 원치 않게 집을 떠나게 된 로사, 로사와 동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제이크. 둘은 남매를 가장해 제르바티씨 댁에 머무르게 된다. 집안에서조차도 추위를 걱정해야 했던 로렌스에서의 삶과는 달리 제르바티씨 집은 온기로 가득하다. 맛있는 먹을거리, 따뜻한 잠자리, 좋은 옷까지.

 파업에 상관하려들지 않는 두 아이의 입장과 파업에 목숨까지 건 노동자들의 투쟁이 선명한 대비를 이루면서 ‘빵’과 ‘장미’의 의미를 더 깊이 생각해보게 만드는 소설. 이미 100여 년 전, 미국 이주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생존권(빵)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장미)을 보장받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해 나가는 모습은 우리의 지나온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말 그대로 피비린내 나는 투쟁의 역사가 오늘의 이 사회를 만들어낸 밑거름임을 알고는 있지만 나와는 상관없다 생각했던 일. 그러나 따지고 보면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겪었던 일. 누군가는 쟁취를 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좌절을 맛봤을 것이다. 투쟁의 현장에 있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한 목소리를 냈던 시절, 그 속엔 분명 절망보다 희망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나의 일이 아니더라도 함께 아파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조차 함께 투쟁해나가려 했던 사람들. 그 시절의 끈끈한 연대는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쉬이 끓어오르고 금세 식어버리는 강단 없는 열정이 안타깝다.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습관처럼 굳어버린 우리의 잘못된 근성…….『빵과 장미』에서 보여주는 끈끈한 연대에 대해, 우리의 역사에 각인된 투쟁의 의미에 대해 한 번 쯤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물심양면으로 돌봐준 제르바티 부부의 돈을 훔쳐 달아나려고 한 제이크. 당장 죄 값을 물어도 시원찮을 상황에서 오히려 제이크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제르바티 부부. 온통 절망만으로 가득했던 제이크의 삶에 희망은 그렇게 찾아왔다. 로렌스의 파업이 노동자들의 승리로 끝나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로사. 파업 현장에서 누구보다도 열정적이고 헌신적이었던 엄마를 통해 눈앞의 ‘빵’보다 보이지 않는 ‘장미’의 의미를 알아가게 된다. 투쟁의 진정한 의미를 말이다. 겉모습으로나마 완벽한 미국인을 꿈꾸던 어린 소녀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뼛속까지 당당한 이탈리아인으로 한 뼘은 더 성장한 듯 보인다.

 ‘빵과 장미’라는 구호를 통해 우리 사회를 잠시 되돌아보았다. 일정부분은 분명 투쟁으로 일궈낸 오늘의 모습. 그 분들이 꿈꾸던 사회가 과연 이런 모습이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뜨끈해지며 송구한 마음이 든다. 행동하려 들지 않는 젊음, 연대하지 않으려는 개인, 헌신적인 역사의 가르침 앞에 무덤덤한 오늘의 우리. 개인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사회와 역사 속에서의 개인의 역할(소명) 또한 중요하다. 이 부분에 대한 입장 정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필요한 지금이다.

 제이크와 로사를 통해 유년시절로 시간여행을 다녀왔다. 정말 암울했던가 싶을 정도로 무사히 건너온 것이 스스로도 대견하다. 그 시절에 만난 한 줄기 빛은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어떠한 시련과 절망의 순간도 견뎌내게 만들었던 희망의 빛. 절망의 고통이 곧 희망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제이크와 로사도 충분히 경험했을 것이다. 한숨 돌리는 순간, 어느새 훌쩍 자라버린 자신과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빵과 장미』는 개인 혹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를 되돌아보게 만든 의미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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