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이지 않은 독자
앨런 베넷 지음, 조동섭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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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앞에서는 누구나 가슴 설레는 독자 - 앨렌 베넷,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

영국 여왕이 책에 빠져 국정업무를 소홀히 한다고? 도대체 책이 무엇이길래!


처음 책 읽기의 매력에 빠져든 것은 2007년 7월 즈음이다. 정말이지 하는 일이 무료했다. 뭔가 재미있는 게 좀 없을까 싶어 인터넷 서핑을 하기 시작했다. 그 때 눈에 들어온 것은 책읽는 블로거들. 맛있는 음식을 순식간에 먹어치우듯 수많은 책을 단숨에 읽어치우는 왕성한 독서력에 큰 충격을 받았다. 처음에는 ‘나도 저들처럼 책을 읽을 수 있어’라는 경쟁심에 책을 펼쳐 들었다. 그러다 점점 책 읽기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고, 책 읽는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생활패턴까지 바꾸게 되었다.


여기에 나처럼 어느 날 우연히 책 읽기의 매력에 빠져든 사람이 있다. 바로 영국 여왕이다. 우연히 궁 내에서 이동도서관을 발견하게 된다. 우연히 그 곳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우연히 책을 대출받게 되고 그로부터 여왕의 생활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책 대출은 누가 보아도 예의상의 행보였고, 여왕 스스로도 한 번으로 그칠 줄 알았다. 그러나 곧 모든 국정업무가 시들해질 만큼 책 읽기의 매력에 빠져들고 만다.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책을 읽는가하면 공무수행 중에도 오로지 책 생각뿐이다.


독서는 취미에 속한다. 취미에는 기호가 끼어든다. 여왕은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만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서는 곤란하다. 그렇기에 여왕의 독서는 왕가의 우려를 낳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막을 수는 없는 일. 여왕은 이동도서관의 유일한 이용객인 주방보조 노먼을 (말하자면) 여왕 전용 사서로 승격시킨다. 노먼을 통해 책을 추천받고 함께 토론도 벌인다. 책에 관해서라도 그 누구도 떼어놓을 수 없을 만큼 끈끈한 멘토와 멘티 관계를 형성하게 된 것.


비서관 케빈 경은 여왕의 책 읽기를 막을 수 없다면 대외 홍보용으로 활용하고자 마음먹는다. 이를테면 ‘여왕이 무슨 책을 읽고 있으니 국민들도 함께 읽기를 바란다’는 식으로. 하지만 여왕이 주로 읽는 책은 실생활 혹은 발전적인 차원에서 도움이 될 만한 책이 아니다(이러한 기준도 모호). 순전히 여왕의 기호에 따라, 노먼의 추천에 따라 선택된 문학 작품들이 대다수. 케빈 경에게 노먼은 눈의 가시다. 결국 여왕이 모르는 사이에 노먼을 다른 곳으로 보내고 만다. 케빈 경의 계략으로 노먼 역시 여왕을 오해하게 된다. 노먼이 사라지고 난 후 여왕은 과연 예전으로 돌아왔을까? 천만에! 오히려 책읽기는 물론 글쓰기에까지 관심을 확대해 나간다. 결국 여왕은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용단을 내리게 되는데…….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이동도서관, 그 곳의 유일한 이용객 노먼을 통해 책 읽기의 무한매력에 빠져들게 된 영국 여왕.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는 책 읽기가 생활에 얼마나 많은 활력을 불어넣는지,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영국 여왕’이라는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를 주인공으로 하여 책 읽기의 무한 매력을 거침없이 이야기하고 있는 책. 여왕도 책 앞에서는 일반 독자와 다를 게 없다. 그 점이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보다 친근하고 재미있게 읽히게 할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재회를 하게 된 노먼과 여왕. 여왕은 노먼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 한다. 책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 의외의 반전 포인트를 놓치지 마시길!


책 읽기가 매력적인 이유는 책이 초연하기 때문이라고 여왕은 생각했다.(…) 책은 독자를 가리지 않으며, 누가 읽든 안 읽든 상관하지 않는다.(…) 책은 누구에게도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 독자는 누구나 평등하다. 그런 이해는 여왕을 어린 시절로 이끌었다. 어릴 적, 브이데이 밤, 여동생과 함께 정문을 빠져나가 군중 속에 몰래 섞였던 때가 여왕에게는 가장 흥분된 순간이었다. 책 읽기에는 그런 흥분이 있다고 여왕은 생각했다. 익명이 되는 흥분,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흥분, 평범해지는 흥분, 동떨어진 삶을 살아온 여왕은 이제 자신도 모르게 그 흥분을 갈망하고 있었다. 여기, 이 책장과 이 표지들 속에서 여왕은 평범해질 수 있었다.(p.39-40)


책 읽기는 영국 여왕을 여왕으로서가 아닌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사는 것처럼 매력적이고 가슴 설레는 일이 또 있을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순간 삶은 새로움으로 가득해진다. 여왕도 우리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재미있고 유쾌하다는 추천글을 읽고 잠시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의 저자 호어스트 에버스를 떠올렸었다. 내겐 정말이지 유쾌하고 재미있고 경쾌한 시간을 선물해준 작가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 기대보다는 약했다. 그래도 책과의 사랑에 빠진 영국 여왕은 정말이지 사랑스럽고 순수한 한 명의 독자, 귀여운 할머니의 모습이다. 책을 모르던 사람이 책을 알고부터 어떤 열망을 품게 되는지, 어떤 꿈을 꾸게 되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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