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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김관오 옮김 / 아르테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삶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는 어느 순간
- 뮈리엘 바르베리,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읽고
가끔은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 채 살아가고 싶은 때가 있다. 보다 많은 인맥을 형성하고 자신을 드러내며 사는 것이 오늘날 성공의 밑거름임을 감안할 때 이것은 참으로 안일하고도 비주류적인 발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방어벽을 두르고 오로지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르네와 팔로마처럼. 이들은 왜 세상 밖으로 나오기를 거부하는 것일까. 왜 고슴도치의 가시로 자신을 중무장한 채 내면의 우아함을 애써 숨기며 살아가려 하는 것일까.
르네. 파리 그르넬가 7번지에 위치한 고급 아파트에서 27년째 수위로 일하고 있는 쉰 네 살의 아줌마다. 그녀는 평범한 수위로 보이기 위해 말과 행동을 의식적으로 가려서 한다. 자칫 방심하다 수위라는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박식함이 탈로난다면 아파트에 입주하고 있는 부르주아들의 참견과 입방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멍한 눈빛과 프롤레타리아적 이미지를 풍긴 채 ‘수위’하면 떠오르는 모습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살아가려 노력한다. 그녀의 내면에 흐르고 있는 삶의 근원이자 목적인 철학과 문학 예술 독서 등 온갖 고상하고 지적인 취향을 꼭꼭 숨겨둔 채.
팔로마는 이 아파트 6층에 살고 있는 국회의원의 막내딸이다. 유별나게 똑똑하고 영리해서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다. 부모 덕분에 그녀 역시 잠정적인 부자라 할 수 있다. 부족함 하나 없어 보이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미 인생이 설계되어 있다는 데 슬픔을 느낀다. 세상에 넘쳐나는 극심한 빈부 격차를 보며 삶의 부조리에도 일찍이 눈뜨게 된다. 하지만 아둔한 척 자신의 생각을 숨긴 채, 열세 살이 되는 6월 16일 자살할 결심을 한다. 죽을 계획을 세웠다고 서둘러 세상을 포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죽는 순간 무엇을 하고 있었냐는 것. 소녀는 가능한 한 깊이 사색하고 그 결과를 공책에 기록해 나간다. 세상 모든 움직임에도 집중한다. 어쩌면 살만한 가치가 있음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므로.
사물 혹은 현상, 이치에 대한 세밀한 고찰과 철학적 사유를 통해 삶을 통찰해내는 두 주인공. 이들은 다방면으로 풍부한 지식과 날카로운 판단력을 지녔음에도 스스로 아둔한 척 살아간다. 누구에게도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의도적인 소통의 거부. 이들이 각자 철옹성 같은 방어벽을 치게 된 것은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양분화 되는 사회적 흐름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의 것이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존중하지도 않으려는 그릇된 습성에 나름대로 반기를 든 셈이다.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두 주인공의 철학적 사유에 독자는 간간이 피로함을 느끼게 된다. 한마디로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끝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은 이유는 이들의 날 선 가시를 헤집고 들어가 감춰진 내면과 만나고 싶어서다. 소통을 거부하는 진짜 이유, 아둔한 척 살아가는 진짜 이유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5층에 새로 이사 온 가쿠로 오즈는 이 고급 아파트에서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다. 입주한 그 누구보다 부를 가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인데, 정작 오즈의 관심은 비슷한 신분의 이웃보다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수위 아줌마 르네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팔로마에게 가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볼 줄 아는 차별화된 부르주아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급물살을 탄다.
자신의 가치를 진정으로 알아봐주는 가쿠로를 통해 소통이라는 것을 시작하게 된 르네. 마침내 마음에 칭칭 동여 맺던 붕대를 풀어낸다. 새살이 돋아나고 있다. 새로운 삶이 펼쳐질 것을 예감한다. 갑작스레 날아든 슬픈 소식으로 팔로마는 생에 처음으로 고통을 경험한다. 고통이 무엇인지 겪어보지 못했기에 자신의 죽음으로 가족에게 고통을 주려했던 우매함을 비로소 깨닫는다. 다시는, 다시는 만나지 못할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순간 삶의 의미와 마주하게 된 것이다.
어떤 것이든 너무 늦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자신을 지탱해 온 세계를 붕괴시키고 새로운 세계로의 편입을 요구한다 할지라도 더 나은 발전을 위한 것이라면 서둘러 깨달음을 얻고 싶다. 익숙하지 않은 프랑스 소설, 낯선 철학적 단상들이 책 읽기를 다소 힘겹게 만들기는 했지만 가끔은 이런 책을 통해 삶을 새로운 각도로 바라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죽음의 순간 알게 되는 것들, 가까운 지인의 죽음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들. 예상치 못한 반전, 그로인한 깨달음이 마음에 한 줄기 빛을 선사해주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