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엄마 - 증보2판 나남산문선 38
고혜정 지음 / 나남출판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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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하고 자주 불러 드리세요!
- 고혜정, 『친정엄마』를 읽고


 언제부턴가 부르기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져오는 이름 ‘엄마’. 결혼을 하고 집안 살림을 하면서부터 알게 되었다. 구석구석 엄마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사실을. 식사준비며 빨래 청소 등 매일 반복되는 하찮은 일들이 실은 가족을 위한 가장 근원적인 일이라는 사실을. 엄마는 생명의 근원인 대지와 닮았다. 어떤 씨앗이 날아와 뿌리를 내리든 모두 받아들인다. 보듬고 또 보듬어 잘 커나갈 수 있도록 언제나 너른 품을 내어주신다. 남편에게 제대로 대우받지 못해도 자식이 가슴에 대못을 박아도 엄마의 가슴을 채운 흙은 세월이 갈수록 비옥해진다. 비와 바람 찬 서리를 맨 몸으로 맞았기에 더 굳건하고 오히려 풍성해진다. 그렇게 오랜 세월 자식과 남편을 묵묵히 지켜낸다. 엄마는!

 작년과 올해 우리 문단에 불어 닥친 소위 ‘엄마’ 열풍은 엄마를 주제로 한 책에 부쩍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한 권 두 권 읽기 시작해 어느 날 만나게 된『친정엄마』. 제목대로 『친정엄마』는 방송작가 고혜정님이 자신의 엄마에 대해 쓴 에세이집이다. 완벽한 서사구조로 우리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던 다 알만한 베스트셀러와는 분명 차이가 나지만, 소박하고 솔직하며 정감이 넘치기로는 이 책이 단연 돋보인다. 간간이 등장하는 삽화처럼 아무런 덧칠도 하지 않은 맑은 느낌이랄까. 책을 펼치면 ‘고향’하면 떠오르는 푸근한 우리네 엄마가 버선발로 달려와 반갑게 맞아주신다.

 때로는 궁상맞고 답답해 보이는 엄마. 엄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 중 하나는 ‘바리바리’라는 명사다. 시골보다 도시에서 더 저렴하고 좋은 것을 구할 수 있는데도 엄마의 봇짐 속에는 딸이 좋아하는 것들이 바리바리 들어앉아 있다. 자신의 몸을 바로 세우는 것도 힘든 노인네가 자라목을 해서 이고 들고 오는 짐 보따리는 매번 무겁기만 하다. 부피도 줄지 않는다. 힘드실까봐 늘어놓는 딸의 잔소리는 뒷전이고, 그 미운 입에 맛난 음식을 넣어주기 바쁘시다. 그것이 엄마의 낙이다. 힘들었던 몸도 그제서야 노곤하게 풀린다.

 사업 실패로 잔뜩 빗을 진 상황에서 돈을 벌기보다 공부에 매진하겠다는 사위. 딸이 고생할 것을 생각하면 달가울 리 없겠지만 한 푼 두 푼 모은 쌈지돈을 용돈 하라며 사위에게 찔러주는 것이 친정엄마다. 육십년 넘게 살아 오시면서도 먹어본 음식보다 못 먹어본 음식이 더 많으신 엄마. 일찍이 먹어본 적 없기에 먹는 방법조차 알지 못한다. 딸이 시켜 준 양장피를 어찌 먹을까 고민하다 나름의 방법으로 다시 요리하시는 모습은 애잔함을 더한다. 자식에게는 할 수 있는 한 세상 가장 맛있는 음식을 해 먹이면서도 정작 맛있는 음식을 사드리려고 하면 본인은 먹어본 것이 별로 없기에 맛있는 음식을 고르실 줄 모르신다.

 책이 시종일관 눈물샘만을 자극하는 것은 아니다. 주루룩 눈물을 흘리다가도 한바탕 시원하게 웃게 된다. 영화배우 제의가 들어올 정도로 끼가 많다는 고혜정님의 친정엄마는 가끔 엉뚱한 재치를 선보이신다. 밤을 지새우며 글을 쓰는 딸이 못내 안쓰럽다는 엄마는 새벽에 깨시면 늘 기도를 올린다고 하신다. 딸의 건강을 위해서? 천만에 딸네집 전기가 팍 나가서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게 해달라는 다소 생뚱맞은 기도. 노진예라는 자신의 이름이 촌스러워 딸이 놀림을 당할까봐 고심 끝에 가운데 ‘ㄴ’받침을 빼고 노지예라는 예명을 쓰기도 하신다.

 『친정엄마』에는 우리 모두의 엄마가 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 주고도 더 줄 것이 없어서 미안해하시는 엄마, 늘 남편과 자식의 그림자로 살아가시는 엄마, 희생과 눈물로 얼룩진 삶이지만 자식에게만은 언제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시는 강인한 엄마. 엄마꺼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걸 보면 답답했는데 자식을 품어보니 알 것 같다. 나보다는 네(자식)가 우선이고 너에게는 그저 다 내어주고 싶은 것이 엄마의 마음이라는 것을. 이 책을 만나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면 당장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보자. 엄마의 고단함과 적적함을 위로해 줄 한 줄기 단비 같은 자식의 목소리. 들려드릴 수 있을 때 더 자주 들려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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