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존재
이석원 지음 / 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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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보통의 존재
- 이석원, 『보통의 존재』를 읽고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입버릇처럼 말을 하곤 한다. ‘오늘은 좋은 일이 생길거야. 다 잘 될거야. 어제보다 더 좋은 하루……’와 같은. 습관적으로 자기 최면을 건다. 되도록이면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말을 내뱉어 의식을 재무장한다. 생각과 말은 조금만 틈을 주면 순식간에 부정이라는 삐딱선을 타고 겉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버리기에 늘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다. 긍정의 말은 불온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을 지탱해주는 한 줄기 빛과 같다. 의식적으로라도 그 같은 주문을 되뇌지 않으면 무언가 일이 닥칠 것만 같은!

 『보통의 존재』는 ‘언니네 이발관’에서 보컬과 기타를 담당하고 있는 가수 이석원씨의 산문집이다. 누구나 그렇듯 대중의 주목을 받는 위치에 오르게 되면 그가 행했던 과거의 산물들은 역사가 되고 기록으로 남게 된다. 언니네 이발관 5집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자 출판계 쪽에서 관심을 보인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 수년 동안 블로그에 개제해온 그의 일기가 보다 많은 사람들 앞에 공개되는 순간이다.

 언제부턴가 일기를 쓸 때 솔직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슬픔은 슬픔대로 기쁨은 기쁨대로 온전히 쏟아 내는 것이 아니라 살짝 살짝 덧칠을 하는 듯한 느낌. 누군가에게 공개할 것도 아니고 어느 누가 관심을 가지고 일기장을 들춰볼 것도 아닌데 일기를 쓰는 동안 나도 모르게 감정의 수위를 조절하게 된다. 적당히 다듬어진 정제된 이야기만을 일기장에 써내려 가는 것이다.

 허나 이석원씨는 다르다. 책에는 저자의 다단한 개인사, 불완전한 가족사 등이 자잘한 파편이 되어 울퉁불퉁한 굴곡을 만들고 있다. 독자들은 책을 읽는 동안 아직 날을 세우고 있는 이러한 파편에 마음을 베이게 될 지도 모른다. 예상치 못한 대목에서 툭툭 붉어져 나오는 솔직한 자기 고백. 맨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저자이지만 얼굴이 붉어지고 마음이 서늘해지는 것은 오히려 독자 쪽이다. 그만큼 마음을 표현하는데 있어 어떠한 겉치레도 없다는 뜻이다.

 ‘희망이 생기리라는 희망’ 또한 버린 지 오래다. 행복보다 고통의 기억을 안겨준 연애, 순탄하지 못했던 결혼 생활, 세상의 거의 모든 음식과 결별하게 만든 건강 악화, 조금은 남다른 데가 있는 가족사에 이르기까지 그에게서 희망을 앗아가 버린 요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라면 절망보다는 희망을 노래하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긍정의 말과 생각을 자꾸만 되풀이하려는 이유는 그조차 하지 않으면 삶이 너무나 처연해질 것 같아서다. 이런 나에게 이석원씨는 ‘희망’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게 만든다. ‘희망’이라는 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메아리 없는 외침처럼 공허하지 않은 희망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책을 다 읽고 한동안 멍-해 있었다. 혹독한 바람이 마음을 훑고 지나간 것처럼 아리고 스산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것은 포장이 되어 있지 않는 선물을 받아든 때와 마찬가지로 약간 당황스런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다분히 개인적인 취향이긴 한데, 선물이라는 것은 보자마자 무엇인지 알 수 있게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것보다 한차례 베일에 가려 비밀스런 분위기를 연출해야 제 맛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맨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선물도 맨 얼굴을 그대로 들여다보게 되는 나도 민망해져버린다. 존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의 준비를 할 얼마간의 시간조차 앗아가 버리는 것이므로.

 이석원씨는 그 어떤 포장도 곁들이지 않았다. 섣부른 희망을 말하지 않기에, 어떠한 경험도 미화하기 않기에 거짓이 없어 보인다. 하물며 자기 안에 꼭꼭 감춰둘 법 한 세밀한 감정들까지 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은밀하고 비밀스러워 일기장에 조차 솔직하게 쓰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보통의 존재』. 그의 글을 읽는 동안 놀랍고 당황스럽고 심지어 심란하기까지 했다. 이상한 것은 마음이 시리면서도 따뜻해진다는 것이다. 이미 어떠한 계기로 얼어붙었던 마음이 그의 글과 만나는 동안 급속 냉각을 하다, 어느 순간부터 따스하게 녹아내리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며 가슴 어느 한 켠에 묻어둔 우리들의 이야기. 누구도 쉽사리 끄집어 내지 못하는 아픈 속내를 그의 글을 통해 만날 수 있다. 해서 마음이 한없이 아려오는 동시에 따스해지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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