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안단테 칸타빌레
김호기 지음 / 민트북(좋은인상)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꿈꾸었기에 가능한 그녀의 오늘 그리고 내일
- 김호기, 『내 인생, 안단테 칸타빌레』
  




 인생의 어느 한 시기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본다면 나의 인생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세상이 우러러볼만한 성공을 거두었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열정을 다해 할 수 있는 일, 소소한 일상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벗, 세상 누가 뭐래도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 가족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내 인생, 안단테 칸타빌레』는 여성 마에스트라(바이올린 제작자, 남성은 마에스트로) 자격을 취득한 전직 바이올리니스트 김호기님의 에세이집이다. 어린 시절부터 20여년을 바이올린과 함께 살았던 그녀. 부산시립교향악단에서 활동을 하던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일이 닥친다. 왼손가락 이상. 일상생활을 하기에는 전혀 지장이 없지만 바이올린을 연주할라치면 말을 듣지 않는 것. 지금까지의 모든 순간을 바이올린과 함께했던 그녀에게 더 이상 바이올린을 켤 수 없다는 사실은 사형선고와도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좌절하는 대신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결론은 바이올린 제작자로 전향하는 것! 더 이상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없지만 자신이 만든 악기가 연주되어지는 것은 가능하다. 그것도 지금까지 자신이 섰던 무대보다 더 넓고 더 다양한 무대에서.

 이 책은 저자의 어린 시절부터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했던 부산시립교향악단 시절, 이탈리아 스트라디바리 국제 현악기 제작학교에서 마에스트라 자격증을 취득하기까지의 과정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더불어 바이올린 제작자로 살아온 11년의 세월도 반추하고 있다. 인생의 멘토인 지휘자 마크와의 추억, 늘 진한 우정으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친구 경미, 세상 어디에 있든 존재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가족, 또 하나의 가족 애완동물들... 뿐만 아니다, 이탈리아 유학시절 인연을 맺게 된 페루지아의 로사할머니, 서점 크레모나의 주인 할아버지, 세상 가장 맛있는(?) 카푸치노를 만들어주는 바(bar) 마우리치오의 부부, 현악기 제작학교 친구들까지 소소하지만 감동적인 삶의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어느 바이올린 제작자의 대단한 성공담을 만나게 될 줄 알았다. 막상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내용이 참으로 진솔하다는 것이다. 인간적이고 소탈하며 충분히 감동적이다. 분명 어느 한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고 장인의 길을 걸어가고 있음에도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대단하고 고매한 이상향이 아니다.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듯한, 읽고 있노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진정한 사람살이를 말하고 있다. 이런 마음이 드는 까닭은 그녀의 인생이 진실하고 소탈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녀 곁에 있는 사람도 그녀 주변에서 생기는 일도 모두 그녀를 닮은 듯하다. 특히 재즈음악가 로라 존스와의 일화는 마음과 마음이 소통하는 잔잔한 감동의 장으로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듯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살아간다는 건 결국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지금까지는 ‘나’라는 존재가 우선이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내 것에 집착하기보다 타인과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세상살이가 각박해져간다는 이유로 그동안 일정 선 이상은 마음을 열어놓지 않고 살았다. 닫아놓는 만큼 물은 고이고,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강물이 흘러 더 큰 강과 바다로 향하듯 진실한 마음은 언젠가는 소통을 이룬다. 김호기님의 에세이를 읽는 동안 닫아둔 마음의 빗장을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소통하기! 진정으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 세대를 넘나드는 진실한 벗 그리고 가족... 이 모두가 마음을 다해 소통하고 사랑한 결과가 아닐까. 인생의 어느 한 시기쯤을 지난 삶을 되돌아본다면 나도 이 세 가지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


'실패는 치명적인 것이 아니고, 성공 또한 결코 영원하지 않다'는 진리가 바로 그것이다. 세상에는 한 번의 성공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거만해지거나, 또 반대로 한 번의 실페에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절망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세상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으며,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게 단시간에 승부를 볼 수 있는 게임도 아니다.(p.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