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고 동맹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1
미타 마사히로 지음, 심정명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봄 햇살처럼 맑은 청춘들의 이야기
- 미타 마사히로, 『이치고 동맹』을 읽고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볼 때가 있다. 특히 사춘기 예민한 시기에 접어든 아이에게 이러한 고민은 때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어른들은 아이의 고민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아이는 그 자체로 완벽한 인격체이며 스스로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는 어른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살다보면 더 심각한 상황과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리라는 것을 그 또래 아이들은 미처 염두에 두지 못한다. 지금 현실의 문제가 가장 심각하므로.

 『이치고 동맹』은 늘 자살을 염두에 두고 사는 열다섯 살 기타자와가 또래 친구 데쓰야와 나오미를 만나면서 겪게 되는 심리변화를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는 소설이다. 기타자와는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어느 동급생의 자살소식을 접한 후로 그 친구와 그가 남긴 유언의 문구를 마음에 새기며 살아간다. 더불어 19살에 생을 마감한 하라구치 도조의 ‘스무살의 에튀드’, 17살에 자살한 나가사와 노부코의 ‘친구여, 내가 죽는다 해도’, 21살에 자살한 오쿠 고헤이의 ‘청춘의 묘비’라는 책을 탐독하길 즐긴다. 한 마디로 기타자와는 살아있지만 늘 죽음을 생각하는 불안전한 영혼을 지닌 인물이다. 집안일에는 관심 없는 아버지, 자식의 관심사보다는 성적만을 중요시하는 어머니, 공부 운동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월등한 동생. 그 틈바구니 속에서 기타자와는 말없는 외톨이로 살아왔다. 중학교 3학년이 된 그에게 진로문제가 죽음이라는 단어를 더 자주 떠올리게 만드는 절체절명의 위기로 다가온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수순.
 
 그런 그의 삶에 같은 학교 야구부 에이스 데쓰야와 시한부 소녀 나오미가 등장한다. 데쓰야의 부탁으로 문병을 다니는 동안 기타자와의 마음에는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과 죽음에 직면해 있다는 것은 염연히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 것일까. 생의 마지막 순간으로 다가서고 있는 나오미, 그녀를 오랫동안 좋아해온 데쓰야 그리고 한 소녀를 마음에 품게 된 기타자와. 이들의 이야기가 아직 찬 기운이 남아있는 봄 날, 온 힘을 다해 대지를 비추는 햇살처럼 나지막이 마음을 어루만진다. 나오미가 이 지상에 와서 살았다는 것을 오래도록 기억하자며 열다섯 살의 두 소년은 이치고(일본어로 1(이치) 고(5))동맹을 맺는다. 자살 같은 건 생각지도 말라며, 백 살까지 살아 나오미를 기억하자는 데쓰야의 제안. 살아야 할 이유는 그렇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 소설은 상당히 절제되어 있다. 죽음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감정을 격하게 만들지 않는다. 요란하지도 유치하지도 않다. 인물들의 감정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낸 수채화 같은 소설. 담담히 읽히며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청소년들의 자살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에게도 현실이다. 이미 1990년에 출간된 이 소설이 교과서에 수록되고 각종 분야의 추천 도서로 오랫동안 자리매김해 온 이유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아직 어리다고만 생각한 우리의 청소년들이 얼마나 심각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어른들 역시 아이였을 때가 있다. 어른의 잣대로 아이를 판단해서는 이해도 대화도 되지 않는다. 우리가 건너왔던 지난 시절로 돌아가 아이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결국 소통의 물꼬를 트는 이 책의 등장인물들처럼 우리도 늦지 않게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봐야 할 것이다.
 

"살아." 

"그래, 살게."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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