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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평점 :
화해로 가는 길
- 신경숙, 『외딴방』을 읽고
사람은 인생의 어느 한 시기쯤 침묵으로 일관하게 되는 절망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 누구에게라도 아픔을 주는 어떤 일을 가슴에 묻은 채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처럼 영혼의 밑바닥에 깊이 각인된 잔인한 기억! 살아가는 동안 불쑥불쑥 찾아와 평온했던 일상을 온통 엉망으로 뒤흔들어 버린다. 정면으로 승부하기 전에는 설령 정면 승부를 펼친다 해도 온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는 잔혹한 상처는 살아가는 내내 고통을 안겨 준다.
『외딴방』은 열여섯에서 열아홉에 이르는 생애 가장 꽃다운 나이에 천형과도 같은 끔직한 일을 겪은 작가가 오랜 내적 방황 끝에 스스로와 화해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열여섯,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구로공단의 동남전기주식회사 컨베이어와 영등포여자고등학교 야간반 그리고 자그마한 외딴방 한 칸이다.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온전히 지켜내기 위해 소녀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훗날, 살아가는 피로와 관계의 부재 속에 처절하게 외로워졌을 때도(p.49)’ 무언가를 열망하는 꿈이 있다면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던 소녀. 열여섯에서 열아홉으로 건너오는 사년의 시간을 온통 침묵하게 만든 사건은 그녀의 열망과는 상관없이 벌어지고 만다. 그녀를 비밀스런 아이로, 내성적이며 타인과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바꿔놓고만 사건. 딸깍하고 잠궈 버린 희재언니 방의 열쇠통은 언젠가 우물에 빠뜨린 쇠스랑처럼 그녀의 마음 밑바닥에 가라앉아 묵직하고 깊은 상흔을 남기고 말았다.
다 나은 줄 알았다. 상처가 아물어 새 살이 돋은 지 이미 오래다. 그런데도 예전과 비슷한 상처를 입게 되면 그때의 고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녀에게 희재언니 사건이 그랬듯 나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을까, 있었던 것 같다. 나를 침묵하게 만들고 나의 한 시절을 온통 암흑으로 바꿔버린 힘겨운 시련, 이 나에게도 있었던 것 같다. 있었다, 라고 단정 지으면 그 때의 일이 금세 생생하게 떠오를 것 같아 있었던 것 같다, 라고만 말해 두련다. 상처 난 자리에 약을 바르고 딱지가 앉고 그 딱지를 밀어 올리는 붉은 속살을 보기도 전에 붕대를 칭칭 감아 다시는 풀지 않았던 내 스물 한 살의 상처. 그래서 곪았을까, 그래서 더 빨리 아물었을까. 아직 나는 그 일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도 의욕도 없다. 그 때를 생각하면 머릿속이 그저 멍해져온다. 잃은 것과 얻은 것이 분명 있을진대 어떤 쪽으로든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그냥 도망치듯 잊은 채 살았다. 그럼에도 생활의 자잘한 파편들에 의해 끊임없이 상기되는 그 날의 사건들, 사람들……. 멀리 오면 될 줄 알았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줄 알았다.
소녀는 작가가 되었다. 작가가 되어 끊임없이 작품을 발표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소진하려는 듯 숨 가쁘게 달려온 시간. ‘너는 우리랑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하계숙의 한마디가 그녀를 뒤흔들어놓기 전까지는. 그녀는 그녀의 옛 친구가 생각하듯 정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무엇이 그녀를 다른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을까.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는 사년간의 잔인한 기억, 그것 때문이었다. 공장 야간학교 외딴방 그리고 희재언니. 이 중 어느 하나만 떠올려도 동시다발적으로 차오르는 기억 때문에 그녀는 그 시절의 일을 한마디도 내뱉지 못했으리라. 내내 아파만 했으리라. 노조와 회사의 극한 대립보다 유신말기의 혼란한 사회 상황보다 더 힘들게 자신을 옥죄여오는 희재언니가 있던 외딴방의 기억…….
자신도 모르게 휘말려 버린 그날의 일과 화해를 하기 위해 그녀는 힘겹게 한 걸음 내딛고 있다. 작가의 아주 세밀한 감정들까지 고스란히 녹아있는 『외딴방』은 그래서 읽는 중간 자꾸만 멈칫, 하게 된다. 서서히 마음이 내려앉는 느낌이랄까. 직접 겪은 일도 아닌데 자꾸만 마음을 후벼 파고 들어와 아프게 한다. 쉽사리 다음 장을 넘기기 힘들다. 후-하고 심호흡 한 번. 그녀는 그렇게 나의 상처를 서서히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내 지난날의 상처를 아직 ‘그 일’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녀처럼 정면 승부를 펼친 것이 아니라 이제 겨우 본질을 바라볼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외딴방』을 읽은 적이 있는 것 같다. 나도 그녀처럼 문예창작학을 전공한 문학도였고, 신경숙이라는 이름 역시 오래전부터 깊이 각인되었던 터. 그럼에도 처음 읽는 것처럼 생경하다. 방금 상처가 난 것처럼 구석구석 쓰리고 아프다. 그 때 나에게는 ‘외딴방’이 없어서였을까. 그저 타인의 일이기만 해서였을까. 한 해를 살고 또 한 해를 사는 동안 많은 일들이 곁에 머물렀다 사라져간다. 어떤 것은 흔적도 없는가 하면 어떤 것은 너무나 생생하다. 떠올리기 싫은 기억일수록 선명한 잔상을 남기는 법.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외딴방’ 을 하나쯤 간직하며 살아간다.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린 열쇠는 찾을 길 없고 자물쇠도 녹슨 지 오래다. 할 수 있는 건 있는 힘껏 문을 부수고 들어가 보는 것뿐이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오직 자신이 해야 할 일. 잔인한 상처들이 물밀듯이 밀려오겠지만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우리는 바로 이 순간 오늘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시시때때 찾아오는 지난날의 고통에서 자유로워질 이유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외딴방’을 활짝 열어놓고 보면 알 수 있겠지. 영혼이 더욱 견고해지고 앞으로의 삶이 더욱 값져 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작가의 고백처럼 『외딴방』은 사실도 픽션도 아닌 그 중간쯤 되는 글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녀에게 글쓰기가 ‘외딴방’을 뚫고 나올 용기를 주었다는 사실이다. 작가의 내면을 치유하는 동시에 책을 읽는 수많은 독자들에게 각자의 외딴방과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셈이다. ‘문학’이 맞다. ‘문학으로 인해 내가 꿈을 꿀 수 있다면 사회도 꿈을 꿀 수 있(p.206)’을 거라는 그녀의 생각에 동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