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의 여왕
백영옥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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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랄한 웃음 뒤에 숨겨진 냉혹한 진실
- 과연 무엇을 위해 아름다워지기를 바라는가?
 

백영옥,『다이어트의 여왕』을 읽고 



 

 

 

 

 

 

 

 다이어트 여왕을 가리는 서바이벌 경쟁에서 살아남은 최후의 1인에게 주어지는 상금은 자그마치 1억 원. 『다이어트의 여왕』은 치열 혹은 치졸한 경쟁이 예상되는 TV쇼의 화려한 간판을 내건 스펙타클한 칙릿 한 편이라 생각했다. 누구나 보면서 불만을 토로하지만 매 방송시간마다 본방을 사수하게 만드는 중독성 강한 버라이어티 쇼라고 해야 할까. 이런 예상은 살짝 빗나갔다. 사람들의 말초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다이어트의 여왕’이라는 TV쇼는 일종의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대신 책 전반은 주인공 ‘연두’가 겪어나가는 심리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세 번의 연애와 세 번의 실연, 인경이 만들어 낸 가상의 인물 김민정, 다이어트 여왕 준우승자에게 날아든 갑작스런 유명세, 셰프로서의 사망 선고에 가까운 신경성 식욕부진증까지 불과 몇 개월 만에 수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처음에는 이 책을 스물여덟 여자의 혹독한 성장통을 다룬 소설이라 생각했다.

 마지막 11장을 읽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다. 한 여자의 성장통이라고 단정하기에 이 소설은 조금은 더 심오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등장인물 개개인의 심리를 따라가는 동안 마주하게 되는 예기치 못한 진실. 서서히 드러나는 인간의 잔혹한 내면을 통해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반전이라 할 수 있는 ‘잔혹한 진실’과 만나는 순간, 내 안에도 숨어있을지 모를 가장 근원적인 본성을 찾아보게 만든다. 시기, 질투, 음모 같은……. 그런 면에서『다이어트의 여왕』은 트렌드를 쫒는 소설을 가장해 누구든 쉽게 접근하게 만든 다음,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시대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직시하게 만드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날씬한 것을 넘어 보다 메마르게’로 변질되어가는 이상 다이어트 열풍. 오늘날 건강을 위해 몸을 만들어가는 여성보다 아름다움을 위해(그것도 천편일률적인 말라깽이가 되기 위해) 몸을 혹사시키는 여성들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혼자만의 처절한 투쟁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개인으로 인해 결국 누군가의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린다면 분명 문제가 있을 터. 소설은 이런 현실에 대해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간의 내면에 얼마나 위험한 독이 도사리고 있는지 섬뜩함마저 든다. 타인의 아름다움과 성공에 대한 질투가 한 사람의 혀를 마비시키고 기억력 감퇴를 동반한 끔찍한 거식증에 걸려들게 만든다. 그로 인해 그동안 쌓아올렸던 셰프로서의 자격이 박탁되고 삶은 온통 내리막길로 치닫게 된다.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 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터널에 갇혀 신음해야하는지 모른다. 이런 모든 고통의 시작이 ‘그녀’들의 세치 혀에서 시작된 것이라니.
 다이어트 여왕이 되기 위해 피땀 흘리며 노력하는 도전자들의 숭고한 열정을 미화하기보다 경쟁자를 물리쳐야 비로소 살아남을 수 있는 서바이벌 게임의 냉혹한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다이어트의 여왕』. ‘공개적으로 타인을 비난’하는 것이 허용되는 비극의 산실을 들여다보는 동안 우리는 깨닫게 된다. 몸에서 살이 빠져 나가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정신이 맥없이 빠져나가는 도전자들을 통해 인간의 잔인한 본성을.

발랄한 웃음 뒤에 숨겨진 의뭉스러운 미소를 보았다. 현재를 살아가는 자연스런 방어기제, 나 혹은 당신의 모습일지도 모를 그런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단, 오해는 마시길. 이 책이 시종일관 무거운 주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손에 들고 읽기에는 다소 방대한 분량이지만 순식간에 읽힌다. 한 마디로 재미있다. 자꾸만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소설. 리뷰도 소설만큼 재미있게 쓰고 싶었으나 장황한 사족만 늘어놓은 것 같다. 아무쪼록 읽어보더라도 후회는 안할 만한 매력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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