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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해피 스마일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절판


아, 정말 그러고 싶진 않았는데 결국 책을 찢고(?)야 말았다.
이 책의 7가지 비밀 중 하나인 절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좌선하고 있다는 부처님을 찾아낼 요량은 아니었다. 여기 어디쯤 있겠거니 생각하고 뜯어볼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푹, 하고 내지가 통째로 떨어져 나가 버렸다. 책을 오른쪽 왼쪽으로 열심히 기울이며 미확인 동물을 살펴보는 재미에 너무 골몰한 탓이다. 이런!
좌선하는 부처님을 만나서일까? 책을 찢었다는 모종의 일탈감 때문일까? 왠지 모를 웃음만 나왔다.

[해피 해피 스마일]은 요시모토 바나나가 일본의 인기 웹사이트 ‘호보 일간 이토이 신문’에 연재했던 단편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낸 에세이소설이다. 세 살짜리 아들을 키우면서 겪었던 에피소드와 주변 인물에 얽힌 이야기가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내가 생각하는 보통의 에세이는 감동과 깨달음을 동반한다. 작가의 연륜과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배어있어 종종 깊이 있는 사색을 이끌어 낸다. 같은 사물을 보고 비슷한 상황을 겪어도 전혀 다른 의미를 포착해내는 작가들의 능력에 감탄하기도 한다.
[해피 해피 스마일]은 조금 다르다.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들, 특별할 것 없는 사소한 이야기들만을 담고 있다. 교훈도 없고, 감동도 없다. 그런데 스멀스멀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평범한 일상이 반짝반짝 빛나 보이는 느낌이랄까!

어라, 이게 뭐야?
책을 대면한 나의 첫 반응은 급 실망 모드로 바뀌었다. 가로 15cm, 세로 10.8cm 의 딱 손바닥만 한 크기의 판형. 아무렇게나 쓱쓱 그려낸 듯한 유아용 수준의 순진무구형 일러스트까지. 책이 아니라 마치 장난감 같았다. ‘작가가 요시모토 바나나인데, 뭔가 있겠지’ 라는 생각에 마음을 다독이며 읽기 시작했다.

책이라고 하면 자고로 훼손해서는 안 되는 고귀한 물건이라 여겨왔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책을 사랑하는 독자가 암암리에 세워둔 이 같은 금기를 보기 좋게 무너뜨려 주었다. 일곱 가지 비밀이 그것인데, 하나 둘 따라하다 보면 책은 금세 너덜너덜(?)해질 위기에 처한다. 책을 이렇게 함부로 다뤄본 적이 있었던가? 단연코 없다(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놀이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이 책은 겉보기에는 허술한 듯 대충 만들어진 듯한데, 일본의 유명 북 디자이너가 제작했다고 한다. 책 속에 숨어있는 비밀을 찾아 헤매는 동안 디자이너의 의도를 조금은 알아챌 수 있었다. 우리가 늘 겪는 평범한 일상도 생각하기에 따라(혹은 바라보기에 따라) 아주 재미날 수 있다는 작가의 생각을 북 디자이너도 함께 하고 있는 것 같다. (유아 전용 책도 아닌데) 책을 놀이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니. 특별한 발상이 신선하다. 딱히 어디에 구속된 것도 아닌데 자유로워진 느낌이 든다. 책이라 하면 늘 애지중지 여겨왔는데 유희도 될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 여기에 꼬맹이(작가의 아들) 특유의 엉뚱 발랄한 시선이 더해져 유쾌함은 배가 된다.

“아주 자잘하고, 딱히 어디에 도움 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반짝 빛나는 재미난 일들. 금방 잊힐지라도 재미난 일.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지만 그렇다고 거창하게 얘기할 거리는 못 되는 일들. 그런 얘기들을 조금씩 모아 보았습니다.”

작가는 후기에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이 말이 정답이다. 책을 읽는 동안 어떠한 감동과 깨달음을 얻지 못해도 좋다. 복잡하던 머리가 단순해지고, 마음이 유들유들 편안해지면 그 뿐. 평범함 속에서 블링블링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낸 이 책은 그래서 더 특별하다.

(※ 단, 책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기본적인 판형의 책만을 고집하시는 분들은 사이즈를 확인하신 후 구입하셔야 덜 당황하실 겁니다.)

- '해피해피 스마일'에 숨겨진 7가지 비밀 따라잡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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