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리뷰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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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이네 집 - 작지만 넉넉한 한옥에서 살림하는 이야기
조수정 지음 / 앨리스 / 2009년 1월
지난 주말 남편과 함께 낚시를 다녀왔다. 낚시터에 가는 날이면 언제나 책을 챙겨 든다. 남편은 물고기를 낚고, 나는 주옥같은 문장들을 낚는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속에서 각자의 취미를 즐기는 것! 서로 취향이 다른 우리 부부가 사는 방식이기도 하다. 산들 불어오는 바람에 호수 이 끝에서부터 저 끝까지 잔물결이 밀려나길 반복한다. 숲 너머 먼발치에 아파트가 보이고, 더 아득히 차들이 오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세상의 어떤 소음도 주인공이 될 수 없는 낚시터. 그곳에서는 오직 새소리, 바람 소리, 물결 소리만이 주인공이 된다.
이번에 가져간 책은 [율이네 집]이다. 이 책은 리빙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조수정씨와 남편이 아들 율이와 함께 한옥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한옥에 살기에는 다소 젊고, 옛것을 고수하기에는 직업상 약간의 괴리감이 느껴지는 이들 부부.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는 사이 이런 얄팍한 편견도 곧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살아가기에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란 없다. 조화를 이루기 나름이다. 이들은 기존 한옥의 형태를 최대한 유지한 채 필요한 부분만을 수리해 나갔다. 그것도 최대한 한옥스럽게.
때로는 인위적으로 자연을 가져다 놓으려다 실패하기도 한다. 푸른 잔디가 펼쳐지는 마당이 로망이었던 저자는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당에 잔디를 깐다. 좋은 것도 한 순간. 잔디를 보호하기 위해 디딤돌을 놓아야 했다. 마음대로 걸어 다니거나 자전거를 타야하는 것도 일찌감치 포기해야 했다. 그저 보기에만 좋은 푸른 마당.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짧았던 봄, 딱 그만큼의 푸름을 자랑하고는 잔디는 여름 장마와 함께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의 서툴고 미흡한 관리 때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짧은 시간에 완벽한 자연을 얻으려 했던 인위적인 방법이 문제였으리라.(p.97)
그렇게 마당은 초라한 모습만 남긴 채 사라지는가 싶었다. 가을이 되면서 이름 모를 풀들과 이끼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비로소 자연스러운, 마당다운 마당이 되어가고 있었다.
[율이네 집]은 이처럼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 자연스러운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를 알게 해주는 책이다. 손수 집을 고쳐나가는 일들부터 마루, 부엌, 안방, 아이 방, 마당 이야기, 엄마의 소품, 아빠와 아이의 요리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러움의 묘미와 마주하게 된다. 흙에서 돋아나는 생동감, 푸른 생명이 전해주는 경이로움, 나무가 발산하는 편안한 기운에 젖어들기도 한다. 바른 먹거리와 바른 쓸거리까지도 꼼꼼하게 따져보게 만드는 한옥에서의 삶. 집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뛰어다니지 마라, 낙서하지 마라, 정리 좀 해라 등등의 잔소리로부터 자유로워진 아이는 또 얼마나 아이다운 생명력을 발산하는지.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 사람을 가장 사람답게 만드는 집은 그래서 중요한 것 같다.
올 봄, 마당에 자리 잡은 조그마한 텃밭에 상추와 파 씨를 뿌렸다. 봉선화도 심었다. 너무 깊게 심었던지 올라오는 데 한참이나 걸렸다. 한번 싹을 띄운 상추와 파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고 있다. 봉선화도 조금씩 움트고 있다. 매일 아침, 마당을 내다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몇 줄 심지 않는 이것들이 전해주는 감동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자연을 반가워하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허겁지겁 자연을 찾아다니며 가까이 둘 수 없음을 애달파하기도 한다. 남편이 낚시터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내가 마당에서 생동감을 느끼는 이유는 자연과 함께 호흡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은은한 빛이 스며드는 ‘율이네 집’은 그래서 더 부럽다. 집안 어디에 있든 바람과 마주할 수 있고, 어디를 가든 빛이 따라 다니는 집. 자연과 사람의 경계를 허물고,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허문 자리마다 넉넉한 웃음이 묻어난다. 누구나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집, 자연의 집 한옥은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피워내고 있다.
조수정씨는 이 책을 준비하면서 과연 자신이 책을 내기에 합당한 사람인가라는 의문에 조금은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책에 담긴 이야기들이 그녀와 그녀의 삶을 실제보다 더 그럴싸하게 만들어 버린 것 같다는 생각에.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와 다른, 조금은 특별한 이야기를 간직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기쁨이 된다. 그녀가 한옥에서의 삶을 꿈꾸고 이루었듯 우리는 각자의 삶을 꿈꾸고 이루어 나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