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덧나지 않게 상처를 치료해주는 기적의 오두막
 - 윌리엄 폴 영, [오두막]을 읽고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아픔을 묻어 둔 오두막을 한 채씩 간직하며 살아간다. 은밀하고 비밀스런 구석에 숨겨둔 이 오두막은 빛조차 스며들지 않아 으스스하다. 혼자서는 열어볼 엄두조차 내기 힘든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 그렇다고 누군가 대신 열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오두막의 문을 이제 그만 열어 보라. 삐걱대며 열리는 문 사이로 한 줄기 빛이 번져올 것이다. 평생 느껴보지 못한 온화한 그 기운에 얼어붙었던 마음도 녹아내릴 준비를 한다.
 아픔을 씻어낸 자리에는 그만큼 기쁨이 들어찬다.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에 비로소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슬픔은 묻어둔다고 해서 저절로 치유되는 것이 아니다. 괴롭고 힘들더라도 한번은 정면으로 바라봐야 한다. 치유와 화해는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한번쯤 불가사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성적 판단과 과학적 논리로는 도저히 증명되지 않는 신비한 현상을 겪고 나면 보이지 않는 힘의 존재를 어느 정도 인지하게 된다. 굳이 종교인이 되지 않더라도 그러한 경험은 삶에 작은 변화를 몰고 온다. 느낌표보다 더 많은 물음표를 던지는 초자연적 현상들을 나는 어디까지 긍정하고 어디까지 부정해야 하는 것일까.

 [오두막]을 읽는 내내 수많은 물음표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느 날, 맥에게 날아든 파파(맥의 아내는 하나님을 ‘파파’라 부른다)의 편지 한 통. 미시(막내 딸)가 살해된 오두막으로 오라는 하나님의 메시지다. 하나님이 편지를?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면서도 어느 새 맥은 오두막을 향해 가고 있다. 그때부터 시작되는 환상적인 경험과 대화들. 믿기 힘든 이 일들을 작가는 실화라고 밝히고 있다. ‘뒷이야기’를 읽고 나서야 대필 작가라는 소설적 장치가 사용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작가가 픽션임을 밝혔음에도 나는 이 소설이 픽션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실재와 실재하지 않음의 모호한 경계에 걸려들고 만 것이다.

 [오두막]은 내 마음에 회오리를 몰고 왔다. 회오리는 작은 티끌조차 남기지 않고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쓸어간 후 텅 빈 폐허만을 던져준다. 그러나 나에게 몰아닥친 회오리는 마음속에 부유하던 찌꺼기들을 몰아내고 깨끗한 세상을 안겨 주었다. 오해와 불신, 시기와 질투, 원망과 분노, 두려움과 조급함을 몰아낸 자리에 봄 햇살처럼 따사로운 온기가 들어찬다.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질 줄 알았다면 애초에 펼쳐들지 않았을 이 책이 신비한 마법을 부리고 있는 중이다.
 짐작대로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오두막]을 읽고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당장 기독교인이 될 것도 아니다. 단 하나, 마음에 미세한 변화가 찾아온 것만은 확실하다. 큰 의미 없이 여겨졌던 용서 관계 사랑 믿음 등의 단어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옴을 느낀다.

 자식을 죽인 범인을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을까. 용서란 어떤 의미이며, 거기에 진정성이 더해진다는 것은 또 어떤 느낌일까. 몇 해 전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에 관한 짤막한 신문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유영철에게 잔인하게 살해된 자식의 부모가 그를 양자로 받아들였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믿을 수 없고 믿기지도 않으며 내 상식과 도덕적 판단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찬찬히 되짚어보니, 그 알 수 없는 일 배경에는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투영되어 있었던 것도 같다.
 그때 잠깐 스쳤던 물음표가 [오두막]을 통해 어느 정도 느낌표로 바뀌는 듯하다. [오두막]의 주인공 맥 역시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 딸의 시신조차 찾지 못한 상황에서 맥은 범인을 용서하게 된다. 용서함과 동시에 자신을 짓누르고 기쁨을 파괴하던 것으로부터 해방된다. 맥은 어린 시절 자신을 학대하던 아버지도 용서한다. 미시의 죽음을 자책하던 케이트의 아픔도 어루만져 준다. 용서가 화해를 불러오고 사람 사이의 소통과 관계의 물꼬를 열어준 셈이다.

 지금까지 나는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의무와 책임, 구속과 복종이 없는 ‘자유로운 관계’를 유지해 왔던가. 아닌 것 같다. 어떤 관계든 불필요한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오직 믿음과 사랑으로 충만한 관계, 진심으로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관계는 아니었던 것 같다. 관계의 회복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서서히 떠오른다.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잔악무도한 연쇄살인범에게 아이를 빼앗긴 아비가 고통의 긴 수렁을 건너오는 과정에서 ‘오두막’이 하나의 전환점이 되리라 생각했다. 예상은 적중했으며, 이 단순한 논리로는 감당하지 못할 엄청난 비밀 또한 숨겨져 있다. 직접 읽어보지 않는다면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들. 읽어본다고 한들 모두 다 이해할 수는 없는 이야기들. 그럼에도 나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비종교인인 나로서는 읽는 중간에 덮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절대자에 대해 막연히 의구심을 품은 채 한 쪽 구석에 던져놓기에는 절절하게 다가오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처절한 고통을 겪는 맥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 덧 치유의 길로 들어선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고백하건대 나는 이 책에 나오는 대화 전부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아마 평생이 가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대신 마음 한 자리가 누군가 어루만진 것처럼 따스해져 온다. 그 온기로 내 마음의 오두막에 불을 지필 수 있을 것 같다. 어둠 속에 몰아넣고 잊은 듯 살았던 크고 작은 상처들. 이제 그 상처들을 끄집어내 소독을 하고 약도 발라줘야겠다. 딱지가 앉고 새 살이 돋는 동안 경험하게 될 일들을 떠올려 보니 벌써부터 설렌다.
 
 [오두막]을 통해 나는 수없이 덧나고 곪아있는 내 안의 상처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 상처를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나 자신과 먼저 화해를 한 후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겠다. 방법은 이미 나와 있다. 그 방법을 따라 실천하는 일만 남아있을 뿐이다.
 
    덧나지 않게 상처를 치료해 줄 자신만의 오두막을 지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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