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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 튜더 클래식 03: 코기빌 마을 축제 - 코기빌 시리즈 1 ㅣ 타샤 튜더 클래식 3
타샤 튜더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햇살 같은 타샤 할머니의 동화 마을 코기빌
- 타샤 튜더, [코기빌 마을 축제]를 읽고
지난 겨울, 꼼짝도 하기 싫던 어느 추운 날, 창밖으로 비치는 햇살이 유난히 밝고 싱그럽게 느껴졌다. 뭔가에 홀린 듯 외투를 껴입고 밖으로 나갔다. 쌩하고 바람이 불었다.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왕 나왔으니 광합성이나 해볼 요량으로 햇볕 드는 자리를 골랐다. 도저히 바람을 맞고 서 있을 자신이 없어 뒤돌아섰는데 태양까지 등지고 말았다. 두 손과 얼굴이 금세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그만 들어가 봐야겠다’ 라고 인내심이 얼마 못 버티고 바닥을 드러내는 순간, 어디선가 따스한 기운이 감도는 듯했다. 겨울 햇살이 칼바람을 뚫고 등으로 다닥다닥 내려앉고 있었던 것이다. 한번 점화된 온기는 체온과 맞닿아 어느 정도 훈훈함을 유지시켜 주었다. 온 몸이 떨려오는데 등허리에서는 온기가 느껴지다니. 신기한 경험이었다. 겨울날, 한 줄기 햇살의 위력이 그렇게 강할 줄은 몰랐다. 마치 타샤 할머니를 처음 만난 날처럼 마음까지 따스해져왔다.
[코기빌 마을 축제]는 [코기빌 납치 대소동]과 [코기빌의 크리스마스]로 이어지는 ‘코기빌 시리즈’ 중 첫 번째 책이다. 타샤 튜더의 대표적인 그림동화로 코기, 토끼, 고양이, 보거트 등이 함께 모여 사는 평화로운 시골마을 코기빌의 축제 풍경을 담고 있다. 주인공은 당연히 타샤 할머니가 생전에 가장 사랑했던 동물 코기다. 다리가 짧고 꼬리가 없는 여우 빛깔의 개라고 한다. 첫 장을 펼치기 전부터 독자를 반기는 것 역시 코기 가족들이다. 타샤 할머니는 50여 년 간 이 개를 길렀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표정이 어찌나 천진난만하고 귀여운지 이 녀석만 보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어느 곳이든 불청객이 있기 마련. 코기빌 마을에도 톰캣이라는 고양이 한 마리가 말썽이다. 축제날 하이라이트로 염소 경주 대회가 열린다. 상금과 트로피가 걸려 있는 만큼 경쟁 또한 치열하다. 이 경기의 최대 라이벌은 톰캣과 칼렙이다. 칼렙은 코기를 모델로 한 브라운 가족의 사랑스런 아들로 순진무구하고 열정적인 캐릭터다. 마을 사람들 모두 축제로 들떠 있을 때 톰캣만이 우승을 위해 은밀하게 음모를 꾸민다. 칼렙은 과연 이 난관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결론을 미리 밝히면 재미없으니 이쯤에서 함구!
[코기빌 마을 축제]는 타샤 할머니가 옛날 미국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열렸던 축제를 회상하며 쓴 작품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림을 보면 직접 경험해본 일처럼 생동감이 넘쳐난다. 특히 축제날의 오밀조밀한 풍경은 정밀묘사처럼 세밀한데, 어느 각도에서 들여다봐도 모두가 주인공인 마냥 표정들이 살아있다. 한 발만 들여놓으면 나도 축제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풍성하게 피어오른 꽃과 푸른 나무,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한가로이 노니는 오리들. 자연에 둘러싸인 평화로운 시골 마을로 당장 달려가고 싶어진다.
이 책은 십여 분 정도면 다 읽을 수 있지만 최대한 느리게 읽어 나갔다. 세 번 정도 읽고는 그림을 따라 내용을 찬찬히 떠올려 보았다. 등장인물의 표정에 따라 즉석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활자를 쫒아갈 때는 발견하지 못했던 작은 표정까지 모두 눈에 들어온다. 글을 위한 그림이 아닌,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타샤 할머니.
할머니를 처음 만난 건 [탸샤의 특별한 날]을 통해서이다. 이 책은 1월부터 12월까지 가족과 마을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축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린 아이들이 직접 만들고 기르고 참여해서 선보이는 갖가지 축제들. 우리에게도 몇몇 축제가 있다. 생각해보면 직접 참가해 본 전통방식의 축제는 단 하나도 없다. 기억에 남는 거라곤 학교에서 주최하는 운동회가 전부다. 그런데 타샤 할머니는 후손들에게 자신이 어린 시절 해 오던 축제를 손수 가르쳐 주셨고 또 책으로 남기셨다. 텔레비전을 통해 축제를 이어가는 그녀의 자녀와 손주들을 본 적이 있다. 그 아이들의 어린 시절은 추억으로 가득할 것이다. 축제를 준비하는 동안 추억이 쌓이고, 그 추억 속에서 공동체 의식과 상상력을 키워나갈 것이다. 나에게는 없는 어린 시절. 내 아이에게도 없을지 모를 그 어린 시절. 책을 읽고 텔레비전을 보는 내내 부러웠다.
그러는 동안 한 가지 목표가 생겼다. 내 아이에게는 ‘이야기’를 만들어주자고. 어른이 되어서도 추억할 수 있는 ‘이야기 거리가 있는 어린 시절’을 만들어주자고. 타샤 할머니만큼은 할 수 없겠지만 노력해 볼 생각이다. 내 아이가 자라서 혼자 지낸 시간보다 아이들과 함께 어울렸던 한 때를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다. 컴퓨터 게임보다는 자연을 가까이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그 속에서 할 수 있는 놀이를 아이와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
타샤 할머니를 생각하면 마음 한 자리에 햇살이 들어차는 것만 같다. 맨발로 정원을 가꾸시던 그 느릿한 걸음과 다정한 손길이 떠오른다. 자연과 동물을 사랑한 타샤 할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책들. 언제 만나더라도 기분이 좋아진다. 타샤 튜더는 나에게 작가이기보다 한 사람의 ‘할머니’이다. 체구는 가녀리지만 마음만큼은 온 세상을 다 품고도 남을만한 분. 할머니가 만들어준 코기빌 마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제 이 마을에서 어떤 납치 소동이 벌어질지, 크리스마스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기대된다. 얼른 다음 책들을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