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다시 오지 않을 아름다운 시절을 그리며

  세상의 모든 소리들이 사그라드는 새벽녘, 홀로 깨어 침묵 속에 잠겨 본 적이 얼마나 되었는가? 멈출 줄 모르는 생각과 고민들로 수많은 밤을 지새우고 또 지새웠던 청춘의 한 때. 앞날에 대한 걱정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답도 없는 질문들을 끝없이 던지곤 했었다. 그 때는 꿈이 있었고, 꿈을 꿀 줄 알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었던 것 같다.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그 꿈에 부풀어 온종일 설레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을 테지. 인생의 어느 윤곽도 확실하지 않던 시절, 자신과의 대화는 나를 살게 하는 힘이 되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어른이 된 지금은 오히려 이런 것들과 소원해졌다. 고요한 마음으로 자신과 마주한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세상의 소음과 잡음에 익숙해져 정작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방법을 잊어버린 건 아닌지.

 [개밥바라기 별]은 청소년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일곱 명의 인물을 통해 성장 과도기에 놓인 청춘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야기는 베트남 파병을 통보받고 잠시 휴가를 나온 주인공 유준에게서 시작된다. 흥미로운 것은 화자의 이동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되는 설정이다. 유준이 회상하는 청소년기의 한 때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그와 더불어 같은 시기를 보낸 여섯 명의 각기 다른 시선이 더해지면서 이야기는 생동감 있게 살아난다.

 학교에는 세 가지 부류의 학생들이 존재한다. 학생이라는 본분에 충실한 우등생, 학생이라는 신분에 충실한 모범생, 학교라는 제도권 교육과는 도무지 체질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주변인,이 바로 그들이다(주변인 중에는 문제아(낙제생) 쪽으로 넘어가는 또 하나의 부류가 존재한다). 이 소설을 만나게 되면 누구라도 자신의 학창시절을 떠올려 보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학교를 빛내는 우등생이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있는 듯 없는 듯 제 자리를 지키는 모범생이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학창시절이라면 떠올리기도 싫은 주변인, 혹은 문제아였을 것이다. [개밥바라기 별]은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청춘들의 방황과 고뇌를 담고 있다. 부모님 세대가 겪었고 내가 겪었으며 내 아이가 겪게 될 인생의 어느 한 시절. 책장을 넘어 우리 가까이에서 늘 되풀이 되고 있는 그런 이야기인 것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엉거주춤 뒤로 물러서는 법이 없다. 무단결석, 자퇴, 퇴학, 무전여행, 자살 시도, 출가 시도 등 그들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은 다소 격정적이다. 마치 일반적인 잣대를 벗어난 낙오자들의 이야기 같다. 허나 이것이 잘못된 길이라고 누가 섣불리 단정 지을 수 있을까. 길은 걸어본 사람만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 잘못된 길도 걸어봐야 훗날 지름길을 찾아낼 수 있는 혜안을 터득하게 된다. 선택에 따라 행동하고, 행동을 통해 결과가 주어진다. 그 결과는 또 다른 과정에 이르기 위한 연결고리일 뿐 인생의 최종 결과물은 아닌 것이다. ‘누구든지 오늘을 사는 거야(p.257)' 라는 대위의 말처럼 오늘 이 순간을 살아가는 마음에 진정성이 있느냐 없느냐가 어떤 길을 걸었느냐 보다 더 중요하다. [개밥바리기 별]은 한 번 읽고 덮어 놓아야 할 책이 아니다. 읽고 또 읽어야 하는 이유는 이러한 진정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굴곡 있는 삶을 선택한다. 녹록치 않은 인생이지만 각자의 진정성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으므로 그 시절이 찬란하게 기억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순간에 회한덩어리였던 나의 청춘과 작별하면서, 내가 얼마나 그 때를 사랑했는가를 깨달았다(p.31)는 유준의 고백처럼 평생을 사는 동안 청소년 시절만큼 빛나게 추억될 순간이 또 있을까 싶다. 잘 적응했든 아니면 부적응자로 다른 길을 걸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자아를 찾아가고,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책임을 배워가는 시기. 무엇을 하든 처음일 수 있었고, 처음이기에 순수할 수 있었다. 그때의 열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밤바다를 비추는 등대처럼 인생의 한 시절을 언제까지나 밝혀주고 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세월에 아무리 휘둘려도 자신을 바로 세울 수 있는 든든한 힘을 우리는 그때 이미 얻은 셈이다.
 
 한 달 만에 집에 돌아오자 이제 다시는 소년으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 같(p.183)다는 유준의 말처럼 우리는 다시는 어린 아이로, 청소년기로, 청년기로 되돌아갈 수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어른’이라는 최종적인 타이틀. 그래도 그 시절에 꾸었던 꿈과 고뇌의 흔적을 되짚어볼 수는 있다.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 심지어 목숨조차 걸고자 했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가만히 떠올려 보자. 아직도 가슴에 불을 지피는 무언가가 남아있다면 적어도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 시절 ‘무엇’ 때문에 하지 못했던 ‘어떤 일’을 지금도 ‘무엇’ 때문에 하지 못하고 있다면, 어쩌면 앞으로 영원히 그 일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유준과 영길, 인호, 상진, 정수, 선이, 미아로 대변되는 청춘들이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들을 더 늦기 전에 나에게도 던져봐야겠다.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늦은 때란 없다. 불같이 타오르는 열정에 치기를 빼고 지혜를 더하면 된다. 지금은 조금 더 현명하게 조금 더 체계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경험이라는 재산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 목마르고 굶주린 자의 식사처럼 맛있고 매순간이 소중한 그런 삶(p.261)을 찾아야겠다. 살아 있음이란, 그 자체로 생생한 기쁨(p.257)인 것. 삶의 활기(p.274)를 찾기 위해서라면 몇날 며칠을 꼬박 지새우고라도 행복할 것 같다. 내 청소년 시절을 오롯이 떠올리게 만든 이 소설로 나는 또다시 열정을 불러일으킬 힘을 얻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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