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
안드레아 라우흐 지음, 한리나 옮김, 파비오 데 폴리 그림 / 느림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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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단비같은 동화

어린 시절, 휘영청 달이 밝은 어느 날, 달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왜, 한가위에만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어야 하지? 달은 늘 우리 곁에 있는데, 왜 소원은 일 년에 한번만 빌어야 하냐구. 초승달일 때 소원을 빌면 달이 차오르면서 내 소원까지 함께 품어 줄 텐데... 어린 나는 매일 달을 보며 소원을 빈다. 드디어 보름달이 떠오르면, 꼭 소원이 이루어질 것만 같다. 누군가 나에게 이런 동화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면 달은 특별한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늘 꿈을 간직한 소녀가 되지 않았을까.

나이가 들면서 달을 잊고 살았다. 낮에도 하늘 한 번 올려다보기 힘드니 밤에는 오죽할까. 그만큼 여유가 없고, 마음은 메말라 가는지도 모른다. 이런 내게 『달밤』이 찾아왔다. 

깊은 밤, 연못 위로 달이 떠오르면 숲속에선 한바탕 잔치가 시작된다

쉬잇... 드디어 달님이 연못 위로 떠올랐어요.
스르륵... 반가운 마음에 물뱀이 펄쩍 뛰어오르다 그만 미끄러졌네요.
피우우... 때마침 나비가 연주를 시작했어요. 달님에게 닿으라는 듯 두 날개로 힘차게!
톡,톡,톡... 보름달 아래로 살포시 이슬이 내려앉고 있어요.
풍덩... 바다에서 이사 온 문어가 달님 사이로 몰래 자기 모습을 비춰보다 숨어버립니다.
으르렁... 목이 말라 연못으로 나온 표범이 달님을 잡으러 앞발을 힘껏 뻗어보네요. 저런 바보!
아흠... 새가 먼 하늘 달님을 쳐다보네요. 달님에게로 날아가고 싶지만, 지금은 잠이 우선.
찍찍... 곡예사 생쥐, 달님을 공삼아 재주를 부리며 꿈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죠. 꿈에 관해서라면 수다쟁이거든요.
그르렁... 비밀인데요, 연못에 용이 살아요. 저 용은 언젠가 한 번 달님을 깨물어 본 적이 있답니다. 무슨 맛인지 궁금했다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연못 속으로 들어가 버리네요.
뻐끔뻐끔...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며 물 위로 물고기가 솟아올라요. 어부들이 돌아간 지금이 바로,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는 시간이거든요.
흠흠... 이 좋은 향기는, 달맞이꽃! 달빛 아래 활짝 꽃잎을 피우고 있네요.
뿌우우... 숲 속 음치대장 코끼리도 놀러왔어요. 긴 코로 물을 뿜어대랴 노래하랴, 바쁘다 바뻐. 음치만 아니면 참 좋으련만.

『달밤』에 나오는 열 두 편의 동화를 한 편의 이야기로 엮어 보았다. 얼마나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지. 누구라도 읽어보면 입가에 미소가 번질 것이다. 읽는 것은 찰나지만 그 여운은 영원처럼 오래 남는다. 미래의 내 아이에게 이런 상상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다. 달이 떠오른 어느 날, 함께 달을 보며 ‘이 순간 무얼 하고 싶니?’ 라며 물어봐 주겠다. 그때 아이가 이 숲 속 친구들을 떠올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 세상 모든 것과 친구가 되고픈 순간이 있었다. 모든 것과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 나무 새 달 바람... 어떤 것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내 이야기를 시작하면, 네 이야기가 들려오고,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었다. 달밤의 숲 속 친구들처럼 모두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열 두 편의 동화? 열 두 편의 동시를 만나다!

이런 책이 있다니! 첫 장을 넘기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이런 책이 있어서 감사하다고 나는 진심으로 되뇌었다. 읽고 또 읽기를 반복,하면서 연못가로 모여든 숲 속 친구들의 행동이 눈에 그려질 듯 선명하게 떠올랐다. 달빛을 받아 온 몸을 반짝이는 물뱀, 밤하늘을 향해 날개짓하는 나비, 풀잎 나뭇잎을 가만히 적셔주는 이슬, 뽐내기 좋아하는 문어, 어리숙한 표범, 졸음을 못이기는 새, 꿈 많은 생쥐, 호기심쟁이 용, 헤엄치기 좋아하는 물고기, 달빛 아래 활짝 핀 달맞이꽃, 숲 속 음치대장 코끼리, 이 모든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을 달님. 

총 열 두 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달밤』은 동화책이지만, 동시를 읽는 느낌이 든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각기 다른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마치 살아있는 듯 생생하다. 이들의 특징적인 모습과 행동이 단문 속에 유쾌하고 친근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마지막 문장에 의성어 의태어를 사용해 한껏 운율을 더했다. 이 책의 보석 같은 부분이다. 한 가지 더 빼놓을 수 없는 것, 바로 콜라주! 학교 다닐 때 해보고 처음이다. 이렇게 동화책에서 만나니 캐릭터가 선명하게 살아나는 느낌이다. 자꾸만 만져보고 싶어진다. 아이와 함께 직접 만들어 본다면 더 없이 좋은 시간이 될 것 같다. 질감과 색감을 직접 손끝으로 느끼면서 하나하나 생명을 불어넣는다면 아이의 감성은 얼마나 풍성해질까. 

달밤, 내 마음에 촉촉한 단비를 내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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