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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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새로운 소통의 언어
-『하악하악』을 읽고

 만약 당신이 새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4km, 물고기가 헤엄치는 방향으로 2km라는 표지판과 만나게 된다면 감성마을에 가까이 왔음을 직감할 수 있을 것이다. 표지판 하나로도 뭇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작가 이외수. 나는『하악하악』을 읽어보기 전 작가를 먼저 만났다. 지난 7월,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험난한 초행길도 마다하지 않고 감성마을로 가는 동안, 하늘의 환영인사가 시작되었다. 장마철 빈번히 발생하는 국지성 호우와 맞닥뜨린 것이다. ‘감성마을’에 가는 길이니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보다는 그래도 비가 더 어울린다며 스스로 위로했다. 낯선 길 끝에서 만나게 될 사람, 폭우를 뚫고 달려가는 동안 나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일까?

 자칭 ‘꽃노털 옵하’라고 말하는 이외수 작가는 약속보다 두 시간이 더 지나고 나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기다리는 것 외에는 갈 곳도 마땅히 할 것도 없던 터라,『하악하악』을 펼쳐 들었다. 단문 속에서 번뜩이는 가벼움과 무거움의 절묘한 조화들! 내 마음도 순식간에 '하악하악' 들뜨고 만다. 한결 쉽고 부드러워진 문장은 마음에 선명한 잔상을 남기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견 작가 중 인터넷 활용도를 따져본다면 단연 이외수 작가가 으뜸일 것이다. 그 명성에 걸맞게(?) 최근 출간한 책에는 ‘하악하악’ 이라는 제목에서부터 ‘털썩’, ‘쩐다’, ‘대략난감’, ‘캐안습’, ‘즐!’ 로 구분되는 목차와 ‘킹왕짱 알흠답고 놀라운 세상(p.71)’, ‘무서븐 신념의 압박(p.218)’, ‘떡실신(p.220)’ 등 본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터넷 언어가 등장한다. 국어사전보다 유행어·신조어 풀이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단어를 굳이 이름 있는 작가가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 번쯤 사전을 뒤적여봐야 뜻을 알 수 있는 생소한 단어들과 접하는 순간, 묘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이슈를 만들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기 위한 회심의 상술일까, 아니면 오늘날 급속하게 단절되어 가고 있는 세대 간의 교량 역할을 하기 위함일까. 책을 읽는 동안 이 의문에 대해 나름의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작가를 만난 뒤 그 해답은 서서히 확신으로 바뀌어 갔다.

 알려진 바와 같이 작가는 젊은 날 가난과 절망의 시기를 지나왔다. 그는 낮고, 사소하고, 하찮은 것들을 몸소 체험하는 동안 자연스레 그것들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이다. 『하악하악』에는 그 고난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의 충고와 비판을 달갑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삶의 진정성과 포용력 때문이다. 간혹 유머로 위장한 충고를 접하게 되는데, 그럴 때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기도 한다. 마음에서 반성이 우러나온다. 칼날을 세워 마음에 난도질을 해대는 비난성 충고와는 분명 다른 점이 있다.

 범죄 행위에 속하지만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는 악플러와 자신을 향한 근거 없는 비난에 소신 있게 반격한다. 문학계 현실을 비롯해 정치, 교육, 외모지상주의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문제에 대해 쓴 소리를 내뱉고, 편협한 생각에는 일침을 가한다. 여러 우화적 예문을 통해 다양성을 인정하며, 유머 속에 반전을 가미해 깨달음의 깊이를 더해준다. 젊은 세대를 위한 희망의 메시지 또한 빼놓지 않고 있다.

 이렇게 행간을 건너오는 동안 곳곳에서 작가의 외로움과 마주하게 된다. 지자체 최초로 생존 작가를 위해 마련한 집필 공간, 감성마을. 그곳의 유일 주민이라 할 수 있는 이외수는 비교적 매스컴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가이기도 하다. 잦은 방송출연으로 감성마을이 유명세를 타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러다 덜컥, 물난리나 눈사태가 닥쳐오면 어김없이 고립되고 만다. 언제 고립될 지 모르는 그곳에서 작가는 늘 사람들과의 소통을 꿈꾸고 있다.

- 감성마을은 마침내 폭설 속에 파묻혀버리고 말았습니다. 손님들은 발이 묶인 채 모월당에서 눈이 그치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눈이 그치면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길이 뚫려야 돌아갈 수 있습니다. 만세, 길이 뚫릴 때까지는 외롭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p.233)

 작가는『하악하악』에서 문학을 가볍게 탈바꿈시키되, 그 진정성은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꼭 필요한 문장에만 인터넷 언어를 사용하는가 하면, 느닷없이 질문을 던져 독자의 생각을 이끌어 낸다. 덕분에 쉽게 읽히고, 빨리 와 닿고, 오래 남는다. 

 책을 읽는 내내 은은한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읽을수록 더 은근해지는 이 향기는 작가가 배려한 또 하나의 감성 자극제인지도 모른다. 작가와의 만남은 즐거웠고, 운 좋게 정태련 화백도 만날 수 있었다. 그가 그려 넣은 민물고기들은 책 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며,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잔함을 더한다.

 이번 만남을 통해 한 권의 책과 한 사람의 작가를 더 가까이 이해할 수 있었다. 헤어지는 자리에서 작가는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자주 찾아오라는 말을 남겼다. 이처럼 감성마을은 언제나 열려 있고, 미리 스케줄을 알고 가면 언제든 작가를 만날 수 있다. 작가는 스스로를 열어 소통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하악하악』을 접하면서 생겼던 의문은 서서히 풀려 나갔다. 지금 우리시대에는 새로운 소통의 언어가 필요하다. 작가는 자기 자신, 세상, 세대 간 소통하는 길을 책을 통해 열어 주고 있는 것이다. 작가가 인터넷 언어와 젊은 세대의 말투를 문학에 끌어들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하다.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이해하기란 갈수록 힘이 든다. 서로 사용하는 언어와 생각의 간극이 점차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에『하악하악』은 젊은이들의 비뚤어진 부분을 그들의 언어로 바로잡아 주고 있다. 분명 어른이 하는 충고지만, 고리타분하지 않고 귀에 쏙쏙 들어온다. 소통하는 방법의 차이인 것이다. 기성세대는 이 책을 통해 젊은 세대의 언어를 접하게 될 것이다. 한 번씩 머리를 긁적이며, 인터넷 언어를 검색해 볼지도 모른다. 선입견은 잠시 떨쳐 버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몰입해 보라. 꽉 막혔던 자녀와의 대화도 어느 순간, 물꼬를 트게 될지 모른다.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의 생각과 충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해 볼 수 있다.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소통의 길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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