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도전 박지성
박지성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노력하는 젊은 열정
 
 오로지 축구만을 위해 살아온 평발의 작은 소년 박지성!
 히딩크 감독의 품안으로 달려들던 스무 살 청년이 어느 날, 세계 최고의 명문 구단 중 하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게 된다. 꿈의 리그 잉글랜드에서 대한민국 최초 프리미어리거로 우뚝 선 박지성! 그의 잉글랜드 행은 갑자기 날아든 소식이었지만 결코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축구를 향해 첫 열정을 품은 후 오로지 축구만을 바라봤던 그에게 맨유는 꿈의 완성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의 시작인 것이다!

 - 만약 내 인생 목표가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는 것이었다면 홀가분했을 것이다. 입단 계약서에 사인하는 순간 마치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The End' 타이틀이 올라가면 모든 상황은 종료. 기쁜 마음으로 발 뻗고 편안히 자는 일만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축구선수로서 나의 도전은 큰 구단으로의 이적도 아니고 많은 연봉이나 계약금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새로운 구단에 들어가 제대로 경기에 출전하면서 진정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연봉을 받고, 큰 인기를 누릴지라도 축구선수가 그라운드에 서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p.60)

 [멈추지 않는 도전]에는 박지성이 축구선수로서의 최대 약점인 작은 체구를 극복하고, 세계 최고의 명문 구단에 들어가기까지 거침없이 내달린 축구인생이 기록되어 있다. 초등학교 시절 축구에 첫 발을 들여 놓은 박지성은 ‘차범근 축구상’을 받는 등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인다. 하지만 좀처럼 자라지 않는 키와 작은 체구 때문에 수원 공고 시절 처음 일 년 동안은 체격과 체력 보완에만 힘써야 했다. 그라운드를 누빌 수 없는 고통은 컸지만 그때의 선택으로 고2 때 170cm를 넘기며 현재의 키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체력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한순간도 공에서 떨어지지 않으며 스스로 기술을 터득했던 박지성. 뚜렷한 목표의식과 꿈을 향해 도전하는 열정, 쉬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은 오늘의 박지성을 말해주는 키워드나 다름없다.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배인 이 습관들은 최고의 선수라 칭해지는 지금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팬들은 현재 그라운드에서 보여지는 선수의 모습만을 기억한다. 선수들이 얼마나 혹독한 훈련의 시간을 거쳤는지, 어느 정도의 준비를 마쳤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선발로 출전하지 못하면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기고, 교체 투입조차 되지 않으면 ‘섣부른’ 판단을 하기 시작한다.
 
 - 동양에서 온 작은 체구의 선수지만 맨유에 입단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은 서로를 인정했다. 그것이 맨유 선수들의 자긍심이었다. ‘누구든 우리 팀에 온 선수는 세계 톱 클래스’라는 프라이드. 이 자긍심과 긍지가 오늘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있게 한 것이었다.(p.68)
 
 맨유에 소속된 것만으로도 박지성은 이미 세계 최강자의 위치에 오른 선수다. 오늘 그라운드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박지성은 성실하고 꾸준하게 매 순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단 1분이라도 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최선을 다해 모든 것을 쏟아낼 준비를 이미 마친 선수다. 이런 선수에게 조급한 마음을 먹고 보채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멈추지 않는 도전]을 읽으면서 축구선수와 팬의 상관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PSV에인트호번 시절 첫 일 년 동안 박지성은 무릎 연골 수술과 함께 슬럼프를 맞게 된다. J-리그에서의 활약과 영광을 뒤로 하고 떠난 네덜란드 행은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기만 했다. 재활훈련을 통해 곧 컨디션을 회복할 거라 생각했지만, 예전 같지 않음을 스스로가 먼저 알아챈다. 같은 팀 선수들 역시 박지성에게 패스하기를 꺼려했고, 홈팬들은 그가 교체 투입되면 온갖 야유를 퍼부었다. 그 당시 히딩크 감독은 홈경기를 제외한 원정 경기에서만 박지성을 교체 투입할 정도였다고 하니 팬들의 비난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 일단 최선을 다해보고 싶어요. 내가 가진 기량을 전부 보여주었는데도 팬들이 야유를 하고 그라운든 위에서도 통하지 않는다고 느끼면 그때는 돌아갈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난 여기서 성공할 자신이 있어요. 반드시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p.218)

  재활훈련과 교체투입으로 힘든 시즌을 보낸 박지성에게 J-리그 세 곳에서 러브콜을 보냈다. 박지성에게 이 요청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영광을 재현해 달라는 말로도 들렸을 것이다. 힘겨워도 박지성은 숨지 않았다. 홈팬들의 야유가 환호로 바뀌는 순간을 간절히 꿈꾸었고, 마침내 스스로를 팬들을 변화시키고 만다.
 
 현실적으로 선수의 실력과 리그의 수준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팬들의 관심이 여기에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피땀 흘린 훈련의 결과를 그라운드에 모두 쏟아낸다. 그러나 관중들은 경기가 풀리지 않으면 선수의 노고를 생각하기 전에 성급하게 비난하기 시작한다. 나조차도 선수를 믿고 느긋하게 기다려주지 못하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박지성도 그 외면 속에서 자신감을 잃어갔고, 긴 슬럼프를 보낸 것이다. 팬들의 의식이 하루아침에 달라지진 않겠지만 변화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오로지 선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해외구단 시스템을 관가한 채, 왜 해외 선수들처럼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냐고 비난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을까?

 박지성은 국가대표를 거쳐 일본, 네덜란드, 잉글랜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나라와 구단에서 축구를 해 오고 있다. 맨유는 최고의 리그답게 선수가 축구 외에 처리해야하는 모든 일들을 구단 산하 여러 자회사에서 해결해 준다고 한다. 훈련장과 의료시스템은 차치하고라도 새로 영입되거나 이사를 원하는 선수를 위해 부동산 전문 회사를 마련해 두었고, 법률적인 문제를 전담하는 변호사와 회계사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박지성이 영입되고부터는 매 식사 때마다 항상 흰쌀밥이 준비되어 나온다고 하니 구단의 세심한 배려가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그곳에서 선수는 오직 운동만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데, 외국 선수와 같은 플레이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멈추지 않는 도전]을 읽는 동안 박지성은 물론 축구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온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만든 것만으로도 축구는 대단한 스포츠임에 분명하다. 한 시절 큰 힘을 주었던 축구,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열망은 높을 수밖에 없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기 마련. 월드컵 이후 지난 몇 년간 대표팀의 전력이 급격히 추락하면서 국민들의 관심도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A매치는 상황이 좀 낫지만, K-리그는 관심 밖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력은 한 순간에 일취월장하지 않는다. 알면서도 우리는 느긋하게 바라보며 응원하는 뒷심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이런 현상에 대해 어찌 국민들만 탓할 수 있으랴. 해외파 선수들이 종종 지적하는 것처럼 우리나라 축구도 유소년클럽에서부터 서서히 바뀌어 나가야 한다. 처음 한 걸음 내딛기는 어렵더라도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다보면 2002년의 영광을 재현할 순간이 다시 올지 모른다.

 언제나 더 높은 곳을 향해 멀리 보며 뛰어가는 대한민국의 박지성! 이제 그의 경기를 보면서 조금은 느긋하게 응원할 수 있을 것 같다. 선발출전이 아니더라도 단 몇 분간만 교체 투입되더라도 내일 더 좋은 플레이를 보일 것을 알기에 믿고 응원해야겠다. 같은 마음으로 우리나라 축구도 응원하고 싶다.

 책에는 몇몇 사람과의 특별한 인연도 소개되어 있다. 박지성의 체격을 보완하기 위해 혜안을 제시했던 당시 수원 공고 사령탑 이학종 감독의 지도는 인상적이다. 박지성의 축구인생을 새롭게 열어준 분이라 할 수 있기에 팬의 한 사람으로서 고맙기까지 하다. 히딩크 감독과의 남다른 애정도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가능성을 열어 더 큰 무대로 인도한 그의 탁월한 지도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가끔 박지성과 우정 어린 장면을 연출하던 루니를 비롯해 유명 선수들과의 일화도 수록되어 있다. TV 중계를 통해 그라운드를 누비는 맨유의 선수들을 만나는 기쁨을 쏠쏠하게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냉철한 선수가 아닌 사람 내음 물씬 나는 또 다른 모습으로.

 한국 최초의 프리미어리거 박지성의 인생이 담긴 에세이 [멈추지 않는 도전]. 전문 작가가 쓴 글이 아니기에 매끈하게 다듬어져 있진 않지만, 불편한 구석도 없다. 대신 여느 자기계발서보다도 와 닿는 구절이 많아 밑줄 그으며 읽기에 바빴다. 터질 듯 뿜어져 나오는 그의 에너지 덕분에 오늘 하루가 충만하게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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