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강하다
김청귤 지음 / 래빗홀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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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강하다

 

 작가. 김청귤

 출판. 래빗홀

 

 

약자들의 연대

 노인 인식 개선

 대안적 가족 공동체

 

좀비 + 로맨스?

 

 

 

65세 이상만 좀비로 변한다고요? 파격적인 설정에 이끌려 읽어보고 싶었던 책!

 

 

좀비물은 싫지만 그 싫음을 사뿐히 뛰어넘어 저를 사로잡은 건 책의 주제의식입니다. '약자들의 연대, 노인 인식 개선, 대안적 가족 공동체'.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는 머지않아 세대 간의 갈등으로 여러 문제를 겪게 될지 모릅니다. 가족이라는 개념 역시 다각화 되어가는 시점에서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김청귤 작가님의 책은 처음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요, 빠져듭니다 이 책! 극단적으로 혐오스럽거나 공포감을 조성하는 장면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읽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책!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아비규환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상하게 마음을 졸이며 읽게 됩니다. 시간 순삭이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거겠지요. 65세 이상 노인 좀비는 평소와 다를 바 없어 측은하기까지 합니다. 산책하듯 어슬렁거리며 거리를 배회합니다. 계단조차 쉽게 오를 수 없어 아파트 고층은 상대적으로 안전합니다.

 

 

문제는 늘 그렇듯 사람이죠. 봉쇄 조치된 도시를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은 차츰 인간성을 잃어갑니다. 기존 좀비와는 확연하게 다른 노인 좀비들 속에서 살아갈 방법은 분명 있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의 이기심은 극한의 공포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져 내립니다.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 좀비보다 더 무서운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아홉 살에서 열 살이 되는 겨울, 할머니와 멀리 떨어져야 한다고 했을 때는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한 후에도 부모님은 여전히 너무 바빴고, 적응하기 어려운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하루 종일 학교와 학원을 돌며 외로움을 스스로 달래야 했다.

 


아빠가 엄마에게 "결혼하고 애를 낳았으면 잘 돌봐야지"라고 말하면 엄마는 "애만 낳으면 당신이 다 한다고 했잖아"라며 차분하게 대꾸했다. 방문 뒤에 숨어 숨죽여 울던 밤이면 할머니의 품이 더욱 그리웠다. 할머니라면 날 울게 하지 않았을 텐데. 울어도 나를 달래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두 분이 싸울 때마다 밖으로 나가 뛰기 시작했고 그런 시간이 쌓여서 오랫동안 아주 잘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달리는 강하다p.10-11





 

어린 시절 할머니와의 추억을 곱씹으며 살아가는 고3 강하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다시 할머니가 계시는 '태전'으로 이사를 옵니다. 엄마 아빠의 잦은 다툼을 피해 달리고 또 달렸던 하다. 아주 잘 달릴 수 있게 될 때까지 하다는 어떤 시간을 견뎌야 했을까요?

 

 

하다에게 충분한 사랑을 쏟기에는 너무 바빴던 부모님. 대신 하다는 할머니의 너른 품 안에서 무럭무럭 자랍니다. 하다의 모든 기억과 추억은 할머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 영글어 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태전'에 봉쇄 조치가 내려집니다. 65세 이상의 노인이 좀비로 변해버린 상황. 65세 미만만 도시 탈출 가능. 그마저도 얼마 시간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하다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할머니와 함께 있기로 결정합니다. 75세인 할머니가 언제 좀비로 변할지 모르는데 말이지요.

 

 

 


 

평소 남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할머니. 동네에서 왕 언니 큰 누님으로 불리는 할머니의 오지랖은 이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여실히 발휘됩니다. 예민하게 울어대는 아기 울음소리에 언제 좀비들이 공격할지 모르는 상황. 어린 시절 하다를 떠올린 할머니는 아기 엄마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평소 까칠하기만 한 하다에게도 할머니의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하지 않으면 할머니가 나설 것이 분명하기에 하다는 사람들을 살피러 나섭니다. 좀비의 공격으로부터 목숨 걸고 구출해온 같은 반 은우. 한 달이나 홀로 생활해온 여덟 살 지민이까지. 거두어야 할 식구들이 하나 둘 늘어갑니다.

 

 

 

가족이 뭐 별건가. 같이 있으면 가족이지. 앞으로 우리를 가족으로 생각하면 되잖아. 그리고 이혼? 그거 별거 아녀. 우리 딸도 이혼했거든."

 

달리는 강하다p.107


 

 

우등생이 되는 걸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은우,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충격에 말문을 닫아버린 지민이, 남편의 실체를 깨달은 후 마음을 단단히 동여매는 지혜 이모까지.

 

 

장애인, 어린이, 갓난아기, 아기 엄마, 학생, 노인으로 구성된 새로운 형태의 이 가족은 사회적 약자에 속하지만 누구보다 강한 시너지를 발휘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냅니다. 서로를 보듬고 연대해 나가는 과정의 이야기는 따뜻하고 정겹습니다.

 

 

 

 


 

작가님의 필력 덕분에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이 책은 아이러니하게도 중간중간 자주 멈추게 됩니다. 책이 담고 있는 의미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깊고 깊기 때문이겠지요.

 

 

따뜻한 햇살과 초록 생명을 누리며 산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닫게 해주는 책. 작가님 할머니의 김치 레시피는 저장해 두겠습니다.

 

 

청소년 좀비 소설에서 저는 어떤 극단적이고 극적인 결말을 바랐던 걸까요? 이런 결말이 맞나 싶어 처음엔 갸웃했습니다만, 어쩌면 이것이 최상의 결말 아닐까 싶기도 해요. 어떤 순간에도 우리는 살아야 하고 사랑해야 하니까요.

 

 

그럼에도 하다는 학교에 두고 온 핸드폰을 가지러 가야 할 것 같고, 정부에서는 나름의 조치를 취해줘야 할 것 같고, 전화가 너머에서 애만 태우던 사람들의 가시적인 노력도 좀 엿보였으면 좋겠기에 이대로 끝내기엔 아쉬움이 있습니다. 2부 기대해 봐도 될까요?

 

 

 

 


 

사람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드는 책

 

 

무엇이 진정한 가족인지

의미를 되새기게 해주는 책

 

가벼울 수 없는 주제의식을

무겁지 않게 풀어내는 책

 

가족들과 둘러앉아

따뜻한 밥 한 끼

먹고 싶게 만드는 책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차오를 때면 달리고 또 달렸던 하다. 이제 거두어야 할 식구들을 위해 좀비 사이를 뚫고 달리기 시작합니다.

 

 

하다는 식구들을 건사할 수 있을까요? 사회적 약자들로 구성된 이 조합은 가족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할머니가 내내 찾아 헤맨 첫사랑 현동 할아버지는 과연 무사한 걸까요? 할머니는 끝끝내 좀비로 변하지 않을까요?

 

 

재미있게 읽어 내려가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달리는 강하다. 어떻게 살아야 의미 있는 삶인지 다시금 되새겨보는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


 

인별그램 주간심송필사챌린지에 당첨되어

래빗홀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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