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아름다운 기분
우아민 지음 / 무니출판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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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아름다운 기분

 


작가 _ 우아민

출판 _ 무니출판사​​

 

 

살아내고 싶게 만드는

어딘가 아름다운 기분





아마도

우린 슬픔을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슬픔을 삶의 곡선으로

매만지려는 시도 속에서

어딘가 아름다운 기분이 들기도 할 것이다.

 

이 아름다운 기분이

우리 자신을 구원할 것이라고 믿는다.

 

어딘가 아름다운 기분p.13

 

 

 

수많은 마음이 빼곡히 들어 차 있는 책을 만났습니다. 많지 않은 페이지 속 촘촘히 박혀 있는 이야기에 꽤 오랜 시간 책 속을 유영해야만 했습니다. 스르륵 읽고 덮어 둘 수 없는 책. 초록의 표지, 사진, 제목까지 어느 하나 매혹적이지 않는 게 없어서 마음이 쓰이는 책.

 

 

어딘가 아름다운 기분2020년부터 2022년까지 제주 동쪽 마을에서 기록한 스무 편의 애도 일기를 담은 책입니다. 이 책을 읽기까지 얼마간의 마음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누군가의 아픔을 들여다본다는 건 어딘가 잔인하고 불편한 부분이 있기에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없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책을 들었다 놓기를 여러 번 반복한 끝에 읽을 수 있었습니다.

 

​​


 

상실의 아픔과 고통이 온 우주를 집어삼킬 듯 몰려옵니다. 애끊는 문장이 이상하리만치 담담하게 펼쳐집니다.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꾹꾹 눌러 담은 글이 왜 이리 좋은지요. 이런 책에서 작가의 필력을 운운하는 건 자칫 결례가 될 수 있기에 조심스럽지만 좋은 건 사실입니다.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가령 이런 문장들.

 

 

능선에 물결치는 억새를 따라 연민 같은 것이 일렁였지요. 눈부신 풍경을 마주칠 때 떠올릴 수 없는 얼굴만 남은 사람은 어떤 표정으로 살아야 할까요. 천진한 풍경 앞에서 지어야 할 표정을 잊었습니다. (45)

 

 

말수가 적은 사람이라고 마음까지 조용한 건 아닐 거야. 어떤 사람은 입이 아니라 눈으로 말하기도 해. 식지 않고 오래 데워주는 다정은 그런 온도이지 않겠니. 고요하고 치열한 식물형 인간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 어둡고 눅눅하고 침잠하는 땅을 딛고 밝은 빛을 향해 상승하는 뿌리처럼.(68)

 

​​


 

어제는 저 뜰을 가슴 벅차게 채웠던 수국의 저문 얼굴을 잘랐어요. 수국은 새잎이 찾아오는 때까지 버썩 마른 얼굴 한 번 떨구지 못하는 슬픈 꽃이에요. 그래서 돌아서는 모습까지 보살펴 주어야 해요. 뒷모습을 지켜봐 주는 일은 아낀다는 말의 다른 뜻이니까.(97)

 

 

시처럼 흘러내리는 문장이 마음에 남습니다. 어떤 아픔을 겪었는지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아 끝끝내 위태롭고 아슬한 이야기. 슬픔을 토해내지 않아서 더 슬프고 절규하지 않아 더 애절합니다. 상실의 실체와 마주하게 될까 전전긍긍하며 읽는데 그 부분은 끝까지 모호해요.

 

 

다만 조심스레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가해자가 있는 사건의 피해자였고, 누군가를 잃었으리라는 것!

 

 


 

표류하는 마음을 이끌어 제주에 정착한 그녀. 바다에 들어가기를 여러 번. 때로는 파도가 때로는 사람이 뭍으로 밀어 올려 구원받은 삶. 결국 살아야만 하는 생. 그녀의 매 순간이 어떤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살아주어 감사하다 전하고 싶습니다.

 

 

누군가 그녀처럼 가늠할 수 없는 슬픔 속으로 헤맬 때 이 책이 어딘가 아름다운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면, 슬픔을 삶의 곡선으로 매만지려는 시도를 해 볼 수 있게 해준다면 의미 있지 않을까요. 굳이 의미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


 

이 책은 위로를 전하지 않습니다. 살아보라 말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책을 읽다 보면 슬픔이 정제되고 살아야겠다 마음먹게 됩니다.


 

새들이 날아가는 창가에선 백차를 마시고, 나른한 오후엔 보이 생차를, 당근 케이크와 홍차, 구름 낀 날엔 핸드드립을 마신다. 차가 좋은 이유에 대해서는 종일 재잘댈 수도 있지만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깨끗한 물을 거르고, 적당한 온도로 끓이고, 찻잎을 세차(洗茶)하고, 다기를 차례로 데우고, 차가 우러나는 때를 기다렸다가 마시기 좋게 거르고, 따르고, 점점 연해져서 제 몫을 다할 때까지다시 또다시. 기울이지 않은 차는 묽고 떫거나 식어버린다. 그 수고롭고도 겸허한 행위를 묵묵히 할 때 맑은 차 한 잔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슬픔의 폐허에서 자신을 건져 올리는 일처럼 여겨진다. 절망과 수치심을 정제하고, 지지와 연대로 영혼을 데우고, 회복할 수 있는 것과 없는 사실을 거르고, 일상의 경계선 안으로 점점 기울이는 일. 그 지난한 일을 반복하다 보면 문득 깨달아졌다.

 

 '비우려고 하는(마시는) 거구나.'​​

 

 

어딘가 아름다운 기분p.156-157

 

 

​​

 

당신은 마을마다 비석이 있는

파라다이스를 본 적이 있는가

 

 

 

많은 이들이 제주를 찾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잠깐의 여행이 아닌 삶의 터전을 아예 옮기는 일. 쉬운 결정이 아님에도 제주에 정착하려는 이들은 적지 않습니다.

 

 

당신은 마을마다 비석이 있는 파라다이스를 본 적이 있을까. 차마 그 일을 안다고 입에 올릴 수도 없는 그러면 목구멍에 시꺼먼 동굴이 생기는 이곳은 누군가의 밤을 뒤척이게 하는 섬이기도 하다. 섬이 곧 행복이라고 생각하면 슬퍼진다. 행복하다고 해서 슬픔의 역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112)

 

 

이 글을 읽는 순간 멈칫, 했습니다. , 제주는 이런 곳이구나. 아픈 역사를 끌어안은 상실과 한이 공존하는 땅. 이곳에서라면 상처 하나쯤 더 드러내 보이는 일이 그리 어려운 게 아닐 수 있겠다 싶습니다. 제주에 살다 보면 죽음을 삶으로 바꾸어 놓는 어느 지점에 가닿을 수 있을 것 같은!

 

 

여전히 생채기 가득하지만 아픔을 딛고 일어선 자리마다 아름다움이 일렁이는 제주. 제주는 누군가의 아픔을 감싸 안고 누군가는 제주의 아픔 앞에 겸허해지는 것으로 서로를 보듬을 수 있는 곳. 그녀가 제주에 머무르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


 

견뎌야 했던 모욕, 가장 찬란했던 시절, 자꾸만 되돌아오는 불안사랑했던 너무나 사랑했던 마음. 모든 질문이 슬픔을 돌아가는 풍경을 나는 진흙으로 덮는다.​​

 

​《어딘가 아름다운 기분p.162

 

 

 

 

 

자신의 슬픔을

오롯이 마주한 다음

 

 

마침내 세상 밖으로 드러내

 

 

타인의 아픔을 구해줄

어딘가 아름다운 기분

 

벼랑 끝에선 누군가에게

다정함의 온도로 기억되기를!





 

​​

 

 

 

_ 출판사 서포터즈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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