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공간을 어루만지면 ㅣ 창비청소년문학 123
박영란 지음 / 창비 / 2023년 10월
평점 :
시공간을 어루만지면
작가 _ 박영란
출판 _ 창비
사려 깊고 내밀한 청소년 성장 소설
"어쩌면 요정일 수도 있어."
『시공간을 어루만지면』 p.31
오래된 단독주택 2층, 반쯤 그늘에 가리워진 집. 유달리 넓은 정원 안에 온갖 나무와 작물들이 저마다의 질서를 유지한 채 자리하고 있는 집. 어찌 보면 생기롭고 어찌 보면 음침한 집. 베일에 싸인 듯 숨어 살기 딱 좋은 이곳에 '나'와 가족이 이사를 옵니다.
어느 날 홀연히 고향 장원으로 떠나버린 아버지를 따라나서는 대신 도시에 남기로 한 가족들. 고3인 나, 동생 다준, 엄마 앞에는 과연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엄마는 나와 동생을 책임지기 위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시작합니다. 엄마를 짓누르는 근심과 피곤의 무게만큼 한없이 가라앉은 공기는 음산한 집의 기운과 맞닿아 더 무겁게 가라앉습니다. 엄마와 아빠 사이의 미묘한 기류 속에서 숨죽여 살기로 작정한 아이들. 남들이 꺼려 하는 집,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마저 도는 이 집에서의 삶은 과연 순탄하게 흘러갈까요?
역시나 이사 온 첫날부터 이상한 기운이 감돕니다.
아무도 없는 정원의 그네가 삐걱거리고, 누군가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집니다. 숨죽인 듯 조심스레 오가는 발자국, 은밀하게 주고받는 나직한 대화들, 누군가의 손길을 타고 있는 듯한 정원의 질서정연함, 결정적으로 간간이 풍겨오는 음식 냄새까지. 아무래도 비어있다는 1층이 수상합니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1층 사람들. 집주인이라면서 정작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으려는 듯 전기조차 쓰지 않는 것이 이상합니다. 어둠과 철저히 한 몸이 되어버린 사람들. 침묵과 완벽히 하나가 되어버린 사람들. 세상에 있지만 없는 듯 사는 사람들. 백발의 서백자 할머니, 종려와 자작이라는 이름을 가진 쌍둥이 아이들. 어느 날 소리 소문 없이 나타난 손자 장희씨까지.
귀신인 듯 요정인 듯 보고 있어도 믿기지 않는 존재들. 분명히 실체가 있지만 없는 사람들. 과연 아빠 없이 새로운 삶을 살고자 찾아온 이 집에서 나와 가족들은 평탄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대체 1층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고 보듬는 사이
마침내 깨닫게 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
가닿을 듯 가닿지 않는 1층 사람들과 은밀히 소통을 이어나갑니다.
누군가의 보살핌이 간절히 필요한 종려와 자작, 초등학생 다준, 고3인 나와 스물을 넘긴 장희씨, 엄마와 아빠를 비롯해 백발의 할머니까지도 저마다 상처를 끌어안은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 들려올 것만 같은, 꼭꼭 감춰둔 비밀이 폭발하듯 새어 나올 것만 같은 이 이야기는 실은 고요하고 은밀하고 몽환적이기까지 합니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진중하고 사려 깊습니다. 생각보다 더 단단한 내면을 간직한 듯 보입니다. 상처를 낫게 할 자연 치유 능력을 지닌 것처럼 신비롭습니다. 절박한 상황을 기필코 반전시킬 것 같은 실제와 환상 그 어디쯤의 이야기들.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 마침내 경계를 무너뜨리고, 무너진 그 자리에서 다시 딛고 일어설 용기에 관한 이야기들. 마음이 한없이 그득해지고 더없이 아득해지는 소설 『시공간을 어루만지면』.
이 사려 깊고 내밀한 성장 드라마를 오래 마음에 남겨두고 싶습니다. 오래 기억에 새겨두고 싶습니다.
중개인의 말에 엄마는 집을 보고 나서 계약을 서두른 이유에 대해서 새삼 생각해 보았다고 한다. 돈 문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엄마는 그늘지고 어두운 이 집에 숨어 있고 싶었다. 숨어서 정신을 좀 가다듬고 싶었다. 아버지가 충분한 설득 없이 장원으로 내려가 버리고 나서 엄마는 갑자기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고 했다. 지금껏 엄마가 꿈꿔온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그런 상태에서 다음으로 넘어갈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숨고 싶고, 숨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의 결정에 순순히 따르면 엄마는 더 편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강요로 받아들이고 나면 언젠가는 후회할 것이다. 그러면 아버지를 미워하게 될 것이다. 결정은 엄마 자신이 내려야 했다.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숨어 있을 시간과 장소가 필요했다. 엄마가 이 집에 이끌린 까닭이 그 때문이라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고 했다.
『시공간을 어루만지면』 p.70
여운 가득한 이야기
시간과 공간의 미세한 입자들을
내밀하게 들여다보고 싶게 만드는 책
혼란스러운 시기를 넘어
단단하게 일어설
용기를 내고 싶게 만드는 책
비밀스럽고
은밀하고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사려 깊고 내밀한
우리들의 성장 드라마!
다정하고 따스하게
서로의 시공간을 어루만지면
삶은 얼마나 더 충만해질 수 있을까요?
_ 출판사 서평 협찬 도서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