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그림 수업 - 그림 선생과 제주 할망의 해방일지
최소연 지음 / 김영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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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그림 수업

 

그림 선생과 제주 할망의 해방일지

 

인생 에세이 추천!

 

_ 최소연

출판 _ 김영사

 

'그리니까 

좀 배우는 기분'이 든다는

평균 나이 87,

여덟 제주 할망의 인생 해방 일지

 

선흘 마을 공동체 이야기!

 

 

 


 

책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무언가를 얻고 싶어서 읽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그냥 읽고 싶은 책이 있습니다. 마음이 가는 책, 자꾸만 뒤돌아 보게 되는 책, 읽지 않고는 안 될 것 같은 책, 마침내 읽게 되는 책. 저에게 할머니의 그림 수업은 그런 책입니다.

 

중학교 졸업 후 자취를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선택한 부모님과의 이별. 학생 때는 방학에 잠깐씩, 직장에 다니면서부터는 휴가 기간에만 잠시 엄마를 볼 수 있었어요. 그렇게 이어진 삶 때문인지 언제나 엄마가 그립습니다. 돌봄을 받으셔야 할 연세에 아버지를 돌보시느라 자신의 삶은 늘 뒷전으로 미뤄 두시는 엄마. 하루하루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내고 계실지 생각만 해도 짠하고 눈물이 맺힙니다. 그런 엄마가 보고 싶어서, 놓쳐버린 엄마의 삶을 알고 싶어서 읽기 시작한 할머니의 그림 수업.



 

이 책은 제주 조천읍 선흘 마을에 살고 계신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선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 하여 '선흘'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마을은 동백 동산으로 더 유명한 곳인데요, 이곳에 그림 선생님이 이사 오면서 할머니들이 그림 수업을 받기 시작합니다. 최연소 할망은 1940년생. 최고령 할망은 1930년생.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제주 4·3사건까지 온몸으로 겪어내신 할머니들의 삶을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요?

 

견디고 이겨내고 희생했던 삶에서 이제서야 자신의 이야기를 수줍게 세상 밖으로 꺼내놓으시는 여덟 할머니들. 그림 한 점 한 점에 할머니들의 삶이 스며 있어 허투루 보아 넘길 수 없습니다. 할머니들의 그림은 담박합니다. 기교를 빼고 보이는 대로 정직하게 그려낸 그 모습에서 군더더기 없는 정갈함이 느껴집니다.

 



가끔은 화려하고 발랄하기까지 합니다. 누가 봐도 할머니 옷 특유의 기하학적 무늬와 총천연색의 컬러감을 그대로 담아낸 화폭을 좀 보세요. 침침한 눈으로 저 문양들을 얼마나 깊이 들여다보셨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림 그리는 인류에 아직 편승하지 못한 저로서는 할머니들의 그림이 마냥 부럽기만 합니다. 솔직해서, 솔직할 수 있어서 삶도 그림도 빛이 납니다.

 


 

그림 옆에 삐뚤빼뚤 써 내려간 글귀들에 뭉클해집니다. 때때로 울컥하기도 하고요. 오이 하나에도 인생이 깃들어 있습니다. 상품으로 나가는 오이도 있고, 파치 오이도 있습니다. '늙어 둔틀락둔틀락하는' 오이도 있고요. 거칠게 지나간 붓 터치마다 할머니의 인생도 굽이굽이 너울쳐 오는 듯합니다.

 

 

책 속에 등장하는 할머니들의 삶에서 엄마를 떠올려 봅니다. 팔순의 오가자 할머니가 엄마를 그리워하며 비상하는 새를 그린 장면에서는 정말이지 맥없이 한참을 울어버렸습니다. 어느 나이 든 엄마는 그립고 애틋한 존재겠지요. 곁에 남은 사람보다 떠나간 사람이 더 많은 나이가 되고 보면 먼저 간 이들에 대한 그리움도 커져 갈 것입니다. 그런 울컥거림이 하루에도 여러 번 엄마의 삶을 멈춰세울 것만 같아 마음이 아파옵니다.

 


 

할머니들 곁에 그림 선생님이 계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특별할 것 없던 삶에 산들바람을 일으켜 주셔서 보는 내내 흐뭇했어요. 할머니들의 삶이 그림 덕분에 이토록 생기로워지다니요. 별일 없이 흘러가는 일상에 의미있는 별일을 만들어 주셔서 제가 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할머니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 놓기 시작하셨어요. 할 일이 생기고, 할 수 있는 일이 생긴 것이지요. 그림이 할머니들의 생을 이끌어가는 강력한 동기가 되어 준 듯합니다.

 

신기하게도, 달라진 건 할머니들의 삶뿐만이 아닙니다. 그림 선생님의 삶도 분명 이전과는 달라졌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요. 할머니들과 마주하며 그분들의 삶에 녹아들어 갔던 시간은 선생님의 마음에도 적잖은 변화를 가져왔으리라 생각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온전히 품는다는 건 우주를 품는 것과 같은 일이니까요. 그 이야기들이 모여 한 권의 책으로 탄생했습니다. 할머니들의 그림 수업이 어떤 분들에게 가닿을지 모르지만 분명 이전과는 다른 삶의 진폭을 경험하게 해 줄 것입니다. 그 인생은 또 얼마나 생기롭고 원대해질까요.

 

 


 

마음을 다해 읽게 되는 책

마음을 더해 살아내고 싶게 만드는 책

 

엄마가 보고 싶은

엄마를 그리워할

모든 이들에게 전하고픈

 

참으로 아꼬운 책입니다!

 

아꼽다

'귀엽고 사랑스럽고 예쁘다'

라는 뜻의 제주 방언

 



 

2021년 제주 선흘 마을에서 진행한 드로잉 프로젝트 <할머니의 예술 창고>를 계기로 마을 할머니에게 그림을 권하고 가르치게 된 저자가 그동안의 이야기를 담아 할머니들의 그림 수업을 펴냈습니다.

 

 

할머니들과의 우정, 삶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는 이 책은 마을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계기를 만들어 줄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름 없는 아무개 할머니에서 그림 그리는 화가로 당당히 자리매김한 여덟 할머니들의 삶이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와닿습니다. 어떤 인생도 빛나지 않는 인생은 없다는 걸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책 속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

 

 

할머니가 그린 그날의 도토리 그림에는 동백동산의 무언가도 담겨 있습니다. 벌렁 드러누워 물끄러미 바라보았던 할머니의 모습과 도토리를 그리려는 손동작들. 여든여섯이 되어서야 도토리가 보인다는, 조그만 도토리 열매를 닮은 할머니의 눈. 도토리를 먹는 노루들. p.83

 

 

땅에서 나온 거로 삽니다

한 인생을 그거로 사는 거주

그런데 그림을 그려보니

팔십육 세까지

생각도 못 한 일이 생겼주

나 강희선이 무수 그림을 그려주

 

p.93

 

 

상처 난 거도 버리지 마라

참외는 어떤 것은 상처도 나고

어떤 것은 곱게 자란다

맛은 같다

 

조수용 2022. 6. 6

 

p.113

 

 

할머니는 눈에 보이는 건 뭐든 그리십니다. 부엌 찬장도 그리고, 알밤 오름도 그리고, 소나무도 여러 점 그리고 백일홍도 그렸어요. 그중에서 제 눈길을 가장 사로잡는 건 나무 패적 그림이에요. 제가 모르는 표현이었는데 나무의 잘린 흔적이 '패적'이라고 할머니가 알려주셨어요. 할머니는 나무에 상처 난 부위를 유독 자세히 그리셔요. 오래된 나무에는 패적이 더욱 많은데 금색 물감을 가져다드렸더니 패적에만 금칠을 하십니다. 훈장 같았어요. 이제 나무에서 가지가 떨어져 나간 흔적을 보면 고순자 할머니 생각이 나요. p.141

 

 

"엄마" 하고 고함지르는 팔십삼 세 할머니가 아이처럼 보였습니다. 새도 눈물 한 방울을 머금은 듯했고요. 새 그림은 노트만 한 크기의 작은 그림인데, 그게 뭐라고 거기에 의지해서 속마음을 내주고, 옆에서 누군가가 궁금해 물으면 "그냥 새야'하고 말수도 있는데 속마음을 꺼내 전해주셨어요. 그런 순간에는 '내가 오늘 여기 잘 왔군. 할머니 옆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물어봐 주길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울림의 시간이에요. 공명하는 시간이고요. 그럴 때는 할머니의 방 안에서 더는 아무것도 그리지 않고 시간을 보냅니다. 그림을 앞에 두고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해집니다.p.147

 

 



 

! 이제 우리 차례다. 당신의 해방 여행을 떠나자. 선흘의 할망들처럼 아무거나 그려제껴 보는 거다. 빈 종이 한 장과 연필 한 자루면 충분하다. 그도 없다면 물 한 사발 떠놓고 땅바닥에 앉아 손가락으로 그려도 좋다. 그림이 당신을 끌고 갈 것이다. 턱밑까지 올라왔던 마음이 숨구멍을 틔우고 고요히 가라앉는 마음 해방구로 가는 길이다. 용기를 내보자. 글 길에서 웅크린 아이가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춘다면 팔 벌려 안아주면 된다. 다 괜찮다.

 

할머니의 그림 수업p.232




 

 

 

_ 김영사 서포터즈로 활동하면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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