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의 단어들
이적 지음 / 김영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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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의 단어들

 

 이적의 생애 첫 산문집

 

 저자 _ 이적

 출판 _ 김영사

 

 

 

한 해 한 해 나이를 더해갈수록 인생의 지혜를 미약하게나마 깨달아가는 듯합니다. 그 깊이와 넓이는 사람이 살아온 시간과 닿아 있겠지요. 이적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펼쳐든 책 이적의 단어들. 그가 살아온 시간이 궁금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적의 단어들은 이적이 쓴 생애 첫 산문집입니다. 그의 마음과 시선이 가닿은 101개의 단어와 그 '단어들에서 촉발된 단편들'을 만나볼 수 있는 책입니다.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인상 깊었던 몇몇 '단어들'을 중심으로 소개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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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생의 넓이

 

인생 / 인생 2 / 지혜 / 스타 / 홍어 / 상처 / 신발 / 이어폰 / 악순환 / 엇갈림 / 쓰레받기 / 멀미 / 가치 / 투표 / 지폐 / 고스톱 / 시간 / 성탄절 / 송년

 

 

 

상처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받은 인성 교육 이야기를 들려준다.

 

"종이에 사람을 그리세요. 그리고 그 사람에게 나쁜 말을 하며 종이를 구겨보세요. 이제 좋은 말을 하며 종이를 다시 펼치세요. 어때요. 구겨졌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죠? 그래요. 나쁜 말을 하고 나면 나중에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상처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답니다. 그러니까 친구한테 나쁜 말을 하면 안 되겠지요?"

 

이적의 단어들p.25 '상처' 전문


 

하루를 시작하거나 마무리할 때 삶을 돌아보며 조망하는 시간을 가져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럴려고 노력은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바쁠 때는 더더욱 힘들고, 느슨하게 사는 중에도 온전히 자신을 들여다볼 여유는 부족한 듯합니다. 가끔은 아이들의 이야기에서 진리를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아이에게만 필요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교훈과는 멀어진 어른에게도 이런 말은 때때로 필요합니다.

 

 

 


 

2. 상상의 높이

 

영화관 / 리셋 / 라면 / 가르마 / 가방 / 라이터 / AI / 절연 / 악마 / 좀비 / 가상 인간 / 물수제비 / 불멸 / 서재 / 물방울 / 평행우주 / 중앙선 / 불면증 / 공포증 / 눈사람 / 위기 / 기차 / 샤워볼 / 베개 / 휴지 / 회전문 / 보조개 / 세포

 

 

 



리셋

 

 

여기 모든 것을 5년 전으로 되돌릴 수 있는 버튼이 있습니다. 한층 젊어질 것이고, 실패 또한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습니다. 재도전할 시간을 벌 수도 있지요. 실패가 원점으로 돌아가듯 성공과 성취 또한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당신은 리셋 버튼을 누르시겠습니까?

 

쉽지 않은 결정의 상황에 놓인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삶은 크고 작은 결정의 연속입니다. 그 결정들이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원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해 온 일들이 가치 없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리셋, 하고 싶은 순간일수록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 더 신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서재

 

읽지도 않으면서 그녀는 더 많은 책을 주문했다. 사방의 책장에 책을 넣고 그 제목들만으로 이야기를 만들었다. 새 이야기를 위해서 책들의 배열을 바꿨고 모호한 부분이 생기면 새 책을 주문했다. 그녀는 서재를 읽고 있었다. 그 방의 이야기를.

 

이적의 단어들p.81 '서재' 전문



 

책 제목을 조합해 짧은 글을 지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책장을 쓰윽 둘러봅니다. 제목들을 이리저리 읊조려 봅니다. 그러다 서너 권 골라 책등이 보이게 위치를 재배열합니다. 다시 읽어보기. 어느 순간 뚝딱 글 한 편이 완성됩니다. 뭔가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어 새 책을 주문해 본 적은 없지만 책 제목만으로 글을 지어 본 경험이 있는 저에게 이 글은 묘한 동질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런 상상이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것 또한 책 읽는 즐거움 중 하나이지요.

 

 


 

눈사람

 

눈사람 덕분에 다행히 남자 친구와 헤어진 어느 여자분의 이야기입니다.

 

최근 들어 데이트 폭력 사건을 종종 접하다 보니 작은 일 하나도 허투루 보아 넘길 수 없습니다. 사연인즉슨, 폭설이 내린 다음 날 A 씨는 남자친구와 눈 쌓인 거리를 걸었다고 해요. 그때 길가에 놓인 아담한 눈사람을 남자친구가 사정없어 걷어차 버립니다. 그 상황만으로도 충분히 당황스러운데요, 눈사람을 걷어찬 후 남자친구는 크게 웃으며 즐거워했다고 합니다.

 

 

눈사람을 파괴할 수 있다면 동물을 학대할 수 있고 마침내 그 폭력은 자신을 향할 수 있다는 공포에 휩싸인 A . 구구절절 설명 대신 이별을 고했다고 합니다. 상상이 지나치다고요? 과연 그럴까요? 무심코 하는 행동 하나가 그 사람의 전부 혹은 숨겨진 이면일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난 후 한동안 선연했습니다. 폭설이 이런 상황에서는 다행 일수 있겠다 싶기도 했고요.

 

 

 

 

3. 언어의 차이

 

앞뒤 / 두려움 / 원만圓萬 / 변화 / 누다 / 개떡 / 클리셰 / 공감 능력 / 가스 / 부분 / 친절 / / 칫솔 / 인과因果

 

 

앞뒤

 

자칫 말장난 같기도 한데 사뭇 철학적입니다.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미묘하지만 극명한 언어의 차이를 이적만의 시선으로 풀어냅니다. 가령 '10년 앞을 내다보라'라는 말과 '10년 뒤를 내다보라'라는 말은 정확하게 같은 뜻이라는 것. 시간의 '앞뒤'를 바라볼 때와 '전후'를 바라볼 때, 우리의 시선이 향하는 쪽과 우리가 등진 쪽은 어디일까요? 깊은 사유를 이끌어내는 반전의 시선이 느껴집니다.

 


 

원만 圓滿

 

무릇 뾰족한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둥글둥글한 사람을 어려워하라. 사실 그는 모든 것을 파악하고 예민하게 주시하는이다.

 

이적의 단어들p.117 '원만' 중에서


 

둥글어진다는 건 무뎌진다는 것일까요? 아니면 뾰족했을 때보다 더 많은 것을 섬세하게 느낀다는 것일까요?

 

2차원에서 선으로 그린 땅 위를 별 모양이 구른다고 상상해 볼까요. 별 모양은 땅에 닿는 부분과 닿지 않는 부분이 극단적으로 나뉩니다. 닿는 부분은 무척 민감할 것이고 닿지 않는 부분은 둔감할 수밖에 없지요. 반면 둥근 원은 모든 부분이 빠짐없이 닿기 때문에 땅 위의 모든 것을 민감하게 느낄 것입니다. 뭔가 뾰족한 사람보다 둥글둥글한 사람을 더 어려워해야 하는 이유 짐작이 가시지요?


 

이적의 글 속에 담긴 의미를 쫓는 동안 독자의 생각도 깊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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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노래의 깊이

 

기타 / / 창작 / 사고실험 / 멀티태스킹 / 거위 / / 하늘 / 빨래 / 매듭 / 거짓말 / 렛잇고 / 산토끼 / 라이브 / 층간 소음 / 콘서트 / 피아노

 

 

드디어, 마침내, 비로소 이적의 음악을 만날 수 있는 장이 4<노래의 깊이>에서 펼쳐집니다. 그의 명곡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고민으로 탄생했는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이지요.

 

 

 

멀티태스킹


 

무언가를 할 때 음악을 틀어놓는 편이신가요? 저는 그렇습니다. 집안일을 할 때, 서평을 쓸 때 심지어 책을 읽을 때도 종종 음악과 함께 합니다. 뮤지션은 어떨까요? 이적은 '뮤지션에게 음악은 언제고 뒤에 깔아놓는 '백그라운드 뮤직'없다고 단언합니다. '음악이 들리는 순간, 좋든 싫든 화성 진행을 파악하고 악기 연주를 품평하고 사운드 믹싱을 분석하며 속절없이 끌려다닌다'라고 해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이지만 그럴 수 있다 싶어요. 직업인으로서의 뮤지션의 고충은 생각보다 크네요. 음악을 음악으로 즐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거짓말

 

아이를 버리고 가는 비극적인 사건이 종종 일어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옷은 입히고 손에는 풍선을 쥐여주고 솜사탕도 사줍니다. 곧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영영 사라져버린 부모. 아이는 화장실 한 번 가지 못한 채 몇 시간째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합니다. 얼마나 두려울까요. 얼마나 슬플까요. 얼마나 무서울까요. 얼마나 원망스러울까요. 마음 어느 자리가 뻥 뚫린 듯 아이의 마음을 감히 가늠해 볼 수조차 없습니다. 그런 마음을 헤아려 탄생한 명곡이 있지요.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은 그날의 아이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해 언제 들어도 아프고 슬프고 처연합니다.

 

관심을 기울이고 공감하려 노력하는 동안 명곡은 또 탄생하겠지요.

 

 

 


 

5. 자신의 길이

 

씨앗 / 짜증 / 경우 / 솜사탕 / 눈물 / 이석증 / 고수 / 지속 가능성 / 강박 / / 삼시 세끼 / 나이 / 커피 / / 거울 / 욕심 / 성공 / 부작용 / 수염 / 자유 / 근심

 

 

눈물


 

삶의 유한성을 언제 깨달으셨나요? 혹시 아직도 삶이 영원할 것만 같으신가요?


 

마흔이 넘어서부터 한 번씩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이 생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자각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걱정을 끌어안고 사는 건 아닙니다. 단지 불시에 놓고 떠날게 될 흔적들을 떠올려 보는 것이지요. 당장 정리를 하면서 사는 건 또 아니지만요.


 

<눈물>이라는 글을 읽는 동안 삶의 유한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니다.

 

 

 

 

 

지속 가능성

 

일도 연습도 운동도 공부도 취미도 지속 가능한 방식을 택한다. 한두 번 영혼을 불사를 듯 무리하여 깜짝 성과를 낼 순 있지만 자기 속도와 맞지 않으면 금방 멈춰 서게 되고, 심하면 넌덜머리가 나 아예 반대쪽으로 튈 수도 있다. 달리지 않고 적정한 보폭으로 적당히 숨찰 정도로 걷는다. 게을러 보일 수도 있고 승부욕이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스스로는 안다. 어디로 가는지, 잘 가고 있는지. 그렇게 오늘도 타박타박 걷는다. 계속 걸을 수 있는 페이스로 가끔 쉬기로 하며. 흥분해서 내딛다 탈진하지 않도록.

 

이적의 단어들p.193 '지속 가능성' 전문



 

'타박타박 걷는다'라는 말속에는 의욕 충만한 열정이 없어 보입니다. <지속 가능성>이라는 글을 읽는 동안 '타박타박 걷는다'라는 말을 곱씹어 보았습니다. 저마다 걸음의 속도와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잘 가고 있는지, 계속 걸어갈 수 있는지는 결국 자신만 알 수 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안일해 보일 수 있어도 자신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가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 세상의 속도전에 휘둘리지 말아요. 각자 자신만의 길을 의연하게 걸어갈 이유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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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책의 대미를 장식하는 후주. 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전문을 옮겨 볼까도 생각했으나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보시는 게 더 의미 있을 것 같아 여운만 슬쩍 놓고 갑니다. '짙은 숲에서 깊은 숨을 쉬는 것보다 더 기쁜 쉼이 있을까'라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소리 내어 읽어보세요. 숲에서 새로운 숨을 얻는 듯 생기로움이 감도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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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굵직하고

 술술 읽히지만 가볍지 않고

 간간이 웃기지만 우습지 않은

 

생의 경중을

 균형감 있게 녹여낸

 

 이적의 단어들 

 

 

선물하기 좋고 소장하기 좋은 담백하게 예쁜 양장본 이적의 단어들~ 인터넷 서점별 '사인본''양장 노트'를 받을 수 있는 이벤트도 진행 중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김영사 서포터즈로 활동하면서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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