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자비 납치사건 - 개정판
김진명 지음 / 이타북스 / 2023년 4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황태자비 납치사건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전말을 담은

 435호 문서는 과연 공개될 것인가?

 

 김진명 역사 소설

 출판 _ 이타북스

 

2010 초판 발행 

2023. 4. 28 개정판

 

 

진실로 부끄러운 것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인하는 것이다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알고 계시나요?

 

 

20여 년 전, 제가 20대였을 무렵 이 소설을 읽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역사나 나라의 안위에 대해 큰 관심이 없던 저를 단 번에 뒤흔들었던 작품. 일단 잘 읽힙니다. 작가의 첫 작품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대단한 필력을 자랑하는 소설이지요.

 

 

1, 2권을 단숨에 읽었습니다. 더해지는 의문에 소설의 모티브가 된 이용후(이휘소) 박사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소설 이휘소는 저의 가슴에 다시 한번 뜨거운 불덩이를 던져 주었습니다. 핵 보유론에 관한 이야기.

 

 

우리나라의 핵 보유 문제에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1993년 초판 발행 이후 지금까지 6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책. 그 중심에 있었던 천재 박사 이휘소와 그를 둘러싼 의문의 사건들 그리고 억울한 죽음. 소설을 통해 실체를 잃어가는 나라의 운명을 지켜보던 저는 약소국 국민으로서 몹시도 서글펐던 기억이 납니다.

 

 

 

 

 

한동안 저를 끓어오르게 만들었던 김진명 작가를 오랜 세월 잊고 살았습니다. 얼마 전 작가의 다른 책 황태자비 납치사건을 읽으면서 다시금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여전한 필력, 날카로운 문제 제기, 미래를 향한 화해의 염원까지 더해진 책. 우리나라의 민감한 역사와 현안에 정면으로 돌파하는 작가의 배짱과 흡입력 강한 서사에 다시 한번 압도당하고 말았습니다.

 

 

황태자비 납치사건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역사 추리 소설입니다. 일본에 주권을 빼앗긴 1895년 조선. 경복궁 건청궁 옥호루에서 발생한 치욕의 역사 '명성황후 시해 사건'. 그로부터 백 년 후 일본의 황태자비가 도쿄 한복판에서 감쪽같이 자취를 감춥니다. 일명 황태자비 납치사건!

 

일본을 대혼란에 빠뜨린 '황태자비 납치 사건'은 온갖 낯 뜨거운 스캔들로 비화되며 언론의 폭격을 맞습니다. 총명하고 매력적인 황태자비를 루머로 얼룩지게 만들었던 언론들은 범인의 요구사항을 실으며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

 

범인의 요구는 단 하나. '에조 보고서'라 불리는 일본의 비밀문서 '한성공사관 435' 전문을 공개할 것! 참혹하게 살해된 명성황후에 대한 마지막 기록. 사라진 문서. 누군가는 알고 있는 문서. 누군가만 알고 있는 문서. 결코 공개되어서는 안 될 문서. 반드시 일본의 모든 국민이 알아야 할 문서. 그날의 기록! 그날의 역사!

 

 

 


 

일본의 새 역사 교과서가 유네스코의 마지막 심사를 받는 전날까지 납치범은 문서를 공개하라고 촉구합니다. 만약 공개하지 않는다면 황태자비의 안위를 보장할 수 없는 상황. 과연 황태자비는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릇된 복수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될까요?

 

 

일본의 조선 침략과 그들이 저질렀던 온갖 만행에 정당성을 부여한 새 역사 교과서. 일본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세력에 의해 철저하게 왜곡된 일본의 역사가 다시 한번 잘못된 길로 접어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이를 저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가능성을 담고 있는 한성공사관 435!

 

​​

 

 

 

 

수사 총괄을 맡은 일본 제일의 형사 다나카는 수사를 진행할수록 사건 뒤에 감춰진 엄청난 진실을 목도하게 됩니다. 서서히 좁혀지는 수사망.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한 범인의 정체. 가슴 아프게 공감하고 지지할 수밖에 없는 범행 동기. 급물살을 타는 예상 밖의 전개까지.

 

 

개인의 사사로운 이해관계부터 복잡한 국제 정세까지 복잡하게 얽혀 다각도로 해석해 볼 수 있는 소설. 친일파와 국가유공자로 비유할 수 있는 두 후손들의 대비되는 삶을 통해 한국인의 역사 인식에도 일침을 가합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전두환 손자와 관련한 일련의 사건들이 소설의 등장 인물과 절대 비길 바는 아니지만 미묘하게 오버랩 되는 지점도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사코는 자신의 납치가 납치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황태자비라는 자신의 신분은 민비의 비극적인 죽음을 은폐하려는 일본의 거짓과 역사 왜곡의 실태를 세계적으로 폭로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황태자비 납치사건p. 370

 

 

무엇보다 몇몇 등장인물의 서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명성황후를 모셔야 하는 직위에 있으면서도 그날 그 자리를 모면하기 위해 도망쳤던 임석호의 자손 임선규, 어떤 힘에도 휘둘리지 않고 수사관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하는 다나카 형사, 뒤늦게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전말을 알고 선택의 기로에 선 황태자비까지. 이 인물들에 대한 깊이 있는 서사는 소설을 더 진중하게 바라보게 합니다.

 

 

일본의 역사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 황태자비를 납치한 납치범과 인질로 붙잡힌 황태자비가 서로에게 보여주는 인간적인 존중은 특별한 귀감으로 다가옵니다. 그들이 겪어야 했을 고뇌와 암묵적인 합의에 대한 공감은 역사 이야기에 앞서 인간으로서의 바른 삶에 대해 사유하게 만듭니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전면에 다룬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떤 표현으로도 그날의 참혹함을 대신할 수 없을 만큼 절망의 순간도 이겨내야 했습니다. 우리 민족에 아로새겨진 뿌리 깊은 고통의 역사를 작가의 상상이 더해진 이 작품을 통해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잘못된 역사를 배우며 자랐을 일본인들에게 우리는 어떤 사과를 요구하고 어떤 화해의 길을 모색할 수 있을까요? 지각 있는 역사학자들의 의견을 깡그리 무시한 채 왜곡된 교과서를 만들어 국민들에게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주는 일본의 실세들. 진실로 부끄러운 것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인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여전히 모르는 그들이 있는 한 한일 관계의 간극은 좁아질 수 있을까요?

 

 

​​



 

 이것은 범죄가 아니오.

 굳이 말하자면 불의에 대한 궐기요.

 황태자비 납치사건p.300

 

 

'기필코 이 소설을 일본에 읽히고야 말겠다'라는 작가의 바람이 꼭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그전에 이 소설이 우리나라에서 더 많이 읽혀 일본으로까지 그 여론이 뻗어나가길.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의 역사적 이해와 입장 차이가 왜 이렇게 벌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일본 국민들이 올바로 인지할 수 있기를. 그래서 그들이 더 이상 역사를 모르는 민족이 되지 않기를. 우리 스스로도 역사를 외면한 채 살아가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덧붙이는 말 하나)

 

이 소설은 2010년에 처음 출간되었습니다. 소설이 출간되고 10여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일본의 역사관은 변함없는 듯 보입니다. 진정한 반성과 사과 없이 화해의 길을 모색할 수 있을까요? 겉으로만 상생을 모색하는 듯한 요즘의 상황을 보면서 우리부터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을 더 자주 합니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위치에 있는 분들이라면 더 확고하고 명확한 역사관을 가지고 있어야 하겠지요.

 

 

 

덧붙이는 말 둘)

 

명성황후 시해 당시 사용했던 칼이 일본의 어느 신사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처음으로 일본 여행을 떠났던 지난 2. 아무것도 모르고 찾았던 후쿠오카 '쿠시다' 신사가 바로 그곳입니다.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유명 쇼핑몰 바로 인근에 위치한 신사. 누구나 쉽게 오갈 수 있는 그곳에 명성황후를 시해했던 칼이 버젓이 보관되어 있다니요. 경악을 금치 못할 문구까지 적힌 그 칼! 일반 대중에게는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여전히 우리 사는 하늘 아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신사에서 느껴지는 음산한 기운에 도대체 어떤 곳일지 궁금해 검색을 했습니다. 그러다 마주한 역사적 진실. 부들부들 떨리는 발걸음으로 황급히 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던 그곳. 설마설마 그 칼을 보게 되지는 않을까 너무나 두렵고 섬뜩했던 기억.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혔던 그날은 여전히 저의 마음 한편을 얼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개인의 판단이기는 하지만,

 

저처럼 모르고 방문하셨을 한국 분들이 혹여나 사랑하는 사람의 안위를 그곳에서 빌고 있지는 않을까 싶어 꼭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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