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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 순간 빛을 여행하고 - 그림 그리는 물리학자가 바라본 일상의 스펙트럼
서민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4월
평점 :

우리는 매 순간 빛을 여행하고
그림 그리는 물리학자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저자 _ 서민아
출판 _ 알에이치코리아
빛, 과학, 그림, 인생을 아우르는
특별하고도 따뜻한 에세이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과학자를 꿈꾸고, 한 번쯤은 예술가를 꿈꿉니다. 여기 그 두 가지를 다 해내고 있는 분이 계십니다. '그림 그리는 물리학자' 서민아 작가님이 바로 그 주인공이지요. 음~ 작가이시기도 하네요.
숫자로만 표현된 방사선의 개수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구름 상자를 만들고, 그렇게 직접 만들어낸 찰나의 구름 때문에 실험 과학자가 된 사람. 『우리는 매 순간 빛을 여행하고』는 서민아 물리학자가 들려주는 빛, 과학, 그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인생 이야기도 포함하고 있지요.
그림 그리는 물리학자의 물리학 이야기

우리가 눈을 통해 보는 빛은 사실은 빛의 일부다. 빛은 넓은 스펙트럼을 다시 쪼개서 방사선, 자외선, 가시광선, 적외선, 테라헤르츠파, 마이크로파, 전파 이렇게 나눌 수 있다. 이 중에서 사람이 볼 수 있는 빛은 가시광선뿐이다.(p.63)
눈에 보이지 않는 빛 테라헤르츠파를 알고 계시나요? 저자는 이 테라헤르츠파라 불리는 파장 영역의 빛을 이용해 사물의 이면을 보는 연구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을 연구하는 실험 물리학자이지요.
테라헤르츠파를 이해하기 쉽게 미술 작품 연구에 이용한 사례를 예로 들어 볼게요.
테라헤르츠파는 '겉으로 보이는 물감의 색깔을 보는 게 아니라, 그 너머에 숨어 있는 밑그림과 스케치, 그리고 캔버스의 상태를 볼 수 있다'고 해요.
이 빛 덕분에 화가가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그렸다 지우기를 몇 번 반복했는지 그 인고의 시간을 가늠해 볼 수 있지요. 화가의 친필 사인이 물감 속에 숨어 버렸다 해도 그 사인을 읽어낼 수 있답니다. 작품의 진위 여부를 판가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요.
공항 검색대에서 몸에 좋지 않은 엑스레이(방사선) 대신 테라헤르츠파를 이용하기도 해요. 이 빛은 직물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옷 속에 무엇을 감추었는지 단 번에 알아낼 수 있답니다.

'뉴턴'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사과가 먼저 떠오르는데요, 뉴턴 하면 무지개라는 공식이 성립한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어요. 비 온 뒤 공기 중 물방울에 빛이 굴절되어 무지개가 뜬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저술해 남긴 사람이 다름 아닌 뉴턴이라는 사실!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컬리지 예배당의 뉴턴 동상도 사과가 아닌 유리 프리즘을 들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는가. 이 동상은 빛과 색의 개념을 세상에 알린 그의 저서가 던진 충격과 사람들의 반응을 그대로 반영한다. (…)
뉴턴은 우리가 흰색이라고 알고 있는 햇빛 속에 일곱 개의 무지갯빛이 숨어 있다고 했다. 프리즘처럼 기울어진 면을 가진 투명한 유리를 이용해 빛들을 펼쳐 내거나 다시 합칠 수도 있다는 걸 정교한 몇 가지 실험을 통해 설명해 보였다. 그리고 그가 발견한 것들을 책으로 남겼는데 이것이 바로 '광학', 즉 빛의 학문의 시초가 된다.(p.152)
뉴턴이 알려준 '빛이 하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있는 물리학자 서민아. 그녀는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이미 알고 있었거나 혹은 알지 못했지만, 자연스레 느끼고 있었을 색에 관한 이야기들을 다양하게 펼쳐내 보이고 싶어 합니다. 어쩌면 이 책은 그 출발점이 되어 줄지도 모르고요.
빛을 연구하고 빛을 그리는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새롭고 매력적입니다. 더욱이 어린 시절부터 독서광이었던 그녀가 책에서 다룬 다양한 미술, 문학 작품은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총 3장으로 이루어진 책 곳곳에서 물리학을 만날 수 있어요. 다행인 건 어려울 것 같은 과학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고 있다는 거예요. 물리학 지식이 없어도 무난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빛, 물리학, 그림 그리고 인생 이야기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자연스레 과학에 대한 진입 장벽까지 낮춰준 느낌이 들어요.
여러 놀라운 이야기들이 많지만 특히 파란 나비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파란 나비는 파란색 염료를 가진 게 아니라 특별히 파란색 파장의 빛을 일제히 반사시키는 독특한 성질 때문에 파란색으로 보인다고 해요. 파란색을 지닌 게 아니라 파란색 빛을 반사시키는 거였다니 놀랍고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림 그리는 물리학자의 그림 이야기

그림 그리는 물리학자의 그림은 어떨까요?
처음 이 책을 소개받았을 때 무척 생소했답니다. 그림 그리는 물리학자라니!
과학자가 쓴 과학 에세이에 이상하게 매료되곤 하는 저에게 '그림 그리는 물리학자'라는 타이틀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무조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리학도 그림도 궁금해지더라고요.
책에는 여러 점의 그림이 등장합니다. 물론 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이지요. 그림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은 없어요. 글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그림을 이해하게 되고, 왜 이 그림이 여기에 배치되었는지도 알게 된답니다.
그림에 대한 설명 한 줄 없이 그림을 이해할 수 있다는 건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어쩌면 작가님의 모든 글은 그림에 대한 설명일지도 모르지만요^^;;)

우리는 대부분 정답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상상하고 유추하는 대신 설명을 읽고 정답으로 인정해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요, 작가님은 그러한 태도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하고 있어요. 감상의 영역엔 정해진 답이란 없으니까요.
책에서 언급한 여러 작품 중 빛을 연구하는 과학자의 시선으로 담아낸 베르메르의 작품은 특히 신선했어요.
해를 볼 수 있는 낮의 길이가 짧은 북반구 고위도에 위치한 네덜란드 델프트. 집 안에 빛을 조금이라도 더 들이기 위해 커튼을 치지 않는 독특한 풍습을 지닌 곳. 한동안 델프트에 머물면서 베르메르의 시간을 느껴본 작가는 두어 번 베르메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베르메르가 빛의 화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온전히 느낄 수 있지요.
화가가 그림을 그렸을 그날 그 도시 그 방의 분위기를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어요. 베르메르 그림에 스며든 푸른빛과 소실점에 관한 이야기까지도!
처음
책을 받았을 때
스르륵 넘겨본 그림과
책을 읽으면서 마주한 그림
다 읽은 후 다시 바라본 그림은
같은 작품이지만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때때로 몽환적이고 환상적이까지 한 빛을 연구하는 물리학자의 그림들. 현실이 아닌 우리의 시선 너머, 우리가 느끼는 빛 너머의 세계를 표현한 듯한 작품들.
그 속에 자주 등장하는 고양이에 관한 비밀은 책을 통해 만나보시면 더 흥미로울 것 같아요. 물리학자와 고양이의 상관관계를 파악해 보는 재미가 있거든요. 고양이 액체설이 힌트가 될 수도 있고요.
그림 그리는 물리학자가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했다는 작가의 글에선 따스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결이 곱고 다정한 느낌!
직업 특성상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하는 입장이어서인지 진중한 시선마저 느껴집니다. 그런 마음으로 담아낸 이야기에서 깊은 혜안이 느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책을 읽는 동안 독자는 다양한 자극을 받으며 여러 분야를 간접 체험해 볼 수 있습니다. 가끔은 자기 계발서를 읽을 때처럼 동기부여를 받을 수도 있고요.
분명한 건 아주 느리지만 우리는 조금씩 발전하고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산을 만드는 속도는 너무나 더뎌 때로는 답답하고 그 변화가 눈에 보이지 않아 암담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큰 산은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니 매일 한 줌의 흙을 옆으로 옮기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쉬지 않고 조금씩 옮겨 둔 한 줌의 흙이 모여 어느 날에는 작은 언덕이 되어 있고 언젠가는 야트막한 산이 되어 있겠지.
아주 느린 속도로 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것은 단순하고 지루한 일상쯤으로 치부되기 쉽지만, 그 꾸준함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일이다. (p.115)

책을 읽는 동안 여러 번 저자가 좋은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령 이런 대목에서!
지금은 내가 그 물 한 잔을 들고 길목에 서본다. 누군가가 이 길을 지나다가 그렇게 곧 주저앉을 것 같은 얼굴로 울상이 되었을 때 말을 건네고 싶다. 나의 선생님들만큼 기가 막힌 타이밍을 잡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오랜 울림을 줄 수 있는 큰마음이 준비되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미국 보스의 말처럼 존중과 감사는 서로에게 같은 크기로 동시에 향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누군가와는 그렇게 눈을 마주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보면서 말이다. (p.136)
좋은 사람이 쓴 좋은 이야기는 시간이 갈수록 깊은 울림을 줍니다. 진심이 통하기 때문이지요. 독자마다 의견은 다르겠지만 저는 이 책이 그럴 것 같아요.
물리학을 몰라도
그림을 잘 몰라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
우리는 매 순간 빛을 여행하고
빛을 연구하고
빛을 그려 나가는
화가이자 물리학자
그녀가 들려주는
빛, 그림, 과학, 인생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