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께 - 갈 곳 없는 마음의 편지
오지은 지음 / 김영사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영사 서포터즈로 활동하면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당신께 

작가 _ 오지은

 출판 _ 김영사 

 

 저는 오늘부터

 당신께 편지를 쓸까 합니다.

  

가끔 열어주세요.

 

당신이 잠시 멈추는 시간에

 제 들쑥날쑥한 마음을 읽어주세요.

고맙습니다. 

답장은 괜찮습니다.

 

 

_ 프롤로그 중에서_

 

​​

 

 

 

잘 알지 못하는

 

작가의 책을 만났습니다.

 

 

고민, 했습니다.

 

 

읽을까 말까

 

 

작가의 전작들을 둘러보았습니다.

 

서평도 살펴보았지요.

 

 

그녀는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었어요.

 

 

음악을 들어 보았습니다.

 

그녀의 글이 궁금해졌습니다.

 

​​

 


 

 

첫 문장부터

 마음을 간질이는 말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감상이나 감성에

 치우친 글만은 아닙니다.

 

솔직해서,

  

어느 부분

 내 마음 같아서,

 

책 읽는 자세가

 한 뼘쯤은 책과 더 가까워집니다.

 

어떤 이야기인지 지금부터 들려드릴게요.

 

 

당신께 띄우는 오지은의 편지

 

 

 

떠나는 시간의 편지들 2016~2017

 돌아오는 시간의 편지들 2020~2022

그리고 여러 통의 편지들

 

맞아요.

 

이 이야기는 편지입니다.

 

 편지를 받아본 적이 언제였는지

 편지를 써 본 적은 또 언제였는지

 

낯설기만 한 이 편지들을 천천히 읽어봅니다.

 

 


 

한 페이지를 넘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이 많아서 밑줄을 긋고 인덱스를 붙입니다. 작가의 생각에 제 생각이 더해져 곱씹으며 읽게 됩니다. 가령 이런 문장들.

 

머릿속 미로를 숨기지 않고 꺼내는 것은 미숙함의 증거일까요. 그에 대해 자주 의심합니다. () 잘 정돈된 정원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하다가도 그런 것은 죽기 전까지 갖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정원은 비록 이렇게 엉망이지만 너그러운 당신은 풀잎과 꽃을 발견해 주실 건가요당신께p.31-32

 

그녀의 글은 편지마다 끝을 맺지만 제 마음에선 또 다른 시작이 되어 무언가를 찾아 나서게 만듭니다. 소개해 주고 싶은 편지가 많아서 고르고 골랐습니다. 나머지는 책으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

 

 

베를린에서의 시간 혹은 박완서에 대하여

 

 

작가는 사노 요코의 글을 읽으며 너무 투명하고 진해서 책을 덮고는 난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투명하고 진한' 글이라니.

 

저도 이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작가의 책을 읽는데 솔직함이 과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책을 읽는 제 얼굴이 다 붉어졌었거든요. 사람이 이렇게까지 솔직해도 되나 싶은. 그때 저는 그의 글을 읽으며 '솔직'하다고 밖에 표현하지 못했는데 이제야 적확한 표현을 찾아낸 것 같습니다. 그의 글은 너무 투명하고 진했던 거였어요.

 

작가는 다른 편지에서 다시 한번 사노 요코를 언급합니다. 인자한 구석이 한 톨도 없는 '매콤한 할머니'라고. 작가의 기발함에 읽는 순간 절로 미소가 지어졌어요. 이 기막힌 묘사 덕분에 매운맛 가득한 사노 요코의 책을 당장이라도 펼쳐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답니다.

 

또 한 명의 여성 작가를 칭송합니다. 모던하고 현명하고 매서운 여성, 박완서.

 

이 말이 왜 이리도 마음에 와닿을까요. 저는 몇 달 전 박완서 작가님의 책을 처음으로 제대로 읽었습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야 했던 시절, 온전히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낸 작가 박완서. 모던하고 현명하고 매서운 면모가 글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었다는 걸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지은 작가의 책을 읽다 보면 '그래 그거였어'라며 무릎을 탁 치게 되는 순간이 여러 번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처럼 말이지요.

 

 

 

당신께

 

 

책의 제목이기도 한 '당신께'라는 편지가 있습니다. 이 편지 한 통만으로도 저는 당신께를 당신께 권해드립니다.

 

직접 겪은 일이 아닐지라도 건너 건너 어느 사건의 희생자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면서 비극적인 사건을 목도한 사람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전 국민이 내상을 입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한 충격적인 참사를 겪으며 오지은 작가 역시 무거운 마음을 가눌 길 없었습니다.

 

 

성수대교가 무너지던 날

 

무학여고 학생들은 16번 버스를 탔고 그녀는 78-1번 버스를 탔다는 게 달랐습니다. 겨우 중학교 1학년이었던 그녀. 무참함과 비참함으로 무너져내릴 때 '쓸데없는 생각 말고 공부나 해라. 아쉬우면 너희들이 공부 열심히 해서 세상을 바꾸면 되는 거 아니냐'라는 너무 아픈 말을 듣습니다. 충분한 애도는 없었습니다. 그 말을 한 것이 어른이라 아프고, 그런 말을 듣고 자라난 어른이라 아픕니다.

 

세상은 애도하는 사람을 위한 시간을 잘 내어주지 않습니다. 성장과 성과 중심의 한국 땅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당신은 아픔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채 어른의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일 투성이였을 것입니다. 잠시 멈춰 생각할 시간은 이 나라에서 사치입니다.당신께p.81-82

 

당신 마음에 박힌 아픔은 어쩌면 평생 그 자리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아직까지 육교를 건너지 못하듯 당신은 오랜 시간 배를 탈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없앨 수 없는 아픔이기에 오히려 당신은 뭔가를 보고, 깔깔 웃고, 노래를 하고, 춤을 춰야 합니다. 아픔과 같이 살아가기 위해.당신께p.85-86



우리는 이같이 가슴 아픈 참사를 바로 얼마 전에도 겪어야 했습니다. 역시 애도는 없는 듯 보였습니다. '세상은 애도하는 사람을 위한 시간을 잘 내어주지 않는다'라는 말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애도에 서툴렀던 우리 모두를 위로해 주는 '당신께'라는 편지만큼은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아픔은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치유해 나가는 과정은 더디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시간입니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고, 바꿀 수 있을 테니까요. 여전히 아파야 하는 현실이 못내 아픕니다.

 


 

 

책을 마무리하며

 

 

 저의 서평은 지극히 주관적입니다. 저에게 와닿은 책이 당신께는 가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해서 중간중간 책 속 문장들을 그대로 싣습니다. 제 글보다 작가의 글을 세심하게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몇 문장으로 책의 깊이를 가늠할 순 없지만, 결이 맞을지 안 맞을지는 판단할 수 있을 테니까요.


 

저는 오지은 작가를 좋아하게 될 것 같습니다. 표현과 상황 묘사가 제 취향입니다. 기막힌 문장들이 많아요.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매력이 넘칩니다. 얼마간의 공통점도 발견했고요. 가령 굿즈가 탐 나서 책을 산다거나, 밥 대신 에이스 크래카에 믹스커피를 마신 적이 있다거나, 하는.

 

 

생략되는 시간은 정말 가치가 없는 것일까요.(23)

어쩌면 앞으로 놀랄 일은 적어지고 견딜 일은 많아질지 모른다는 것.(25)

하지만 지금은 둥글게, 완벽하게, 조용하게, 아름답게.(32)

작고 터프한 곳입니다.(34)

무언가 지나가고 난 후에 남는 정서가 있잖아요. 제 눈에 비친 베를린은 헐렁하고 너그러운 도시였습니다.(38)

10년 치의 '나중에 하지 뭐'가 쌓은 재앙.(50)

오늘은 조금 헐렁한 편지를 당신께 보냅니다.(69)

낮의 시간이 버거워질수록 밤의 여행 계획표는 점점 정교해졌습니다.(75)

어떻게 당신이 비겁한가요. 당신의 마음에 이렇게 아픔이 박혀 있는데.(85)

 

공유하고 싶은 문장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지만 이 정도까지만 정리하겠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므로.

 

반짝이는 표현을 담고 있는 전체 글을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환하게 눈부시면서도 아파요. 때때로 상처를 드러내 보여줘서 그 용기에 위로를 받습니다. 에세이를 읽다 보면 작가의 세계 안에서만 머무는 이야기를 만날 때가 있는데요, 당신께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지은이라는 개인을 넘어 '우리'에게로 이야기가 흘러드는 것 같아 좋았어요.

 

​​

 

 각 잡고 읽지 않아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

 

 

아프지 않냐고 물어보는 책

 

넌지시 위로를 건네는 책

 

 

문득문득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책

 

 

오지은 에세이 당신께

 

 

 

에세이를 가벼운 글이라 여기는 누군가에게 이 진중한 이야기를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무겁진 않아요. 편하게 읽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작가 앞에서 어쩌면 무장해제될지도 모르고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여러 페르소나로 살아가느라 힘들진 않으신가요. 그런 당신께 오지은 작가가 써 내려간 7년간의 편지를 전합니다. 갈 곳 없는 마음을 이 책과 함께 붙잡아 보시길 바라면서!

 

 

​​

 

 

 

나누고 싶은 문장들

 

 

어른이 되니까 밥 대신

에이스 크래카에 믹스커피를

곁들여 먹어도 혼나지 않습니다.

서럽고 멋져.(71)


 

닿지 못해도 저 멀리

빛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용기가 됩니다.(114)



좋아하는 것을 만났을 때

솔직하고 투명하게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인가요.

그렇다면 부럽습니다.(126)


 

저는 착각을 거듭하며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 단단히 손에 쥘 수 있다는 착각, 노력하면 현명해질 수 있다는 착각, 상황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 정의 내릴 수 있다는 착각. 사는 게 쉬워질 것이라는 착각. 무엇보다 가장 큰 착각은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는 착각 그리고 나 자신을 알 수 있다는 착각이었습니다. (159)

 

한 시절의 문을 닫아야 하는 타이밍이 있습니다. 닫는 것도 자유, 버티는 것도 자유입니다. 어쩌면 지도의 모든 방향이 맞는 방향일지도 모릅니다. 나아가기만 한다면.(18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