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형제의 숲
알렉스 슐만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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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형제의 숲


가족의 해체와 화해의 과정을 그린

올 겨울 꼭 읽어야 할 마음 성장 소설


사고가 있었습니다

상실을 경험했지요


어느 이른 아침에 베냐민은 시내에 나갔다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피에르를 우연히 보았다. 피에르는 휴대폰을 쳐다보느라 그를 보지 못한 상태였다. 언제나 그렇듯 세상에는 관심을 끄고 아래쪽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미한 빛 속에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베냐민은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은 채 동생을 그대로 지나쳤다. 그 순간 두 사람이 입고 있던 재킷이 서로 스쳤다. 그는 뒤돌아 점점 작아져 가는 피에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슬픔이 솟아올라 아슬아슬하리만치 공황에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세 형제의 숲』 p273-274


사고가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상실을 경험했지요. 돌이킬 수 없는 그날의 상처는 깊은 침묵이 되어 생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그날,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하나의 같은 사건을 겪은 가족 구성원들의 기억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날의 상처로부터 누군가는 헤어난 듯 보이고 누군가는 여전히 지옥에 갇혀 삽니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줘야 할 시기에 각자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꼭꼭 숨어버린 가족들. 결국 해체되고 말지요.


『세 형제의 숲』은 어린 시절 겪은 절체절명의 사건을 둘러싼 한 가족의 해체와 화해를 그린 소설입니다. 스토리 전개 방식과 사건을 복기해 나가는 과정이 상당히 독특합니다. 총 24장으로 구성된 이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를 교차로 보여주고 있어요. 현재의 시점 역시 두 시간 단위로 과거로 향하고 있지요. 11시 59분에서 시작해 오후 10시, 오후 8시, 오후 6시와 같이 시간을 거슬러 갑니다. 그렇게 펼쳐지는 24시간 동안의 이야기. 그 속에 유년의 이야기들이 조밀하게 얽히고설켜 있지요.


작가는 왜 이토록 명확하게 구분 지어 시간을 거스르는 방법을 선택했을까요? 아마도 한 번은 똑바로 마주해야 할 그날의 사건과 가족의 심리 변화를 세밀하게 되짚어 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상처로부터 도망치기 급급해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내면의 아픔. 보듬고 화해할 시간을 마련해 주려고 한 것 같아요. 늦더라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치유의 과정이 이 가족에게는 빠져 있거든요.


상처를 입었다면 반드시 똑바로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야만 상처의 깊이를 가늠해 치유할 방법을 찾아낼 테니까요. 그 시기를 놓쳐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 못하면 언젠가 삶에 깊은 크랙을 만들어 버립니다. 어린아이였던 세 형제 그리고 엄마, 아빠까지 그 누구도 자신 혹은 가족의 상처를 돌보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기억, 서로 다른 상처, 서로 다른 시간이 동일한 사건을 겪은 가족에게 있을 뿐이지요.


어머니의 유언을 들어드리기 위해 한자리에 모일 수밖에 없는 세 형제. 과거의 사건으로부터 힘겹게 도망쳐 왔던 그 장소에 어렵게 발을 들여놓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한때 세상의 전부였던 숲속 별장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 가족에게는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얼마나 도망치고 싶었는지

얼마나 치유받고 싶었는지


다른 선택지는 없다고, 이곳에 머물러 달라고, 형이 떠나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정말로 모르겠다고 말하고 싶다. 그는 닐스가 집을 떠나는 즉시 무언가가 단숨에, 영영 무너져 버릴 것임을 알았다. 식구 중 한 사람이 사라지면 어떻게 가족이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세 형제의 숲』 p.201

혹시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를 기억하시나요?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만한 사건을 경험한 후 그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지 못하면 어떤 벌어지는지 명확하게 그려낸 드라마입니다. 과거의 상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른 재열(조인성)과 소년 강우(도경수)의 여정이 사무치도록 애처롭고 감동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치유의 과정은 간단치 않습니다. 어렵더라도 한 번은 제대로 과거의 진실과 마주해야 합니다. 상처의 이유와 상처의 범위를 알아야만 치유할 방법도 찾을 수 있으니까요. 상처 입은 어린 강우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었던, 어른 재열에게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던 그런 드라마였지요.

『세 형제의 숲』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가 떠올랐습니다. 여전히 상처의 살얼음 판 위를 걷듯 살아가고 있는 피에르, 베냐민, 닐스 이 세 형제의 모습에서 어린 강우가 오버랩되었지요. 특히 모든 것을 예민하고 세밀하게 기억하고 있는 베냐민. 여전히 어린 날의 상처로부터 깊게 베여있는 어른 재열이 떠올랐습니다.

대면 대면할 수밖에 없었을 그동안의 모든 행보가 한순간 이해되었지요. 거칠게 변해가던 피에르,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집을 떠나버린 닐스 그리고 생각만 해도 너무나 처연한 베냐민까지. 그들이 얼마나 상처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는지, 얼마나 치유받고 싶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다시 너희를

사랑할 시간을 주겠니


너희들에게 내가 무엇을 해달라고 부탁할 자격이 어디 있겠니. 난 너희들이 너희들 자신을 위해 그렇게 해주었으면 한다. 함께 차에 올라 먼 길을 가거라. 내가 상상하고 싶은 너희 셋의 모습이니까. 차 안에서, 외딴 호숫가에서, 또 저녁나절 사우나 안에서 다른 누구도 없이 오로지 너희 셋이서만 시간을 보내는 모습 말이야. 우리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일, 서로 대화를 나누는 그 일을 너희들이 해주었으면 한다. 『세 형제의 숲』 p.320

엄마도 그랬을 거예요. 엄마 역시 너무나도 상처가 깊어서 세 아이를 돌볼 여력이 없었을 거예요. 누군가의 엄마로 살기로 했든 남은 세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없었습니다. 단지 그 사랑을 표현하지 않았던 생의 모든 순간이 미안할 뿐이었지요. '네 잘못이 아니야. 나에게 다시 너희를 사랑할 시간을 주겠니'라고 말하는 엄마의 편지에서 그 절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아팠습니다.

혹시 아직 화해하지 못한 어린 날의 사건을 부여잡고 계시나요? 여전히 생채기로 가득한 유년의 상처에 아파하고 계시나요? 감히 그 고통의 깊이를 헤아릴 순 없습니다. 그래도 한 번은, 꼭 한 번만은 어린 날의 자신과 마주해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치유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될 테니까요.





가족의 해체와 화해의 과정을

세밀한 묘사와 독특한 구성으로 풀어낸 소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숲이 있단다. 숲속을 속속들이 알면 안전해지지. 그저 이곳을 줄곧 돌아다니기만 하면 오래지 않아 바위 하나, 배배 꼬인 오솔길이며 쓰러진 자작나무 하나하나까지 다 알게 되니까 말이야. 그렇게 이 숲이 네 것이 되는 거란다. 생각만 해도 근사하지 않니?『세 형제의 숲』 p.65

『세 형제의 숲』은 유년 시절의 아물지 않은 상처가 어른이 된 그들의 삶을 얼마나 깊게 지배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작가는 치유와 화해의 과정으로 들어서기까지 쉽지 않은 여정을 독자들로 하여금 자연스레 따라오도록 만들지요. 어쩌면 책을 읽는 동안 잊고 지낸 내면의 아픔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갑작스레 마주하게 되는 사건의 진실 앞에 큰 충격과 대혼란을 겪게 될지도 모르고요.

가족의 해체와 화해의 과정을 세밀한 묘사와 독특한 구성으로 풀어낸 책. 주인공의 아픔을 따라가는 동안 혹여나 간직하고 있을 내면의 아픔까지 치유받게 되는 소설. 상처를 입었다면 덮으려 하지 말고 오롯이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해 주는 소설. 그것이 치유의 첫걸음임을 깨닫게 해 준 소설입니다.

내면에

깊은 슬픔을

간직하고 계신가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아물지 않은 상처에

매일매일

생채기를 내며

살아가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이 소설을 읽어보세요. 한 걸음 한 걸음 따라가는 과정이 쉽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럼에도 읽어 나간다면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평온함이 찾아올지 모릅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다시 살아가게 할 힘이 될 수 있습니다. 폭설에 얼어붙은 겨울 숲이 다시 싱그러운 푸른 숲이 될 수 있을지 지금 바로 '세 형제의 숲'으로 들어가 보시는 건 어떨까요 :)

너무나 먹먹해서 가슴 아프지만 사무치게 그리워질 소설. 올겨울 꼭 읽어야 할 마음 성장 소설을 만났습니다.




"다산북스로부터 해당 책을 제공받고 작성한 솔직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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