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가 있었습니다
상실을 경험했지요
어느 이른 아침에 베냐민은 시내에 나갔다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피에르를 우연히 보았다. 피에르는 휴대폰을 쳐다보느라 그를 보지 못한 상태였다. 언제나 그렇듯 세상에는 관심을 끄고 아래쪽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미한 빛 속에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베냐민은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은 채 동생을 그대로 지나쳤다. 그 순간 두 사람이 입고 있던 재킷이 서로 스쳤다. 그는 뒤돌아 점점 작아져 가는 피에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슬픔이 솟아올라 아슬아슬하리만치 공황에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세 형제의 숲』 p273-274
사고가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상실을 경험했지요. 돌이킬 수 없는 그날의 상처는 깊은 침묵이 되어 생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그날,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하나의 같은 사건을 겪은 가족 구성원들의 기억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날의 상처로부터 누군가는 헤어난 듯 보이고 누군가는 여전히 지옥에 갇혀 삽니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줘야 할 시기에 각자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꼭꼭 숨어버린 가족들. 결국 해체되고 말지요.
『세 형제의 숲』은 어린 시절 겪은 절체절명의 사건을 둘러싼 한 가족의 해체와 화해를 그린 소설입니다. 스토리 전개 방식과 사건을 복기해 나가는 과정이 상당히 독특합니다. 총 24장으로 구성된 이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를 교차로 보여주고 있어요. 현재의 시점 역시 두 시간 단위로 과거로 향하고 있지요. 11시 59분에서 시작해 오후 10시, 오후 8시, 오후 6시와 같이 시간을 거슬러 갑니다. 그렇게 펼쳐지는 24시간 동안의 이야기. 그 속에 유년의 이야기들이 조밀하게 얽히고설켜 있지요.
작가는 왜 이토록 명확하게 구분 지어 시간을 거스르는 방법을 선택했을까요? 아마도 한 번은 똑바로 마주해야 할 그날의 사건과 가족의 심리 변화를 세밀하게 되짚어 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상처로부터 도망치기 급급해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내면의 아픔. 보듬고 화해할 시간을 마련해 주려고 한 것 같아요. 늦더라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치유의 과정이 이 가족에게는 빠져 있거든요.
상처를 입었다면 반드시 똑바로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야만 상처의 깊이를 가늠해 치유할 방법을 찾아낼 테니까요. 그 시기를 놓쳐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 못하면 언젠가 삶에 깊은 크랙을 만들어 버립니다. 어린아이였던 세 형제 그리고 엄마, 아빠까지 그 누구도 자신 혹은 가족의 상처를 돌보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기억, 서로 다른 상처, 서로 다른 시간이 동일한 사건을 겪은 가족에게 있을 뿐이지요.
어머니의 유언을 들어드리기 위해 한자리에 모일 수밖에 없는 세 형제. 과거의 사건으로부터 힘겹게 도망쳐 왔던 그 장소에 어렵게 발을 들여놓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한때 세상의 전부였던 숲속 별장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 가족에게는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