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락모락 - 우리들은 자라서
차홍 지음, 키미앤일이 그림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평점 :
모락모락 :: 전 생애를 아우르는 파노라마 같은 감동에세이
모락모락,
우리의 전 생애를 아우르는
파노라마 같은 감동 에세이
모든
'처음'의 순수함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이야기
모락모락(毛落毛落)
떨어져 나가는 머리카락과
닮아 있는 이야기
맑고 순수한
다정하고 포근한
아프고 슬픈
그럼에도
충만하게 빛나는
우리 모두의 인생 이야기
책을 읽으며 이렇게 깊은 슬픔을 느껴본 적이 언제였나 싶어요. 차오르는 눈물들을 참아내느라 가슴이 저릿해지기까지 합니다. 약간의 두통마저 느껴져 당황스러울 정도였어요. 물론 전에도 책을 읽고 울어본 적은 있습니다. 책의 어느 일부에서 그랬고, 슬픈 감정은 끊어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모락모락은 뭐죠? 그냥 다 슬퍼요. 그냥 다 아파요. 신기한 건 아름답고 포근한 느낌마저 든다는 거예요. 이런 다단한 감정들을 아우르는 말이 뭘까 한참을 고민해 보았어요. '감동'이라는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한 생명이 태어나 자라고 저물어가는 과정의 이야기를 담은 『모락모락』. 문학동네 블라인드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작가님의 성함도 모른 채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생뚱하게 읽었어요. 화자가 머리카락이거든요. 머리카락이 화자라고? 짐짓 팔짱을 낀 채 적당한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려 했습니다. 화려한 미사여구도 없어요. 그럴싸한 수식어도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오히려 밋밋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조금씩 이상해지기 시작했어요. 뭔가가 일렁이는 것 같달까요. 분명 담담하게 읽어가고 있는데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져든 느낌. 저도 모르게 모며들고 있다(모락모락에 스며들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습니다.
이상하다 했어요. 책을 읽어갈수록 먹먹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뭔가 거센 감정의 늪에 빠져들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예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어요. 왜 이러지? 왜 이러지? 어리둥절하고 당황스러웠어요. 눈물이 쏟구쳐 오르다니! 울음을 토해내고 있다니! 겨우겨우 참아내는데도 자꾸만 눈물이 흐르다니요!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보니 이 작가분 분명 고단수란 느낌이 듭니다. 담담하게 읽어가는 동안 저도 모르게 감정의 후폭풍을 경험하게 만들었으니까요. 그런데 정말 작가님이 차홍 님이시라고요? 헤어디자이너 차홍님? 전문 작가분이 아니시라고요? 이 책이 첫 에세이라고요? 화자가 머리카락인 이유가 단번에 이해갑니다. 머리카락과 함께 성장하고 저물어가는 인생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뭉클하게 와닿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던 순간
아이가 말을 하고 걷고 재롱을 부리던 순간
아이에게 처음으로 흰 머리카락을 맡기던 순간까지
소중하지만 잊고 살았던 뭉클한 감동들이 스멀스멀 되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울고 웃고 서글프면서도 행복한 이 충만한 감정은 뭘까요? 살아가는 동안 잘 포착해 내지 못하는 삶의 다단한 감정들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는 『모락모락』은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줄 것입니다.
아이를 낳고 키워서 사회에 내놓습니다. 가정을 이루고 다시 새로운 생명을 맞이합니다. 그러는 동안 쇠락해가는 자신과 부모님의 모습을 덧없는 마음으로 지켜봐야 합니다. 이것이 인생의 순리.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시간의 진리. 모락모락 피어나는 삶과 모락모락 꺼져가는 삶의 기막힌 오버랩은 진한 여운을 안겨줍니다.
너는 나이테처럼 변한 엄마의 손을 어루만지고 또 어루만졌지. 손으로 주름을 밀면 부드럽게 퍼졌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깊은 골짜기가 되었어. 엄마의 생각들도 펴졌다 다시 저 골짜기 사이사이로 가는 걸까? 너는 무언가가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지. 굽은 고목나무 같은 엄마의 등 위로 싸락눈 같은 하얀 머리카락이 여기저기 쌓이고.
네가 독립할 때 부모님께 들었던 말을 아이에게도 똑같이 해주어야 했어.
"잘 해낼 거야. 응원할게."
너는 그 말이 얼마나 많은 말들을 버린 후에야 나온 것인지를 알게 되었네. 이제 너는 추억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말야.
우리는 다시 그때처럼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고 있지. 마음이 슬프기도 했다가 담담하기도 했다가 외롭기도 했다가 그래. 생각을 옮겨갈 때마다 계절이 바뀌는 것 같아.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다 사라져버리기도 하는 걸까?
어떤 정보도 어떤 기대도 없이, 저처럼 아무 생각 없이 이 책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혼자 집중할 수 있는 장소에서 시간과 마음을 내어 되도록이면 한 번에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그런데도 저와 비슷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으신다면, 제가 요즘 가을을 심하게 타고 있구나 하고 너그러이 이해해 주세요. 책을 읽는 독자마다 마음을 여는 포인트는 다를 테니까요. 그럼에도 저는 이 책을 꼭 한 번은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직업, 사회적 위치, 경제적 배경 등 모든 외적인 부분을 배제한 시간의 흐름에 대한 이야기. 우리들이 살아왔고 살아가게 될 거스를 수 없는 세월에 관한 이야기니까요.
화자가 머리카락이라 가능한 '머리카락만의 위트'는 웃음 포인트입니다. 책을 읽으시면서 하나하나 찾아가시는 재미도 있으실 거예요.
마침 책을 다 읽은 순간, 깊은 울음을 토해내던 그 순간, 남편이 들어왔습니다. (아니, 왜? 이 낮에) 울어서 퉁퉁 부은 눈을 본 남편의 다급한 한마디 "왜?" 저의 당황한 첫 마디 "아니...저..." 다시 재촉하는 남편. 저는 "책 때문에"라고 마지못해 대답합니다. "이제 별걸 다하네"라는 남편의 퉁명스런 대꾸에 눈물이 쏙 들어가 버립니다. 그래, 우린 아직 젊은 거지. 애처롭게 서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나이지. 조금은 틱틱거리도 될 나이,라는 게 이리도 고마울 줄은 몰랐습니다. 갑작스럽게 혼자가 되어 버린 순간, 아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양로원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은 날의 이야기를 읽고 있었다는 걸 남편은 알 리 없겠지요.
아릿하게 슬프지만 해피엔딩이라 다행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너무 마음이 아파서 얼마간 힘들었을 거예요. 한 권의 책으로 이렇게 수많은 감정을 느껴본 건 오랜만입니다. 살아온 날들과 아직 살아보지 못한 날들을 깊이 생각하게 해주신 차홍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저의 오버스러운 서평이 혹여 책을 읽을 예비 독자들에게 결례가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부디 선입견 없이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_ 문학동네 블라인드 서평단 활동으로 작성한 솔직한 서평입니다 _